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하여

어제 샤워를 하며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시작은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떠올리면서 였다. 넷플릭스는 정액제로 과금을 한다. 회원들은 무제한으로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얼핏 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무제한 이라고 여겨지는 컨텐츠는 시간이라는 제약조건 때문에 실상은 무제한이 될 수 없다. 누구에게나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크게 보면 레져시간은) 정해져있다. 부페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게다가 음식과 달리 컨텐츠는 한계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좋은 컨텐츠만 확보해 두면 그다음은 회원수를 늘릴 수록 그만큼 이익이다.

젊어서는 간과하기 쉽지만 시간은 유한한 재생불가능한 자원이다. 다양한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다. 돌이켜보면 전공을 바꿔서 가방끈도 늘려보고, 사는 나라도 한차례 바꾸어 보았지만, 흰머리만 생겼을 뿐 그다지 현명해 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부유한들, 아무리 성취를 이룬들,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마침 시간에 대한 the Economist 기사를 보았는데 공유한다. 2014년 크리스마스 특집기사라 the Economist 기사 치고는 좀 긴편인데, 그래도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 하다.

In search of lost time: Why is everyone so busy? (the Economist, 2014년 12월 20일자)

1930년대에 케인즈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예측한 적이 있다. 자신의 손자 시대 쯤 가면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일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천재 케인즈도 시간에 대한 예측은 전혀 헛방을 짚었다.

물론 (미국 기준으로) 주당 근무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40년 전에 비해 미국인들은 주당 12시간을 덜 일하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의 도움으로) 여성들은 요리와 청소에 시간을 덜 소비한다. 남편들도 60년대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서 가사활동에 보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더 시간이 없다고 느끼게 된 것 일까.

the Economist 지는 두가지 정도로 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첫번째는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고, 두번째는 시간 자원 배분의 양극화이다.

18세기에 시계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점차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게 될 수록 점점더 시간을 쓰는데 인색해진다. 토론토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실험을 했는데, 두 그룹에 똑같이 86초 짜리 오페라 도입부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그룹에는 실험 전에 시급 hourly wage에 대한 질문을 했고, 이 그룹은 오페라를 들으면서 더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시간이 적다는 불만을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UT Austin과 서강대학교 교수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일 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상 바쁘게 살면 좀더 부유한 삶을 살게될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더욱더 바쁘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을 하는 현대인은 좀더 시간을 쪼개서 ‘멀티태스킹’에 몰입한다. 나는 1970년대 한 경제학자가 말한 성공한(?) 사람의 레져 시간 묘사를 보고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브라질 산 커피를 마시면서, 네덜란드산 시가를 피우고, 동시에 프랑스 꼬냑을 마시면서 뉴욕타임스를 읽고, 브란덴브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스웨덴 출신의 와이프와 여가시간을 갖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지금와서는 다소 우습게 읽히지만, 현대인의 욕망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다. 그러니까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살고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꿈은 여가시간에 그 시간을 다시 쪼개어 동시에 여러가지를 멀티로 즐기는 것이다.

19세기에는 레저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면, 현대인에게는 바쁨 그 자체가 부유함과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페북/인스타를 둘러봐도 놀러가는 자체가 자랑할 꺼리는 아니다. 휴가를 얼마나 꽉채워서 즐겼는가 그와중에도 나는 얼마나 빡세게 사는 가를 보여주는게 관건이지.

인터넷 문화는 멀티 태스킹과 성급함을 일반화 시켰다. 현대인의 시간 감각에서 250 밀리세컨드는 의미가 있는 차이이다. 구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250밀리 세컨드 느린 웹사이트를 덜 방문한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삶과 세속적인 성공에의 욕망 추구는 다분히 미국적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삶을 상상할 때 미국인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글래스도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반이상이 주어진 휴가의 반정도를 쓰고 있고, 15% 정도는 휴가를 전혀 쓰지 못한다고 한다. 글래스도어 자료의 신뢰성은 둘째 치더라도 미국이 한국 사람들 생각하는 것 만큼 널널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유럽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적인 기업문화를 속물적이라고 말하지만 유럽도 휴가 문화가 예전만 못하다.

시간을 쪼개쓰는 현대인의 문화가 보편적이 되면서 가장 도전을 받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여성의 직장활동이 늘어나는 동시에 좋은 엄마의 기준은 높아졌다. 시간 소비의 절대치 기준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미국기준) 그러나 아무리 가사분담이 잘 되어있는 가정이라고 하여도 여성의 가사 노동은 요리나 청소, 빨래 그러니까 아무리 해도 티도 안나고 끝도 없는 일인 경우가 많고 남성의 경우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또는 (미국의 경우) 잔디 깍기 아니면 집 수선, 가구조립 같은 좀더 티나는 또는 재미있는 일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가구 조립 같은 일들을 즐기지는 않는다만 미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

하나만 더 보태자면, 그러니까 이것도 미국 중산층 (또는 상류층) 부모의 느낌이겠지만, 중산층 가정은 대부분 계획을 해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는 준비된 상태로 아이를 갖는다. 노산이 늘었고, 교육받은 사람들일 수록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예전보다 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부모님과 비교했을 때 훨씬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시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런 글을 올리는 나도 최근에 블로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각해 볼 수록 참 묘하다. 그러니까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을 좀더 잘 쓰고 많은 것을 얻을 것 같지만, 실상은 시간이 부족한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고 더 불행해 진다.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시간이다.

the Economist지 기사는 레져에 대한 1962년 Sebastian de Grazia의 고전 ‘Of Time, Work and Leisure’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나도 여기에 옮겨두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Lean back under a tree, put your arms behind your head, wonder at the pass we’ve come to, smile and remember that the beginnings and ends of man’s every great enterprise are unti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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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관련 이전 포스트 링크
젠더와 육아이슈 (2016년 1월 7일자 포스트)
산타크로체님 블로그: 왜 고학력자들은 끼리끼리 결혼할까?
직장문화와 성평등 (2016년 9월 12일 포스트)
유럽인의 긴휴가에 대한 수다 (2016년 9월 13일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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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노쇼 경제 활성화론과 케인즈 승수

최근 이재명 시장님의 ‘호텔 노쇼 경제 활성화론’이 화제가 되었다. 뒷북이지만, 케인즈 승수가 같이 주목을 받는 것 같아서, 작년에 올렸던 ‘경제학 이론: 케인즈 승수’ 편을 다시 공유한다.

관련해서 권남훈 교수님의 설명 링크 (페북 포스트)

예전에 잘 모르고 정리했고, 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좀더 알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야무지고 균형잡히게 잘 썼다.

아~ 그니까 결론은 자뻑하는 맛에 페북한다.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4.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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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4.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경알못이 보기에 경제학자들은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항상 논쟁하는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버나드쇼는 이런 말을 남겼을까. “모든 경제학자들을 쭉 이어서 길을 만든다면, 그들은 결론이라는 도착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If all economists were laid end to end, they would not reach a conclusion.”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는 경제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거리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케인즈 승수 Keynesian Multiplier’ 이다. 케인즈가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발표한 이후로 그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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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cal multipliers – Where does the buck stop?, the Economist, 8월 13일자

1928년에 대공황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대공황은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국인들은 치솟는 물가와 파운드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당시 영국 경제학자들은 소위 말하는 ‘재무부의 견해 Treasury View’로 상황을 판단했다. 그들은 영국 정부에 닥친 재정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재정을 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리카도의 대등 정리를 계승한 사상이다. 정부의 지출은 결국에는 빚이고 미래에 세금을 걷어서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긴축재정을 주장했다.

잠깐, 이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작년 그렉시트 때 일부 경제학자들이 말했던 내용과 유사하다. 그들은 그리스의 방만한 재정으로 유럽에 위기가 왔으니 그리스의 재정을 건전화하는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Treasury view는 시카고 쪽의 민물 경제학자 freshwater economist들로 이어진다. 물론 이들이 treasury view를 정확하게 똑같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민물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뒤에서 다시 살펴 보자.

어쨌든 케인즈는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유동성 선호liquidity preference’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일정수준의 돈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정부가 지출을 줄인다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게 되고, 총수요가 줄어들어 재정적인 문제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는 ‘승수 효과 Multiplier effect’를 말한다. 이는 거칠게 요약하면 정부의 지출이 국가의 소득을 증대시킨다는 이론이다. 예를들어 정부가 1조원의 예산을 들여서 학교를 짓는다고 하자. 그리고 학교를 짓는데에는 500억원이 든다. 그러면 이 건축회사에게 500억원이 생긴다. 그런데, 건축회사는 건물을 혼자 지은 게 아니다. 페인트공, 전기기술자, 시멘트 업자를 고용해서 건물을 짓는다. 그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야 된다. 그래서 70%를 수수료로 지불하고서 이제 30%가 현금으로 남는다. 이때 1/30%를 계산 하면 3.33이 되는데, 이게 케인즈가 말하는 승수 multiplier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건축회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인트공도 있고 전기기술자도 있는데, 계산해보니까 모두가 30%쯤을 현금으로 남긴다면, 결론적으로 승수가 3.33이 되는 것이다.

근데 3.33이 무슨 의미일까. 바로 3.33의 비율 만큼 국가 소득이 증대된다는 이야기이다. 정부가 1조원 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3조 3천 3백억 만큼 소득이 증가한다. 완전 마술이다.

이러한 견해로는 재정긴축은 최악의 수이다. 케인즈가 가정한 세상에서 불황이 오면 사람들은 유동성을 선호하고 현금을 일정 수준 가지려고 하는데, 이자를 낮춰봐야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이를 ‘crowd-in’ 이라고 하고, 고전 경제학이 보는 관점을 ‘crowd-out’이라고 한다.

케인즈 경제학이 가장 흥했던 시기는 2차대전 즈음이다. 영국과 미국은 전쟁을 위해서 엄청난 재정 지출을 했고, 이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 이는 케인즈 승수효과를 완벽하게 입증하는 듯했다.

또한 미국의 Alvin Hansen과 Paul Samuelson은 케인즈 경제학을 계승하여 방정식을 완성한다. (Hansen–Samuelson multipliers) 아참 여기서 한센과 사무엘슨은 연재 2회와 3회에서 나왔던 그 사람들이 맞다. 대가들은 여기저기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 상황은 역전된다. 케인즈식 처방전이 잘 안먹히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온 것 이다. 이때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로버트 루커스Robert Lucas같은 학자가 등장한다. (참고로 루커스도 연재 2회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의 공급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면서 케인즈 승수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루커스는 ‘합리적 기대 rational expectation’라는 개념을 활용하여서 재정정책은 납세자들의 미래 지출에 대한 기대치를 바꾸어 결국 케인즈 승수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시카고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들을 흔히 민물 경제학자 freshwater economist라고 한다. 오대호 근처에 있는 시카고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논쟁을 좋아하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겠는가. 민물 경제학자들에 반대하는 짠물 경제학자 saltwater economist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해안에 위치한 학교에 재직했기에 짠물 경제학자라고 불리운다. 이들의 다른 이름은 New Keynesian이다. 이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은 Larry Summers, Greg Mankiw, Stanley Fischer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재정 정책 fiscal policy대신에 중앙은행 central bank의 역할을 강조했고, 중앙은행이 잽싸게 deft 경제를 조정하여서 승수효과를 뽑아내야 (squash) 한다고 말했다.

그럼 현재는 어떨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계는 또한번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승자(?)가 없다. 다만 불황이후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케인즈 승수에 관한 논쟁이 흥미롭다. 2008년 이후에 케인즈 승수를 다시 계산하는 논문이 쏟아졌다. 예를 들자면, IMF는 케인즈 승수를 계산해서 1.5라는 결론을 낸 바있다. 사실 지금 이자율은 거의 제로에 이르렀는데, 이 상황에서는 재정정책 말고는 쓸만한 탄환도 없다. 80년 전 옛날 책을 다시 뒤적이는 수밖에는…

+ 덧1: 이번 연재는 조금 늦었습니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고 (애는 밤마다 왜그리 서럽게 울어대는지), 또 별생각 없이 시작한 경제이론 연재가 너무 큰 관심을 받는 바람에 부담이 커져서 이기도 합니다. 경제학 비전공자인 경알못이 경제학 썰을 푸는데, 경제학 교수님과 박사님들이 보고 있으니 얼마나 살떨리던지요. 어쨌든 그냥 용감하게 올립니다. 어차피 제 포스트는 공부차원에서 하는 거니까요. 대신 오류가 있으면 바로 지적해 주실 것을 페친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오늘 포스팅은 주제 자체가 워낙 논쟁적이라 또 한번 살떨리네요.

+ 덧2: 다음 순서는 내쉬 평형과 먼델 플레밍 모형입니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2.금융시장의 불안정성 – 민스키 모멘트

나는 ‘비주류’라는 말이 싫다.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비주류는 ‘주류’, ‘비주류’를 구분지으면서 미디어에서 검증된 기초 과학지식을 흔들 때 사용하는 오염된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계에는 비주류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하이먼 민스키 Hyman Minsky (1919-1996)이다.

Financial stability – Minsky’s moment (the Economist, 7월 30일자)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경제학자 민스키는 평생을 무명으로 지냈다.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그는 후기 케인즈학파의 학자로 분류되는데, 말년에 그는 한물간 케인지언으로 취급되었다. 학계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잊혀진 그의 이름을 사후에 발굴해낸 건 금융업계 투자자들이다. 미국 펀드 운영사 PIMCO의 Paul McCulley는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민스키를 인용해 민스키 모멘트 Minsky Momen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리고서도 민스키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서 재조명되었고, 지금은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가 경제/금융권에서는 유행어가 되었다. 심지어 폴 크루그먼은 ‘이제 우리는 모두 민스키 주의자 들이다. We are all Minskyites now.’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프리드만이 말한 ‘We are all Keynesians now.’의 인용이다.)

도대체 민스키가 제시한 이론이 뭐길래?

민스키는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통해서 호황이 길어질 수록 그 호황이 종국에는 불황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했다. 민스키는 주로 금융시장과 그 불안정성에 연구를 집중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는 오늘의 돈을 내일의 돈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공장을 짓는다고 하자. 회사가 공장을 짓는 이유는 이윤을 남겨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함이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을 하기 위함이다. 회사가 공장을 짓기 위해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을 쓰던지 아니면 남에게 빌려야 한다.

여기서 민스키는 돈을 빌리는 financing의 방법을 세가지로 분류한다. 그게 바로 헷지 금융 Hedge financing, 투기 금융 speculative financing, 폰지 금융 Ponzi financing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hedge financing은 공장의 현금 창출이 원활하여서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상환이 가능한 자금조달을 말한다. 가장 안전한 금융인 셈이다.

반면 speculative financing은 hedge financing에 비해 다소 위험하다. Speculative financing에서 회사의 현금 흐름은 이자를 갚을 정도는 되지만 원금상환을 하기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는 원금상환을 연장하고 (roll over) 계속해서 빚을 진다. 단, 회사가 계속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면 speculative financing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이 오를게 확실하다면 원금상환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원리와 같다.)

마지막은 Ponzi financing이다. 이는 가장 위험한 형태의 financing인데, 회사가 원금 뿐만이 아니라 이자를 갚을 능력도 되지 않는 financing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공장 설비의 일부를 팔거나, 다른 곳에서 빚을 더 끌어와 돌려막기를 해야된다. 민스키의 가설은 경기가 안좋아지면, hedge financing을 하던 회사들이 speculative financing 그룹이 되고, speculative financing을 하던 그룹은 Ponzi financing을 하는 그룹이 된다고 말한다.

왜 기업들은 무리하게 돈을 빌릴까?

민스키의 설명은 바로 장기간 지속된 호황에 있다. 모든 기업이 처음부터 투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인 호황이 계속되고 돈을 빌려서 판을 크게 벌이면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면,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손해보는 행위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은행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돈을 빌려주면 그만큼의 이자가 들어올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굳이 엄격한 신용 관리를 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민스키가 금융불완전 가설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장기적인 호황이 결과적으로는 경제 기반을 허약하게 fragile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민스키는 평생 비주류로 살았을까?

이코노미스트 지에 따르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은 합리적 시장efficient market에 대한 믿음이 강한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유진 파머나 로버트 루커스 같은 학자가 이에 속한다. 그들의 이론은 모든 정보가 시장에 완전히 공개되면, 시장은 평형 equilibrium 상태가 된다고 이야기 했다. (거칠게 옮기자면, 호황이 지속되는 상태)

또 민스키의 입장은 정통 케인지언과도 달랐는데, 이를테면 그는 힉스와 한센의 IS-LM 모형이 케인즈의 이론을 오해해서 너무 나아갔다고 말한다. (IS-LM 모형에 대해 좀더 설명하면 좋으련만, IS-LM은 좀 수학적인 이야기고 포스트로 소화할 내용은 아닌듯 하다. 궁금한 분은 주위에 거시 경제 전문가에게 개인지도를 받는게 더 좋을 듯.) 민스키는 IS-LM model이 금융부분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담이지만, 학부에서 거시경제를 배울 때 IS-LM을 케인즈와 묶어서 배우기 때문에 IS-LM을 케인즈가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IS-LM 모형은 힉스와 한센의 작품이다.

민스키는 하바드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처음 지도교수가 슘페터였다. 그런데 중간에 슘페터가 죽고서 민스키는 IS-LM을 만든 한센을 지도교수로 택하지 않고, 레온티예프에게서 사사를 받는다. 레온티예프도 노벨상 수상자이고 훌륭한 학자이지만 민스키가 케인즈를 숭배했다는 걸 생각하면 한센을 지도교수로 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의외이다. (개인적인 망상이지만, 민스키가 한센과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닐까? IS-LM을 비판했던 것도 그렇고…)

어쨌든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기에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가 자명하게 들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가보다. 게다가 당시 학계에서 금융위기는 인기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민스키가 금융위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1919년 생으로 대공황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민스키가 비주류였던 두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이론이 수학적quantitative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민스키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류경제학이 수식과 모델의 정교함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와 상반된다. 민스키가 수학을 못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학부때 시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뻘소리지만, 어쩌면 민스키는 수학이 싫어서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는지 모른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수학은 역시 중요했던 것이다… ㅋ)

사실 그가 이론을 전개할 때 수학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학문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그는 이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했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관심사는 특정한 상황 (특히 불황에서의 금융시장)이었지 일반화된 경제 전반이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인 태도는 지금에 와서도 그의 이론을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기 힘들게 만든다.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그의 이론이 특정 주제를 설명하기에는 좋지만, 역시나 모델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 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중국 경제의 침체를 두고서 혹자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말을 끌어다가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민스키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단면을 묘사한 이론이기에,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민스키가 무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 지 모른다. (물론 민스키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를 만들지도 않았다.)

+ 덧: 앞으로 연재에 대하여

지난번 정보경제학 information economics 페북 포스트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내가 가진 경제학 지식이라는게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연재도 그저 이코노미스트지의 연재를 읽고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정도이다. 딱히 번역도 아니고 내가 소화한 만큼 정리하기 때문에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시고, 또 연구하시는 훌륭한 페친분들께 주저없는 지적을 부탁드린다. 그게 내 공부에도 더 도움이 된다.

어쨌든 오늘은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연재 순서를 따라서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 케인즈 승수, 내쉬 평형, 먼델 플레밍 모형을 정리할 예정이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