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2.금융시장의 불안정성 – 민스키 모멘트

나는 ‘비주류’라는 말이 싫다.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비주류는 ‘주류’, ‘비주류’를 구분지으면서 미디어에서 검증된 기초 과학지식을 흔들 때 사용하는 오염된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계에는 비주류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하이먼 민스키 Hyman Minsky (1919-1996)이다.

Financial stability – Minsky’s moment (the Economist, 7월 30일자)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경제학자 민스키는 평생을 무명으로 지냈다.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그는 후기 케인즈학파의 학자로 분류되는데, 말년에 그는 한물간 케인지언으로 취급되었다. 학계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잊혀진 그의 이름을 사후에 발굴해낸 건 금융업계 투자자들이다. 미국 펀드 운영사 PIMCO의 Paul McCulley는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민스키를 인용해 민스키 모멘트 Minsky Momen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리고서도 민스키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서 재조명되었고, 지금은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가 경제/금융권에서는 유행어가 되었다. 심지어 폴 크루그먼은 ‘이제 우리는 모두 민스키 주의자 들이다. We are all Minskyites now.’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프리드만이 말한 ‘We are all Keynesians now.’의 인용이다.)

도대체 민스키가 제시한 이론이 뭐길래?

민스키는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통해서 호황이 길어질 수록 그 호황이 종국에는 불황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했다. 민스키는 주로 금융시장과 그 불안정성에 연구를 집중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는 오늘의 돈을 내일의 돈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공장을 짓는다고 하자. 회사가 공장을 짓는 이유는 이윤을 남겨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함이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을 하기 위함이다. 회사가 공장을 짓기 위해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을 쓰던지 아니면 남에게 빌려야 한다.

여기서 민스키는 돈을 빌리는 financing의 방법을 세가지로 분류한다. 그게 바로 헷지 금융 Hedge financing, 투기 금융 speculative financing, 폰지 금융 Ponzi financing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hedge financing은 공장의 현금 창출이 원활하여서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상환이 가능한 자금조달을 말한다. 가장 안전한 금융인 셈이다.

반면 speculative financing은 hedge financing에 비해 다소 위험하다. Speculative financing에서 회사의 현금 흐름은 이자를 갚을 정도는 되지만 원금상환을 하기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는 원금상환을 연장하고 (roll over) 계속해서 빚을 진다. 단, 회사가 계속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면 speculative financing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이 오를게 확실하다면 원금상환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원리와 같다.)

마지막은 Ponzi financing이다. 이는 가장 위험한 형태의 financing인데, 회사가 원금 뿐만이 아니라 이자를 갚을 능력도 되지 않는 financing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공장 설비의 일부를 팔거나, 다른 곳에서 빚을 더 끌어와 돌려막기를 해야된다. 민스키의 가설은 경기가 안좋아지면, hedge financing을 하던 회사들이 speculative financing 그룹이 되고, speculative financing을 하던 그룹은 Ponzi financing을 하는 그룹이 된다고 말한다.

왜 기업들은 무리하게 돈을 빌릴까?

민스키의 설명은 바로 장기간 지속된 호황에 있다. 모든 기업이 처음부터 투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인 호황이 계속되고 돈을 빌려서 판을 크게 벌이면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면,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손해보는 행위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은행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돈을 빌려주면 그만큼의 이자가 들어올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굳이 엄격한 신용 관리를 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민스키가 금융불완전 가설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장기적인 호황이 결과적으로는 경제 기반을 허약하게 fragile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민스키는 평생 비주류로 살았을까?

이코노미스트 지에 따르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은 합리적 시장efficient market에 대한 믿음이 강한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유진 파머나 로버트 루커스 같은 학자가 이에 속한다. 그들의 이론은 모든 정보가 시장에 완전히 공개되면, 시장은 평형 equilibrium 상태가 된다고 이야기 했다. (거칠게 옮기자면, 호황이 지속되는 상태)

또 민스키의 입장은 정통 케인지언과도 달랐는데, 이를테면 그는 힉스와 한센의 IS-LM 모형이 케인즈의 이론을 오해해서 너무 나아갔다고 말한다. (IS-LM 모형에 대해 좀더 설명하면 좋으련만, IS-LM은 좀 수학적인 이야기고 포스트로 소화할 내용은 아닌듯 하다. 궁금한 분은 주위에 거시 경제 전문가에게 개인지도를 받는게 더 좋을 듯.) 민스키는 IS-LM model이 금융부분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담이지만, 학부에서 거시경제를 배울 때 IS-LM을 케인즈와 묶어서 배우기 때문에 IS-LM을 케인즈가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IS-LM 모형은 힉스와 한센의 작품이다.

민스키는 하바드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처음 지도교수가 슘페터였다. 그런데 중간에 슘페터가 죽고서 민스키는 IS-LM을 만든 한센을 지도교수로 택하지 않고, 레온티예프에게서 사사를 받는다. 레온티예프도 노벨상 수상자이고 훌륭한 학자이지만 민스키가 케인즈를 숭배했다는 걸 생각하면 한센을 지도교수로 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의외이다. (개인적인 망상이지만, 민스키가 한센과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닐까? IS-LM을 비판했던 것도 그렇고…)

어쨌든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기에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가 자명하게 들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가보다. 게다가 당시 학계에서 금융위기는 인기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민스키가 금융위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1919년 생으로 대공황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민스키가 비주류였던 두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이론이 수학적quantitative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민스키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류경제학이 수식과 모델의 정교함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와 상반된다. 민스키가 수학을 못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학부때 시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뻘소리지만, 어쩌면 민스키는 수학이 싫어서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는지 모른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수학은 역시 중요했던 것이다… ㅋ)

사실 그가 이론을 전개할 때 수학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학문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그는 이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했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관심사는 특정한 상황 (특히 불황에서의 금융시장)이었지 일반화된 경제 전반이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인 태도는 지금에 와서도 그의 이론을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기 힘들게 만든다.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그의 이론이 특정 주제를 설명하기에는 좋지만, 역시나 모델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 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중국 경제의 침체를 두고서 혹자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말을 끌어다가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민스키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단면을 묘사한 이론이기에,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민스키가 무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 지 모른다. (물론 민스키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를 만들지도 않았다.)

+ 덧: 앞으로 연재에 대하여

지난번 정보경제학 information economics 페북 포스트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내가 가진 경제학 지식이라는게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연재도 그저 이코노미스트지의 연재를 읽고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정도이다. 딱히 번역도 아니고 내가 소화한 만큼 정리하기 때문에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시고, 또 연구하시는 훌륭한 페친분들께 주저없는 지적을 부탁드린다. 그게 내 공부에도 더 도움이 된다.

어쨌든 오늘은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연재 순서를 따라서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 케인즈 승수, 내쉬 평형, 먼델 플레밍 모형을 정리할 예정이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

2 thoughts on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2.금융시장의 불안정성 – 민스키 모멘트

  1. 좋은 포스트 감사합니다. 금융위기에 관한 책에서 민스키의 이론을 접하고 나서 원래 이론이 대충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했는데 이해가 정말 잘 되네요ㅋㅋ 다른 쓰신 글도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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