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와 Anti-반세계화

페북에서 작년 오늘 포스트로 페루 APEC 정상회담과 TPP의 우울한 앞날을 예감했던 기록이 떴다. 역시나 예상대로 몇달뒤 트럼프가 취임 하자마자 한 첫번째 일이 TPP 철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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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며칠전 (11월 11일) APEC 정상회담 중에 TPP 참가국이 미국 없는 TPP를 진행하기를 결의했다. 이름하여 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he T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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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는 TPP가 앙꼬없는 찐빵이긴 하다. 올해 다낭 APEC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America First 연설에 답변하는 정치적 제스처라고 읽히는 모양이다. 그래도 각국 GDP의 1~2%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니 (아래 도표) 밑지는 장사는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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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적으로는 보호무역이 대세임에도 사실 무역자체는 활황이다. 올해 WTO가 전망한 merchandise trade (상품 무역) 증가분은 3.6%인데 이는 전세계 GDP 증가를 상회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지역 무역은 올해 상당히 좋다. 아래 그래프는 몇일전 발표된 싱가포르 무역 수치. 확실히 2016년 들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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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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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읽기

며칠전에 한 페친님과 잡담하던 댓글이 길어져서 기록차 옮겨둔다. 기사 비판적 읽기에 대한 내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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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을 때,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정도만 주의하면 매체가 어딘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팩트 부분도 너무 딱 들어맞게 주장을 뒷받침 한다거나, 평소 알고 있는 상식과 심각하게 배치된다면 추가로 검색을 해보거나 출처를 역으로 뒤져보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합니다. 물론 이건 시간이 드니 좀더 관심이 있는 주제에 한해서 가능하겠죠.

비판적으로 읽기만 좀 신경쓴다면 fox news던, CNN이건, atlantic, NYT, 심지어 breitbart 라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제 기준으로는 fox news 같은 경우는 의견이 심하게 들어가서 (게다가 의견을 사실로 오도도 자주하고…) 잘 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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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푸른 잔디

작년 오늘에는 영국에 있었다. 찍어둔 사진을 보니 푸른 잔디가 참 인상적이다. (location: Willows Activity Farm near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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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쯤 런던에서 요크셔 지방까지 코치(버스)로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가 인상적이었다.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되서였다. 이 넓은 잔디를 관리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까 싶었다. 말년병장 때 작업나가서 예초기를 돌리던 생각도 났었고.

그런데 원래 영국은 풀이 잘 자란다고 한다. 페친님 포스팅을 통해 배웠다. 나무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라 그렇다고. (Cfb 서안해양성기후)

관련 포스트: 뉴질랜드 환경오염의 원흉 낙농업

뉴질랜드 역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양떼들이 인상적인데, (특히 켄터베리 지역) 편서풍을 타고 들어오는 건조한 바람 때문에 풀이 잘자라는 (바꿔말하면 나무가 자라기 힘든) 식생이 되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알프스 근처도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더랬다.

미국 제조업 임금 상승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인기와 평가는 순전히 운에 달린게 아닐까. 특히나 경제분야는 더욱.

현대에 와서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건 아니다. 보통 취임 첫 몇달은 각료들 인사와 업무 파악에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당선 1년 만에 대통령이 바꿔서 경제가 확 살았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서로 연동 되어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를 테면 임기 초반에 IMF가 왔다던가, 금융위기가 왔다던가. 이런 때는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중요하겠지.

어쨌든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지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다.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미국 경제에 보이는 긍정적인 신호들을 주요 기사로 실었다. 블루칼러 직종의 임금이 꽤 올랐다고 한다. 특히 지난 분기 상승은 고무적인데, 대략 (annualized) 4%가 상승 했다.

관련기사
Cheer for the blues – Blue-collar wages are surging. Can it last? (the Economist, 11월 14일자)

오바마 말기에도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도 임금의 상승 정체는 문제로 자주 지적되었다. 2009년 금융 위기 때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임금은 8.7% 상승하였지만 물가는 9.5% 상승 했다. 바꿔 말하면, 금융위기 이후에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임금정체로 중산층의 불만은 커졌었고, 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 당선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작년에도 실업율은 낮았다. 그게 지속 되면서 올해는 서서히 임금상승까지 오는 모양이다. 그것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세상에나 블루칼러가 바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아니던가!)

작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의 8년 임기를 돌아보며 이코노미스트 지에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오바마는 기고문에서 후임자에게 경제 숙제로 4가지를 남겼다. 생산성 증가율 감소, 불평등 심화, 노동 참여율 감소, 미래를 위한 경제 기반 만들기. (참고로 예전에 페북에서 김선함씨가 이 기고문을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다. 링크 그리고 나도 짧게 감상을 포스팅을 했었다. 링크)

경제 숙제 중에서 노동 참여율 감소 부분만 보면 오바마 때까지 꾸준히 떨어지기만 하던 노동참여율이 올해들어 주춤하다. 여성 노동 참여율은 증가세까지 보인다. 작년 오바마 기고문에 실린 차트와 (아래 차트1) 올해 차트를 비교해보면 (아래 차트2)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차트1. 2016년까지 노동 참여율


차트2. 2017년 포함 노동 참여율

이코노미스트지는 임금 상승의 주원인을 수요 쪽에서 찾는다. 생산성 쪽은 사실 별 변화가 없기도 하고.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 수요 증가를 가져 온 것은 약달러와 유가의 상승이다. 약달러 때문에 미국은 올해 수출이 상당히 좋다.

유가 상승 역시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올해 제조업 일자리의 대부분은 오클라호마나 텍사스 같은 동네의 석유 산업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한 러스트 벨트 경제에는 여전히 별 도움은 안되었다는 이야기도 되고.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보면 임금상승이 불평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면야 세계화/자동화로 인간의 입지가 위험하다지만, 2~3년만 두고 보자면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될 때 최소 지금 백악관에 계신 양반에게는 큰 도움이 될 모양이다. 나야 그 양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만 뭐가 됐든 경제가 좋다는 데 불평할 것까지야.

런던 부동산 2017

런던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고. 특히 Kensington이나 Chelsea 같은 부촌은 가격 하락이 컸는데, 올초대비 15%나 빠졌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브렉시트가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금융업 종사자들이 런던을 뜨고, 매매 보다는 렌트를 선호하는 등…), stamp duty라는 취득세 인상과 공급측면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몇년간 런던 집값이 급증하면서, 런던 지역 주택공급이 늘었다고.

뭐 그렇다고 한다.

관련기사
Why London’s house prices are falling (the Economist, 11월 10일자)


Kensington (출처: Wikipedia)

+ 덧: 런던 사는 친구가 말하기로는 런던 외곽은 집값이 별로 안떨어졌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언급하지만 stamp duty (취득세)의 영향이 좀 있는 듯 하다. 작년 말에 영국은 stamp duty를 인상했는데, 다주택 보유자와 고가 주택에 세율을 높였다. (이전까지 영국은 다주택자도 똑같이 세금을 매겼음.) 쓰고보니 Kensington이나 Chelsea 같은 곳은 외국 부자들이나 금융권 중역 같은 이들이 사는 곳이니 나하고는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긴 하네.

비가 내리는 날에

하루종일 비가 오다가다 한다. 기압이 낮은 날은 두통이 따라 온다.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서 커피를 참고 있는 중이다. 꾸물꾸물한 날씨 때문인 건지, 커피를 건너 뛰어서 인지, 아니면 속이 쓰리다 못해 머리까지 지끈 거리는 것인지.

이놈의 드라이버가 어디로 간 걸까. 어제 이케아에서 서랍을 샀다. 조립을 하려고 박스를 풀고서야 드라이버가 없다는 걸 알았다. 머리를 쥐어짜다가 한 달 전 삐걱 거리는 의자 나사를 조였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도대체 드라이버가 어디 가버린 거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드라이버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난 드라이버가 정말 필요하다. 옆집 여자도 드라이버가 사라졌다고 한다. 정말 이상하다.

우울한 한국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대한 소식이다. 보통 교회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들으면 그건 대부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20년도 더된 이야기다. 그 교회는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가르쳤었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습, 교회 사유화, 개교회 중심주의. 우울한 이야기들은 이미 그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을까?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픈데, 커피를 한 잔 하고 오늘 잠을 포기해야 할지. 아니면 두통약을 하나 털어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은 드라이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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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s good

One of the most painful videos to watch. Sutherland Springs church service clip the week before the Texas church shooting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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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고향은 경북 산골의 집성촌이다. 200명 가량 모여사는 작은 공동체이다. 초등학교 때는 해마다 여름이면 놀러가곤 했었다. 보통 첫주는 내내 집집마다 어르신들 인사를 다닌다. 동네 어르신들은 서로의 집안사를 꿰고 있다. 그런 곳에서는 한 집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도 안타까워하고 오랫동안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어제 텍사스 한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 26살 퇴역 군인이 교회에서 총기 난사를 했다. 26명이 죽고 스무명 가량 다쳤다. 26명은 그 동네의 7%라고 한다. 작은 촌동네라 마을 사람들과 희생자들은 서로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이 교회에서 지난 주 올렸던 예배 영상을 보았다. 아주 작은 교회당이었다. 처음에는 찬양팀이 나와서 찬양을 하고 기타를 친다. 컨트리풍의 멜로디에 “God is good.” 이라는 단순한 가사가 얹혀있다. 찬양 도중에 진행자의 인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설교 전에 교회 목사가 짧게 공지를 한다. 몇일 뒤에 있을 교회 fall festival에 대한 공지이고 봉사자를 모집한다. hayride (트랙터 타기)가 주된 이벤트인 모양인데, 행사의 안전을 기원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아이들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기도한다. 몇 자 옮겨 적어 봤다.

Good to see you everybody, praise the Lord this morning. For each one of you, little chilly to get up this morning. But isn’t it great that we can gather here and just praise the Lord and warm up and praise his name?

We are praying the safety of the folks and safety for the hayride, safety for the environment of coming to the hayride, safety for workers, and safety of the all kids.

It’s okay to have fun in the god’s house. Those are God’s creation.

1시간 짜리 클립이었지만 처음 10분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예배 영상의 한 마디 한마디를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결말을 알고 보는 비극 영화 이상으로.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한다.

For now we see only a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고전 13:12-13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덧: US mass shooting fatalities by year, 미국 총기난사 사망자 연도별 통계, 원소스 마더존즈, 이코노미스트 재인용

루터가 세상에 남긴 것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를 재조명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요며칠 나는 종교개혁이 세상에 남긴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잊기전에 정리해본다.

나는 예전부터 루터보다는 에라스무스가 좋았다. 루터를 생각하면 혁명가, 확고한 신념의 고집스러운 신앙인이 떠오른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의 마지막 인물이다. 그는 세상의 불확실성과 현실의 모호함을 그대로 존중했다. 온건주의자,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루터와 끝까지 대립했다. 그는 종교개혁가들의 스승이었지만 종교개혁을 끝내 지지하지 않았다. ‘우신예찬’을 통해서 카톨릭의 부패를 비판했지만, 그의 개혁은 카톨릭의 안에 있었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여생을 마친다.

나는 ‘자유주의자’ 에라스무스의 경건함, 소박함, 신중함, 정직함이 더 좋다.

Erasmus (1466-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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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올렸던 에라스무스 포스트
회색인간 에라스무스 (2015년 3월 5일자)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정말 비텐베르크 성당에 게시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종교개혁을 1517년 10월 31일로 기념하는 것은 루터의 말년에 가서 이루어진 종교개혁 신성화 작업의 일환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루터가 주교에게 반박문을 보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한다.

사실 날짜가 뭐그리 중하겠는가. 95개조 반박문을 계기로 종교개혁이 시작이 되었지만 종교개혁이 전파된 것은 그 이후에 루터가 목숨을 걸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 신념은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a Gratia 오직 은혜 라는 그의 사상이다. (물론 여러가지 우연도 따랐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번 포스트 참조.)

루터에 대해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그가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로 대체했다. 여타의 고전이 그러하듯이, 모든이가 똑같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당장 루터 이후에 개신교는 수많은 교파로 갈리게 된다. 이에 양심/사상의 자유라는 관념이 형성 된다. 사상의 자유가 성경을 해석하는 일과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17세기만 해도 모든 사상은 성경(또는 기독교)이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종국에 사상의 자유가 자유, 인권, 그리고 개인의 발견으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역사가 명쾌하게 설명이 되는게 항상 불편하다. 종교개혁이 이 모든 일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까지 인정을 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 과정은 짧지도 깔끔하지도 않았다.

1517년에 루터가 던진 불씨로 인해 16-17세기 유럽은 전쟁터가 되었다. 구교와 신교는 200년 가까이 싸움을 한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서 벌어진 학살, 강간, 파괴는 21세기 시리아/이라크, 미얀마와 남수단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큰 차이가 없다. 이 난장판은 Peace of Westphalia 1648 베스트팔렌 조약, Act of Tolerance 1689 신교 자유령을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상가들 그러니까 로크 같은 사람이 들고나온 사상이 ‘관용의 정신’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종교를 개인의 영역으로 한정해야한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정말 흥미로운 건 구교와 신교가 목숨을 걸고 싸우던 그 시기에 오히려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은 타종교 (카톨릭/개신교/정교회)에 상당히 관용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이슬람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참고자료: Christianity, Islam, and Locke (the Economist, 2015년 2월 3일자)

John Locke (1632-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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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볼테르, 루소, 흄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이를 발전시켜 결국 이신론/무신론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구조의 변화들이 기독교의 세속화를 부추겼다. 현대에 와서 기독교는 개인의 신념으로 한정되고, 정교분리는 상식이 되었다. 현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현대화된 기독교가 더 진정한 ‘사랑’의 정신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그 기독교는 중세인이 믿었던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른 믿음이다.

다시 루터로 돌아오자. 그래서 루터가 500년전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게 ‘개인’, ‘인권’, ‘자유’로 연결되는 시발점이 되었을까?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는 관점과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생각의 뿌리에 따라 다르겠지.

사실 루터는 자신의 고집스러움, 반골기질이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불렀다는 것. 그리고 또 그로인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사상이 꽃피게 되었다는 사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다보면 참 묘한 감정이 든다.

1517년을 생각해본다. 나는 여전히 에라스무스가 좋다. 내가 그시대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교회 내부에서의 조용한 개혁을 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나 다시 루터를 생각해보면, 변곡점에 이른 어떤 순간이 오면 신은 혁명가의 손을 빌어 물줄기를 바꾸는 걸 즐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