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ber by Flannery O’Connor

이전 글에 이어서, 플래너리 오코너 Flannery O’Connor의 다른 단편, 이발사 The Barber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한다. 보통은 책읽고 기록을 남길때, 줄거리 요약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요새 같은 때에 이 소설은 줄거리 요약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대학 교수인 Rayber는 애틀란타에 있을 선거 Democratic White Primary 이야기를 이발사와 한다. 리버럴을 자처하는 그는 이번 선거에서 Darmon을 뽑는다고 했고, 이에 이발사는 Rayber를 ‘검둥이 옹호자’로 매도한다. Rayber는 자신은 ‘검둥이 옹호자’도 ‘백인 옹호자’도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발사는 Hawkson을 지지한다. 이발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Hawkson을 선동가 demagogue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쇼맨십이 대단한 사람이다. 이발사는 Hawkson이 백인 구역에서 검둥이를 쫓아내고, 번드르하게 호의만 베푸는 헛똑똑이들을 혼쭐 내며, 자기들을 돈 벌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 1947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왜 이렇게 익숙한 장면들인지.)

Rayber는 분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논리적인 반박문을 준비한다. 친구는 이발사와 논쟁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Rayber는 그만두지 않는다. 그리고 이발소에서 준비한 연설문을 읽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Rayber는 격분한 나머지, 이발사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내가 니 둔해 빠진 정신을 바꾸려고 이러는 줄 알아? 도대체 날 뭘로 보고? 내가 니 빌어먹을 무식함을 어떻게 해보려고 이러는 거 같애?”

그리고서 Rayber는 뛰듯이 그자리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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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nnery O’Connor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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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by Flannery O’Connor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은 지역적인가? 어떤면에서 그러하다.

Flannery O’Connor의 계시Revelation을 읽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남부 사투리, 노예 해방 이후의 시대 상황, 면화 농사가 기계화 되기 시작하던, 그시절 조지아를 생생하게 그린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은 읽기가 그다지 즐거운 책은 아니다. 짧고 간결한데, 읽고 나면 찝찝한 느낌이 남는다. (Revelation은 그중에서 그나마 덜 찝찝한 작품이다.) 그녀는 주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어두운 모습을 묘사한다. 인종차별, 종교적 위선을 가진 조지아 시골 사람들 이야기는 극단적이지만 묘하게도 나를 포함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로 읽힌다.

소재나 분위기, 찜찜한 결말을 감안해도 그녀의 단편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읽다보면 시골사람들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n-word와 인종차별 발언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담인데, 나는 영미 소설을 읽을 때,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버릇이 있다. 처음에는 영어 공부 차원에서, 나중에는 읽으면서 문장의 리듬감이나 속도감을 느끼는게 좋아서 그런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Revelation을 읽을 때는 소설 곳곳에서 n-word와 politically correct 하지 않은 대사들이 자주 등장했고, 급기야 아내가 오코너 소설 소리내어 읽기를 금지시켰다. 뒷부분은 눈으로 읽어야 했다.

소설은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도덕적으로, 겉모습으로, 교양측면에서 모든 면으로 보았을 때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Mrs. Turpin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아, 정확히는 Mrs. Turpin의 시각을 묘사하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어쨌든 그녀는 병원 진료 대기실에 앉아서 주위 사람들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종교심이 깊은(?) 그녀는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white-trash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ugly하게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1988년 올림픽,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일이 흔하지 않던 때였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다이빙 경기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티비에서 나오는 올림픽 경기를 직접 관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경기장에 가는 길에 여러 외국인을 마주쳤는데, 그게 또 그렇게 신기했다. 노란 머리, 파란 눈, 까만 사람, 새까만 사람, 더 새까만 사람… 갑자기 아버지가 특별히 더 새까만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깜둥이 좀 봐라~’ 라고 큰 소리를 내셨다. 내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나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교양이 없을 수가.

자신이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Turpin 여사는 병원 환자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동시에 속으로는 그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고 있다. 무심한 듯하지만 불쾌한 표정으로 Turpin 여사를 보던 Mary Grace는 느닷없이 책을 Turpin 여사의 눈에 집어 던지고 목을 조른다. 환상인듯 계시인듯, Turpin여사는 Mary Grace에게서 “Go back to hell where you came from, you old wart hog 흑돼지.” 라는 말을 듣는다. (Mary Grace라. 너무 대놓고 상징적인 이름 아닌가?)

집으로 돌아온 Turpin 여사는 warthog라는 단어에 집착한다. Turpin 여사는 warthog가 하나님에게서 온 메세지 라고 확신한다.

농장에서 저녁 무렵 돼지를 씻기던 Turpin 여사는 하늘에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욥기 3장이 떠올랐다.

“Why me?” she rumbled. “It’s no trash around here, black or white, that I haven’t given to. And break my back to the bone every day working. And do for the church.” “How am I a hog? Exactly how am I like them?”

마지막으로 그녀는 울부짖는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시관대 Who do you think you are?”

그녀는 새끼 돼지들이 엄마돼지 옆에 모여있는 광경을 본다. 붉은 빛이 돼지들 사이로 퍼지고 있다. 암퇘지는 나지막하게 그르렁 소리를 낸다. 이어서 그녀는 환상을 보는 데, 한 무리의 영혼들이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맨 앞에는 깨끗하게 목욕한 white-trash들이, 그리고 이어서는 흰색 가운을 입은 검둥이들이, 마지막에서야 세상에서는 존경을 받았던 Turpin 부인과 같은 교양 있는 백인들이 부끄러움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코너는 남부의 작가인가? 그렇다. 당시 남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 평범하고 평화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비일상적인 모습이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 처럼 느껴져 섬찟하다. 그렇게 보면 오코너의 소설은 남부 스럽지 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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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nnery O’Connor (사진 출처: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