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문을 닫을 때, 일어나는 일

꽤나 마음을 움직였던 뉴욕타임즈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기사 이야기 전에 내 경험부터. 한국에서 공장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연구소에 배치되었다. 회사는 기존 사업을 정리 중이었다. 정리 대상으로 선정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부산에 있었다. 부산공장을 정리하면서 몇몇 직반장들과 엔지니어들이 천안과 기흥으로 전환배치 되었다. 부산 공장의 직원 일부는 정리해고 되고, 일부는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고, 일부는 시위를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 시급을 받는 여공들은 그냥 공장을 그만 두지 않았을까 싶다.

공장을 정리했던 구체적인 과정은 잘 모른다. 공장 정리의 처음과 끝을 담당했던 인사/경리 담당자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디테일이 포함된 이야기는 없었다. 사람이 할일이 못된다고 했던 건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몇달 후에 부산 공장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덩그러니 빈 건물 바닥에는 노랗게 금그어둔 설비의 표식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공장 정문에는 피켓을 든 일인 시위자가 서 있었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베어링 공장의 40대 steelworker 쉐넌 Shannon의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치면 열처리 공정 반장 정도 되는 사람이다.

2016년 10월 쉐넌은 공장이 문을 닫고 멕시코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25살이 되던 해에 쉐넌은 베어링 공장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쉐넌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동거중인 남자친구의 폭력에서 도망쳐서 자립하기 위해서였다. 마흔 셋이된 지금은 열처리 공정의 베테랑이고 30키로가 넘는 철근을 맨손으로 옮기는 furnace 전문가이다. 그 동안 공장은 주인이 몇번 바뀌었고, 그녀는 몇몇 남자들과 사귀고 결혼/이혼을 했고, 또 집을 사기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17년 동안 쉐넌과 항상 같이 있었던 것은 공장일이었다.

“사업상의 결정입니다.”

상사가 쉐넌에게 한 말이다. 쉐넌과 함께 300명의 직원이 작년 이맘쯤 소식을 들었다.

쉐넌은 화가났다. 바로 공장을 뛰쳐 나갔고, 멕시코 공장이 불에 타버리라고 저주를 했다. 그리고 밤새 울었다. 그렇게 세 밤을 울고서 월요일날 다시 출근을 한다. 사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있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40대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을까.

몇달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트위터로 쉐넌의 공장을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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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노동자들은 몇 마일 옆에 이뤄진 캐리어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캐리어의 기적: 트럼프 취임 직후 에어컨 회사 캐리어가 멕시코 공장 이전을 취소한 일.) 쉐넌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 정치인이란 표를 얻기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투표를 잘 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민주당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말하는 것은 좀더 먼 이야기 였고, 일자리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트럼프의 트윗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Go President Trump!!”

시급 7 달러가 23달러가 되기 까지 17년의 시간이 걸렸다. 쉐넌은 자신의 공장이 만드는 고품질 베어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쉐넌은 자신이 담당하는 기계를 ‘타코’라는 애칭을 붙여 사람처럼 부른다. 쉐넌의 어머니는 정부보조로 식량을 타먹었지만 쉐넌은 자신이 일해서 번돈으로 두 자식들을 키웠다. 싱글맘인 자신을 지금에 이르르게 한 것은 일자리였다.

2005년 처음 열처리 공정에 배치되었을 때, 사수들은 쉐넌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열처리는 남자의 일이었다. 쉐넌이 처음 가스 밸브를 열었을 때, 사수는 천천히 열어야 한다는 주의를 주지 않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작은 폭발이 있었다. 쉐넌은 그날 공장을 때려칠 생각을 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쉐넌은 furnace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챌 수 있다. 쉐넌에게 ‘타코’는 꾸준히 들여봐야하는 투정많은 남자친구 같은 존재이다.

조금 딴 이야기지만, 마침 오늘 에이미 탄의 인터뷰를 들었다. ‘조이럭 클럽’의 작가 에이미 탄은 인터뷰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 했다. 강인한 여자였던 탄의 어머니는 탄에게 항상 말했다고 한다. ‘절대 남자를 믿지 말고, 외모를 믿지 말라.’ ‘외모는 서른이 넘으면 의미가 없고, 남자에 의존하면 너의 삶은 망가진다.’ ‘여자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 가려면 직업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쉐넌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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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공장 곳곳에는 낙서가 들어찼다. “Build a Wall!’ ‘Go to Mexico!”

그리고 멕시코 공장의 견습생들이 출장을 왔다. 공장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노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고작 시간당 4불의 야근 수당에 영혼을 팔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조용히 기술을 전수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 갈린 사람들의 인종이다. Rexnord 공장은 인종의 장벽이 거의 없는 곳이다. 흑백의 비율이 반반이고 타인종간의 교제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기술 이전에 거부하는 이들은 대다수 백인이고 흑인들은 묵묵히 회사의 방침을 따른다.

저소득 백인 남자들에게 미국은 우울한 곳이다. 20세기에 steelwork는 오로지 백인 남성들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자리가 흑인에게도 허용되고, 그다음에는 여성에게 허용되었다. 21세기가 오자 이제 그들의 자리는 없어지고 공장은 멕시코로 이전하게 되었다.

흑인은 좀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 Brookings의 설문 조사를 보면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관련 자료 링크

UNEQUAL HOPES AND LIVES IN THE U.S. OPTIMISM (OR LACK THEREOF), RACE, AND
PREMATURE MORTALITY

내가 생각하기로 이는 실제적으로 흑인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예전에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저소득자를 기준으로 흑인들의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백인들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전 포스트 링크: Black Americans See Gains in Life Expectancy (NYT) 2016년 5월 9일자 포스트

백인 여자 쉐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에 섰다. 예전에 남자들에게 텃세를 받아본 경험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에 따르면 실질적인 돈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아직 그녀의 수입에 의존한다. 딸은 퍼듀 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모자라다. 그녀의 손녀는 희귀병을 앓고 있고 계속해서 수술비가 필요하다.

쉐넌은 멕시코에서 온 견습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핏덩이 같은 멕시코 견습생들은 쉐넌을 종종거리며 따라다닌다. 흡연시간에도 쉐넌은 견습생들을 데리고 다닌다. 쉐넌은 견습생들이 자기와 같이 있지 않으면 헤꼬지를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듬해 봄. 쉐넌의 딸 니콜은 퍼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모자란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니콜은 쉐넌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이다.

휴식시간. 견습생 중 하나가 쉐넌에게 이야기를 한다. “My friend tells me that the reason a lot of people don’t like us is because we’re taking their jobs. 친구가 그러던데 여기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게 우리가 당신들 일자리를 뺐어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쉐넌은 답했다. “I’m not mad at you. I’m happy that you get the opportunity to make some money. I was blessed for a while. I hate to see it go. Now it’s your turn to be blessed. 내가 너한테 화난 건 아냐. 나는 네가 돈을 벌 기회가 생겨서 기뻐. 그동안 나는 운이 좋았지. 상황이 돌아가는 꼴이 짜증나.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그 운을 잡을 차례야.”

Rexnord 베어링 공장은 2주전, 그러니까 2017년 9월에 문을 닫았다. 쉐넌은 트럼프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Rexnord 공장이 묻혔을 뿐이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인 오바마케어 철폐는 희귀병을 앓는 쉐넌의 손녀에게 (안좋은 쪽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쉐넌이 보기에 트럼프 역시 이전의 다른 정치인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을 뿐이다. 17년 동안 베어링 공장 주인이 몇번 바뀌었던 것 처럼.

+ 덧: 이 포스팅은 내 생각과 기사 요약이 조잡하게 섟여 있으므로 영어가 되시면 원문을 직접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기자가 글을 잘 쓰길래 찾아보니 보스턴 글러브에서 퓰리쳐상을 받고 뉴욕타임즈로 스카웃 된 친구더군요. 좀 길긴 하지만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 덧2: 관련해서 podcast 링크(30분 분량) 도 남깁니다. 기사에 다뤄지지 않은 뒷얘기 그리고 쉐넌과 기자의 육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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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난사와 악에 대하여

 

지난 주말 있었던, 라스베가스 총기난사를 트럼프 대통령은 pure evil이라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서 시편 34편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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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rd is close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 (NIV Psalm 34:18)”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새번역 시편 34편 18절)”
 
트럼프가 인용한 성경 구절은 직접적으로 악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편 34편의 문맥을 보면 (바로 2절 앞에서도 언급이 되듯이) 시의 저자인 다윗이 느끼는 위로는 악을 징벌하는 절대자의 정의 구현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다.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ose who do evil, to blot out their name from the earth. (NIV Psalm 34:16)” “주님의 얼굴은 악한 일을 하는 자를 노려보시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이 땅에서 지워 버리신다. (새번역 시편 34편 16절)”
 
공연장 옆 건물 32층에서 (개조된) 기관총을 난사해 4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긴 사건을 두고서 an act of pure evil이라고 부르는 데에 동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을 듣고서 사람이 사람에게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경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evil이라는 단어에 대한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찜찜함은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반감에서 온 것은 아니다. 이러한 류의 참사에 대해 evil이라고 칭하는 것은 트럼프 이전 부터 있어왔던 정치적인 수사이다.
 
작년 올랜도 참사 직후, 스티븐 콜베어 쇼 (미국 토크쇼)에서 보수논객 Bill O’Reilly 빌 오라일리를 초대했다. 오라일리는 “This guy was evil.” 이라고 한다. 그리고 콜베어는 묻는다. “What is the proper response to evil?” 오라일리의 답변은 명쾌하다. “Destroy it. You don’t contain evil, because you can’t. You destroy evil. ISIS is evil, and Mateen is evil.”
 
악을 지칭하는 정치수사 중에서는 2002년 부시의 ‘악의 축 axis of evil’ 언급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당시 이란, 이라크, 북한을 3대 악의 축으로 꼽았다.
 
어떠한 존재를 악으로 지칭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악의 존재를 없애고 승리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귀결을 가져온다.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이해하는 조로아스터교는 궁극적으로 선의 승리와 악의 패배라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많은 신학자들이 problem of evil 악의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그럼에도 어느 하나 속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는, 연구를 해왔다. 그것은 완전무결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어떻게 악이 허용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악의 문제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그리고 칼빈에까지 이른다.
 
내게도 이는 항상 쉽지 않은 문제였다. 악의 문제에 대해서 최근 가장 공감한 생각은 악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의미가 없을 뿐이니라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악에 대한 질문은 도덕적인 권위를 전제하고서 시작한다. 악에 대한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로 바꾸는 것이 맞다. 그게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다.
 
악을 강조하는 정치적인 수사에서 오는 다른 찜찜함은 악을 강조하면 시스템의 문제를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전통에 따라) 악이라는 것이 인류의 조상에게서부터 내려오는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면, 어떠한 사회 제도나 규정도 그 악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 악에 대해서 (종교적인 해결책을 제하고 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은, 악을 규정하고, 그리고 악의 존재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이를 총기 이슈에 적용해서 말한다면, 총기 범죄는 악한 사람에게서 일어나기 때문에 총기 규제가 근본적으로 무용하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병리현상을 ‘사회적인 (또는 구조적인) 폭력’으로 보는가 아니면 개인의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로 보는가는 의견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이 두가지 관점 중 어느 하나에도 만족한 적이 없다. 나는 총기 난사에 관련해서 이 문제를 그렇게 근본적으로 끌고 가는 자체가 너무나도 피곤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까지 끌고 가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피로함을 느낀다.
 
+ 덧. 아래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전문이다.

다시금 불붙은 헬스케어 논쟁

미국에는 헬스케어 논쟁이 다시금 불붙었다. 오바마케어 폐지가 실질적으로 무산이 된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대안을 상정하면서 맞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샌더스가 다시 단일의료 보험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민주당 상원의원의 반정도가 동의를 했다. (지지를 표한 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 내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의원들이다.) 물론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도 않은 현 국회에서 샌더스 안이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화당 쪽에서는 좀더 원론적으로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 안 또한 통과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미국의 헬스케어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섟여있다. 단순히 민간 의료보험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완전히 자유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료시장이 정부의 통제에 있지도 않다.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복지형태로 제공하는 민간보험이 있고 (민간 의료보험),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어지는 메디케어가 있으며 (단일의료보험), 주에서 관리하는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가 있고 (주정부 관리), 소위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민간보험이 개인을 대상으로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오바마 케어). 그리고 2천8백만 정도 무보험자가 있다. 또 병원은 Veteran Health Administration (한국으로 치면 보훈병원)을 제외하고는 민간이 운영한다.

내 의견을 밝힌다. 나는 약간 심드렁하다. 의료보험이 누구에 의해 운영되는가가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틀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하부의 세세한 운영과 촘촘한 의료망이 관건이 아닐까 한다. 정말 크게 보자면, 의료보험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복지가 어떻게 설계되어있는 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실 복지의 문제로 들어가면 다양한 가치가 서로 부딪치게 된다. 의료분야를 예를 들자면, 1) 생명에의 가치, 2) 의료 접근성으로 대표되는 평등의 가치, 3) 선택의 자유 라는 다양한 가치관이 서로 상충하여 존재한다. 대부분의 정책입안, 집행자들이야 긍정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겠지만 세가지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미국의 의료비가 비싼 것은 의료보험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미국의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를 테면 환자당 의료진 수나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급여수준) 나는 이쪽이 좀더 타당하다고 보는 편이다.

굳이 미국식 의료에서 장점을 찾자면 미국이 의료 기술의 발전을 선도한다는 점. (워낙 돈이 많이 굴러 다니는 산업이다보니…)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공유한다. 2008년 자료니까 좀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여전히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 121페이지에 이르는 매킨지 보고서에 미국 의료 비용 분석이 빼곡히 들어있다. 영어가 부담스럽더라도 차트가 많기 때문에 해당문제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자료. 주요 차트는 아래에 첨부 했으니 참조. (뭐 적어도 차트 성애자인 나에게는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Accounting for the cost of US health care: A new look at why Americans spend more (McKinsey Global Institute)

작년에 나도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당시 포스트는 아래 링크를 참조.

Healthcare, Again (2016년 5월 17일자)

그런데 왜 지금와서 다시금 의료보험이 이야기 되는 것일까? 지겹지도 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미묘한 워싱턴 분위기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배넌의 퇴장이나 그리고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 사이의 잡음이다. 여기서 공화당 지도부라고 함은 오바마케어 폐지에 실패한 폴 라이언과 미치 맥코넬이다. 지난 주에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민주당 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멕시코 장벽 건설을 늦추는 대신에 다른 분야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분석을 한다.

For Conservatives, Trump’s Deal With Democrats Is Nightmare Come True (9월 6일자 NYT)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시 되돌려서 생각해보면, 트럼프는 (기존의 좌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뚜렷한 정치 노선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기성정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서 샌더스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의 초창기 선거유세를 들어보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망가진 주요 원인을 제약회사의 탐욕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샌더스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관련한 예전 포스트: 미국의 정체성과 도널드 트럼프 (2016년 3월 16일)
물론 트럼프는 당시 대안으로 단일 의료보험을 제안한 적이 없다. 정확히는 대안 자체가 없었다.

덧: 언급한 자료 중에 주요 차트를 같이 올린다.

국가별 PPP(구매력) 대비 의료비 지출

미국과 주요 EU 국의 약값 차이

OECD 국가별 기대 수명

선진국 국가별 의사 급여수준 비교

OECD 국가 CT/MRI capacity

인당 의료 진단 건수

국가별 입원일수 및 일당 입원비 비교

국가별 간호사 임금비교

국가별 bed occupancy rate 비교 (고정비 지출)

미국 병원 원가/이익 구조

제약회사 이윤율

연도별 신약 출시 수

전문의를 만나거나 수술 날자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 국가별 비교

 

 

 

선거 자금 모금 기록을 세운 보궐 선거

오늘 치뤄지는 우리 동네 보궐 선거는 엄청난 선거 자금이 모여서 화제이다. 몇주 전만해도 3천만 불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기사에 따르면 5천 5백만 불이라고. 참고로 대선때 트럼프 광고비 총 지출액이 2천만 달러가 조금 못된다. (출처: elections.ap.org/content/ad-spen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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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중간선거가 있어서 보궐 선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 이번에는 트럼프 신임 투표의 성격이 부각되면서 그리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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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전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후보 Ossoff에 엄청난 후원금을 보냈고, 최근에는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재벌들이 super PAC으로 몇천만불을 공화당 후보 Handel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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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신임투표의 성격을 띠면서 지역구에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면서 이렇게 되었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 시점에서 확실한 승자는 애틀란타 신문사와 방송국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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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글은 어제 올린 글이고 결과는 공화당 후보 Handel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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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 Handel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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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엘리트들의 반격

요즘 트럼프 대통령 탄핵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뉴스를 보면 매일 매일이 정치 미드를 보는 것 같다.

최근에는 FBI 국장 코미의 메모로 인해 탄핵 impeachment 이라는 i-word를 정치인들이 거론하기 시작했다. 탄핵이라는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성사 가능성이 작다. 그렇지만 최근 트럼프가 위기를 맞은 것은 워싱턴 법조인들의 반격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워 간단히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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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Comey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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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는 캐피탈 힐에 있다. 지금까지 네번 가보았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흰색의 건물들과 정갈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3년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했을 때는 킹목사 동상 주변으로 여유롭게 조깅을 하는 젊은 백인을 보았다. 그래서 인지 캐피탈 힐을 생각하면 조깅하는 젊은 엘리트 백인이 그려진다. (윈터솔져에서 캡틴아메리카도 그 주변을 조깅 했는데,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도 떠오른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위치한 DC 지역 근방은 고급 주택들도 즐비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 로비스트, 그리고 법조인들이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한 블럭 벗어나면 FBI 본부와 법무부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식당가가 있다. 그곳 식당가에서 식사를 할때 마주치는 사람의 (조금 과장해서) 열에 아홉은 법조인이다. 이 지역은 바로 트럼프가 해고했다가 역풍을 맞은 두 법조인이 활동한 공간이기도 하다. 한명은 FBI 국장 제임스 코미이고 다른 한 명은 법무대행 샐리 예이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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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y Yates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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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은 사업가들과 다르다. 이익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업가들과 달리 그들은 절차와 규정, 그리고 문서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펌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제임스 코미는 메모광으로 유명하다. 부시 정권에서 워싱턴 법조인으로 입문한 그는 민주당으로 물갈이 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가 커리어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부시정권에서 고문에 반대했다는 것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남겨둔 메모들은 의원들이 트럼프를 공격할 빌미가 되었다.

또다른 법조인은 샐리 예이츠 이다. 예이츠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트럼프가 무슬림 7개국 출입국 금지 조치를 추진할 때, 발목을 잡힌 계기 중에 하나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예이츠는 법적인 전문성을 살려서 조목조목 근거를 대며 트럼프 행정명령의 위헌성을 논쟁했었다. (관련 기사 및 동영상)

예이츠 관련 이전 포스트
No 라고 말할 의무 (2월 1일자 포스트)

그러니까 이제 트럼프의 싸움은 법조인의 영역으로 진입한 셈이다. 선거나 부동산 개발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법률가들의 세상은 절차, 문서, 그리고 규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업을 하며 수차례 소송을 경험한 트럼프가 왜 법조인들과의 싸움에서 (지금까지는) 이렇게 무력할까. 워싱턴의 법조인과 대통령의 관계는 의뢰인과의 변호사처럼 비밀 보장을 전제로한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고용된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국가에 충성할 것을 서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계약과 금전 관계가 아닌 자신의 커리어와 reputation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트럼프는 처음 무슬림 입국 조치를 추진할 때, 줄리아니 (그역시 법조인) 를 불러서 무슬림 금지 조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세련되게 다듬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코미를 불러서도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그는 워싱턴의 법조인들을 개인 변호사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계가 그렇게 간단한 곳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앞으로 전개될 일에서도 중요한 인물들은 법조인들이다. 우선 다음달 청문회 출석이 예정된 코미가 그 중심 인물 중에 하나이고. 이번 코미 해고 사태를 전후로 새로 떠오른 인물 Rod Rosenstein이 또 다른 등장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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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Rosenstein (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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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Rosenstein 역시 정치색이 강하지 않은 워싱턴 법조인이다. 법무부를 통해서 이뤄진 코미 해임 사태는 원래대로라면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가 중심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제프 세션스도 러시아 관련 의혹으로 이번일에서 직접 나서지 못했고, 대신 차관인 Rod Rosenstein이 나섰다. 처음에 코미 해임을 건의했다고 알려진 것도 Rod Rosenstein이고 (물론 나중에 트럼프가 자기 입으로 자기가 코미를 해임했다고 말해서 이도 유야무야 됐긴 하다.) 그리고 특수 검사 Robert Mueller를 임명한 것도 로젠스타인이다. (출처 wikipedia)

글쎄다. 워싱턴의 복잡한 셈법으로 트럼프가 로젠스타인을 희생양으로 낙점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워싱턴 법조인이 그리 naive할리 없다. 로젠스타인도 어떤 면에서 보면 특수검사 뮬러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니까.

관련 기사

JAMES COMEY AND THE REVENGE OF WASHINGTON’S PROFESSIONAL CLASS, the New Yorker, 5월 17일자

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의 유사점과 차이점

네덜란드 선거는 이번주이고, 프랑스 대선은 다음달이다. 몇 주전부터 정리해보려고 맘먹었는데, 도무지 짬이 안났다. 한국 뉴스 따라잡기도 버거웠던 지난 주였기도 하고. 그래서 어설프지만 너무 늦어지기 전에 끄적이기로 결심.

우선 배경 설명으로 프랑스 대선에 관련 지난 포스트는 아래 링크 참조.

다가오는 프랑스 대선, 3월 3일자 포스트

관련기사 : The Economist | French politics: Fractured

Nationalism 또는 소위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은 여러가지 유사점이 있다.

세계화에 뒤쳐진 ‘잊혀진’ 사람들의 반란, 반이민정서/반이슬람정서에 기반, 기성정치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아웃사이더에 대한 선호,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운동.

지난주 이코노미스트지는 르펜의 국민전선 지지도와 실업률 지도를 같이 보여주는데, 직업전선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이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모양새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래 도표 참조)

런던과 타지역의 투표 양상이 상이했던 브렉시트에서 처럼, 파리와 타지역의 투표 양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래 도표는 파리에서 멀어질 수록 국민전선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민전선의 지지자는 트럼프/브렉시트 지지자와 유사하게도 저학력층이 다수이며, 남성지지자가 월등히 많다.

이제 차이점을 몇가지 꼽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프랑스에서 nationalism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 좀 의외이긴 한데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노동법이 강하고,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최근 유럽경기가 살아나는 추세라고는 하나, 새로생긴 일자리의 80%가 비정규 단기 (심지어는 한달 미만) 직업이기에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크다.

관련 포스트: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젊은이들, 3월 1일자 포스트

둘째는 옆나라 독일과 비교되는 프랑스의 위상 추락이다. 유럽을 이끄는 독일에 비해 프랑스의 각종 경제 지표는 지난 15년간 제자리 걸음이다. 이를 프랑스인들은 décrochage, 즉 decoupling이라고 한다.

또 Euroseptic의 관점으로 이를 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자신의 나라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 국민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EU는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체이다. 마린 르펜은 줄곧 유럽통합은 이뤄질 수 없는 망상일 뿐이고, 각 나라의 sovereignty 주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브렉시트 때에 올린 글로 설명을 대신한다.

관련 포스트: Euros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2016년 7월 2일자

이래서는 프랑스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나라이다. 프랑스의 정신은 어디로 간것인가. 바로 르펜이 강조하는 내용이 이것이다. 르펜은 프랑스의 정신과 국민전선의 정체성을 연결시킨다. 르펜은 남부에서는 반 이슬람을 말하고, 소위 프랑스의 러스트 벨트인 북동쪽에서는 반세계화를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 재건을 말한다.

이는 마린 르펜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에게서 당을 물려 받으면서 리브랜딩(?)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린 르펜은 나치를 찬양하고 유대인을 혐오했던 아버지의 색을 빼는데에 주력해왔는데, 심지어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시키는 강수를 둔다.

르펜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결선투표를 하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제가 아니라면, 지지율 기준으로 국민전선은 제1 당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르펜이 없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이전의 프랑스의 정신을 끌어다가 자신의 당의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위 laïcité 라이시테라는 프랑스 특유의 세속주의는 반이슬람 정서와 맞물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관련해서 이전 포스트: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2016년 8월 30일 포스트

르펜의 반무슬림 정책이 네덜란드의 반 무슬림 정당 PVV의 Geert Wilders의 정책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 세속주의의 강한 전통을 가진 프랑스와 달리 네덜란드는 기독교 기반의 정치 전통이 최근까지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르펜은 RN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RNW는 네덜란드 언론이고 해당 인터뷰는 2011년에 이뤄졌다.

“그게 바로 제가 Geert Wilders와 다른 점입니다. 그는 꾸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이슬람을 반대합니다. 문자 그대로 꾸란이나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프랑스 정신을 벗어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반대합니다. 샤리아법은 프랑스의 원칙, 가치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Geert Wilders and me. He reads the Qur’an literally: you can’t interpret the Qur’an – or indeed the Bible – literally. I resist fundamentalists who want to impose their will and law on France. Sharia Law is not compatible with our principles, our values or democracy,”

source: https://www.rnw.org/archive/le-pen-says-shes-no-wilders

르펜의 정치관 동의 여부와 별개로 르펜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참 명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느낌까지 주는 몇몇 (사실상 대다수의) nationalist들과 달리 르펜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히 알고 말을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리고 트럼프 등장 훨씬 전부터도 반이슬람, nationalism의 기수 역할을 해왔던 르펜의 존재감으로 나타난다.

르펜은 어린 시절부터 (극우 정치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따로 커왔고, 두차례 이혼을 겪으면서 생활 정치인으로 홀로 섰다. 우는 아이들을 보며 화장실에서 라디오 인터뷰를 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는 테러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권력에의 의지를 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르펜의 도전에 이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르펜 개인사에 관한 취재 기사 : MARINE LE PEN, L’ETRANGERE, Magazine 1843

콜베어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 재미있다. 예전에 대학로에서 안석환씨가 연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본 생각나네.

고도를 기다리며, 스타트랙을 봤었던, 그리고 오바마케어, 트럼프 관련 뉴스를 follow하는 사람이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트럼프의 트윗이 개별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

Fun chart: 트럼프의 트윗이 개별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

How much Donald Trump’s tweets jolt stockmarkets (the Economist,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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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대부분 그렇지만, 트윗을 투자정보로 활용하려면 초단위로 움직여야 할듯. 그래도 트럼프의 트윗을 보는 건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정보 비대칭을 없애주는 소스인 것 같기도…

스티브 배넌과 이민자 정책

이민자에 대한 배넌의 시각을 정리한 6분짜리 클립을 공유한다.

배넌에 대해서는 산타님과 Hyunsung Oh 교수님을 비롯해 이미 여러분이 언급하셨다. 그렇지만 글로 읽는 것과 직접 배넌의 육성으로 듣는 것은 임팩트가 달랐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배넌은 기독교-백인이 미국의 가치를 대표한다고 확고히 믿고 있고, 아시아계나 무슬림들은 (합법적 이민 포함) 미국에 해가된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배넌이 트럼프의 ‘복심’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에 세세히 파헤쳐진 바이고. 향후 그는 미국의 외교에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클립을 보다보면 이민자들에 대해 배넌은 비즈니스맨 트럼프 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트럼프가 ‘high-skilled immigrant’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아시아인에 장악되어 있고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라는 단순히 경제 이상이다 more than economy, 국가는 시민 사회 civic society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견해를 따르자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이방인일 뿐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 전에도 무슬림 입국을 금지해야한다고 말했다. 무슬림 입국 심사와 비자 발급 심사 프로세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화당 인사의 의견을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그건 무의미한 돈낭비라고 한다. 아예 무슬림을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이다.

어떤 분들은 트럼프의 지금의 행동이 쇼일 뿐이라고 말하고,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판을 흔드는 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에 트럼프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넌이 생각하는 미국인은 기독교/백인 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해서, 어떻게도 쉴드를 칠 수가 없다.

나는 배넌과 밀러가 트럼프에게 중용되는 한, 그리고 그들의 입김이 들어간 정책이 실제로 집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한은 그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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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배넌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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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령의 위헌 논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헌법학자 John Yoo교수가 NYT에 올린 기고문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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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Yoo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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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배경 설명을 하자면 John Yoo 교수는 한국계 미국인 헌법학자이고 현재 UC 버클리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공화당쪽 분이고 부시 때 법무부 부차관보로 일한 경력이 있다.

기고문 내용과 달리 기사 제목은 다소 자극적이다. Run amok은 미쳐 날뛴다는 뜻인데, 기고문을 읽어보면 본인은 행정명령을 통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는 동의하지만, (해밀턴과 그의 연방주의적 헌법 정신에 근거하여) 현재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정도의 내용이다.

일전에 행정명령에 대한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 (2월 3일자 포스트)

이전 포스트에도 적었듯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미국정치의 핵심 가치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도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지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권력이 정확하게 삼분지일로 나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세어졌고 직접민주주의의 경향이 강해져왔다. 특히나 최근 몇십년은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지는 추세인데, 어떤이는 그 시점을 아들부시 때로 보기도 하고, 어떤이는 오바마 때로 보기도 한다. (이부분은 본인의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갈리는 듯 하다.)

두 대통령 모두 행정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부시가 내세웠던 논리는 9/11 테러 이후 안보위협에 대해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였고 (참고로 이글을 기고한 John Yoo 교수가 이러한 법적 논리를 부시에게 제공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오바마는 국회의 다수가 공화당이고 정체된 gridlock이기에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이전 포스트에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자제한 편이었다고 썼지만, 그것은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오바마는 초반에 행정명령 사용에 부정적이었고 gridlock된 이후에 행정명령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다시 원글로 돌아가자. John Yoo 교수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최근 줄리아니가 공개한 일화이다. 참고로 줄리아니는 트럼프 옆에서 법무장관을 노렸고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결국 트럼프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 줄리아니에 따르면 트럼프가 ‘무슬림 밴’을 하고 싶은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고 한다. 당시는 몇몇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는 정도의 이야기였다고…

그러나 트럼프는 무슬림 밴의 아이디어를 내려놓지 않은 듯 하다. 결국 법적으로 가능한한 문제가 없도록 포장을 해서 나온 행정명령이 지난주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인 것이다. 백악관은 정상급 법조인들의 지원을 받는 곳이고 그들의 검토 이후에 세련되게(?) 포장된 행정명령이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였던가 보다. (처음에 트럼프는 ‘ban’이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으나, 공식적인 채널로 ‘b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다시 부인.)

두번째는 법무장관 대행 샐리 예이츠 해고 과정이다. 샐리 예이츠가 트럼프에 반발한 것은 단순히 정치 논리 만은 아니었다. 헌법에는 무슬림과 이민자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간의 판례와 연방 대법원의 전통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그는 행정명령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강행하는 것은 대통령의 월권행위라고 판단하여 불복을 결정하였다.

그에 맞서는 대통령의 반박은 법적인 논리가 아니었다. 트럼프는 예이츠를 편지한장을 보내서 해고했다. 그 편지에는 예이츠가 불복했기에 국경 통제와 불법이민자 관리를 어렵게 될 것이고 그녀는 배신자라는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예이츠 관련 이전 포스트 (2월 1일자 포스트)

미국의 이민자 정책과 관련한 법적 공방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한 기사 였기에 정리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