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종교인들의 정치성향 조사

요약하자면 (기사 제목대로) 목사들(특히 침례교)은 공화당지지, 랍비들은 민주당지지, 신부들은 중도파라고한다. 개신교를 더 자세히 보면, 그안에서도 성공회 주교와 장로교 목사들은 다소 진보적인 편이고, 감리교 목사는 중도, 침례교 목사는 보수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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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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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종교인과 해당 종교 신자들이 같은 정치성향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감리교를 예를 들자면 신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많지만 목사들은 중도이다.

기사에는 더 상세한 설명도 있고, 종교인들의 성별비, 나이 평균, (종교인이 사는 지역의) 평균 가구 소득과 교육수준 등의 세부자료가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기사를 참조.

트럼프와 민주주의

앞서 소개한 권력 유지에 대한 동영상을 한 블로거께서 한글로 소개해 올려주셨다. 장면 하나하나 캡쳐해서 해설을 하고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민주주의는 옳기 때문에 필요할까? 권력은 어떻게 유지가 되는가? (1)

민주주의가 우월한 이유 (2)

다만 블로그 쥔장님께서 커맨트를 단 내용이 있었는데,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를 테면, 소개글 중간에 트럼프가 기존의 부패한(?) 정치 세력을 공격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그렇다. 나는 위험한 접근이라고 본다.

아래는 관련해서 내가 블로거 쥔장님께 단 댓글 내용이다. 길어져서 여기다도 저장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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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좋은 동영상 소개 시켜 주셔서 잘 봤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동영상이었습니다. 다만, 트럼프에 대한 쥔장님의 견해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네요.

일단, 트럼프가 기존 정치세력 establishment를 공격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그가 정치적 자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 다수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기존 권력의 지지를 잃는 다고 해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권력을 쥐는 것에 성공한다고 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사항 일 뿐입니다. 일단 권력을 쥔 후에는 다시금 동영상이 설명한 권력자의 Rule 3가 필요한 입장이 됩니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key를 쥔 사람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에게 이득이 됩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사람들만 싸고 돌 것이라는 예상은 지금의 행동으로만 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를 테면 그를 대통령 후보자리로 올라서는 데에 도움을 준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가 지금 스캔들이 터져서 곤경에 빠졌는데, 모든 정치인들이 이미 크리스티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간접적으로 그를 감싸는 모습을 보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동영상에서 소개한 권력 유지의 메커니즘이 바뀔 이유는 없습니다. 기존의 세력 establishment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사람들은 그를 지지할 것이고 기존의 establishment는 타격을 받겠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새로운 establishment를 세울 것입니다.

댓글2

말씀하신 대로 클린턴이 그렇게 이상적인 후보는 아닌 것 같습니다. 클린턴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전쟁광이라고 말하고, 기존 월스트리트와 연계를 언급합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트럼프 선거 캠프는 이런 점을 효과적으로 공략을 해왔습니다.

동영상에서 잘 설명이 되어있듯이 민주주의에서도 권력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또 그것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그러한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유지 메커니즘을 지키는 데에 충실한 정치인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유사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쥔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독재와 민주주의는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그나마 저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독재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행동들은 민주주의의 시스템 자체에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힐러리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kyw0277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소외받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표율이 낮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백인 저소득층들은 정치인들의 관심대상이 아니었지요. 그들이 마약과 자살로 평균 수명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엄밀한 사실입니다. 이 주제 관련해서 저도 이전에 포스팅 한 일이 있습니다. (https://isaacinseoul.wordpress.com/2016/03/29/american-white-men-mortality/)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결론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트럼프는 자신이 쥔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정책적인 방향도 없기 때문에 결국은 4년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고, 그 결과는 동영상에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그나마 있었던 보통사람들을 향한 이득이 트럼프의 지지세력이나 그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몰리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치와 보수 기독교 가치관에 대한 생각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가끔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소위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강력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일까. 물론 이건 미국 정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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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에서 낙태는 항상 중요한 이슈였다. 그리고 최근에 동성애 이슈가 더해졌다. 몇몇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낙태 금지가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pro-life라는 이유 만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낙태 반대/찬성으로 쓰는 게 맞겠지만, 여기서는 pro-life/pro-choice로 표기하기로 하자.)

그렇다. 특정후보는 트럼프를 말한다. 처음부터 트럼프가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심을 대변하지는 않았다. 공화당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트럼프를 추격했던 테드 크루즈가 오히려 보수주의 기독교인을 대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관련한 이전 포스트
공화당 경선 정리: 트럼프와 크루즈 (05/06)

점잖은(?) 기독교인들에게 트럼프는 너무나도 저속하고 세속적인 사람이다. 그는 대법관으로 pro-life 노선인 사람을 지명하겠다고 하면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를 두고서 어떤 이들은 대법관에 보수적인 인사를 지명하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은 누구에게라도 표를 던질 것이라고 비아냥 거린다.

사실 트럼프는 낙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어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낙태 말고도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서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무지가 금새 드러난다.) 이번주 수요일 마지막 대선 토론에서 낙태 이슈가 언급되었다. 그는 힐러리가 말하는 대로 하면 임신 9개월된 태아를 자궁에서 꺼내는 비극이 일어날 것이라며 pro-life를 지지한다고 했다. “If you go with Hillary is saying, in the ninth month you can take the baby and rip the baby out of womb of the mother.”

그가 낙태의 끔찍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이라고 해서 실제 그런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9개월 된 태아는 인큐베이터에 넣는게 보통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사산하게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임신 후기로 넘어가면 낙태하는 경우가 원칙적으로 없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일부 주는 법으로도 이를 금지하고 있다.

관련 기사

어쨌든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법관’ 선정 이슈를 이해하려면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 대선에서 후보의 진보/보수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 대법원이 가진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헌법을 해석하고 판결을 내리는 독자적인 권한이 있다. 미국 헌법이 워낙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모호하게 쓰여져서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연방 대법원의 판례는 향후 다른 재판의 근거가 된다.

미국에서 낙태는 1973년 Roe v. Wade 건 이후 합법이 되었다. 미국 보수 기독교계는 이를 뒤집으려고 오랜시간 노력해왔다. 그러다보니 9명의 판사가 다수결로 판결을 내리는 연방 대법원에서 대법관의 진보/보수 구성비가 중요하다. 그리고 종신직인 대법원관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진보/보수 여부가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미 1명이 공석이고,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2~3명의 신입 대법관의 보수/진보 구성비가 바뀐다.

관련 포스트
미국 낙태 이슈 관련 논점들 (07/01)

이번 선거에서 보수 기독교 유권자층은 혼란을 겪고 있다. 기독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트럼프이다. 트럼프 이전, 보수 기독교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자들이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졌는가를 먼저 판단했다. 그리고서 그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보수적인 인물을 선정할 것인지를 가늠해 보고서 지지 여부를 결정했다.

트럼프는 이 과정을 역으로 뒤집었다. 본인이 먼저 유권자들에게 ‘pro-life’ 재판관을 선임한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언행은 저속할 뿐 만아니라 그는 기독교적 가치관과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그는 최소한의 가식적인 예의도 없다.

트럼프의 언행은 기독교 유권자들이 쉽게 (또는 떳떳하게) 공화당을 지지하기 어렵게 한다. 대표적으로 비디오 테입 유출 사건 이후로 유타주의 이탈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트럼프에게 도저히 표를 못 주겠다는 사람들이 제3후보 맥멀린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맥멀린은 제 3후보로는 이례적으로 유타에서 22%의 지지율을 보인다. 물론 유타가 맥멀린을 뽑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약 그가 당선되면 1968년 이후 매번 공화당을 지지했던 유타로서는 큰 이변이다.

그렇다면 대법관 선정 이슈를 떠나서 개인 도덕성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주에 발간된 한 조사에 의하면 61%의 미국인들이 개인의 도덕성과 대통령 후보의 자질은 무관한다고 답했다. 불과 5년 전에 같은 질문에 44%였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질문을 백인 복음주의자 기독교인에게 했을 때, 72%의 사람이 도덕성과 대통령의 자질이 무관하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이 그룹은 5년전에 30% 만이 무관하다고 답했다. 예외가 유타주의 몰몬들이다.

(한국 기독교 기준으로 몰몬은 이단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단에 대한 적대감이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도덕적인 이슈에서는 기독교와 몰몬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대체로 미국 정치 분석에서는 몰몬을 기독교 유권자에 포함 시킬 때가 많다.)

관련 여론 조사 출처

Clinton maintains double-digit (51% vs. 36%) lead over Trump | PRRI/Brookings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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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왜 기독교인은 보수적인 정치색을 보일까.

기독교 안에서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을 살펴보자. 사실 모든 기독교인이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내게 2주전에 있었던 부통령 후보 토론은 몹시 흥미로웠다. 둘의 토론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두 정치인이 어떻게 다른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펜스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다. 펜스는 학부시절 예수를 만나고 회심한 이후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쳤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소위 말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는 비속어를 말하기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가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은 작년 인디아나 주에서 낙태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 시키면서 이다. 그는 태아를 생명으로 믿고, 그 신념하에서 인종, 성별, 유전병 같은 어떤 이유로도 낙태 시술을 하는 것은 금지시켰다. 그는 생명은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물론 이 법은 현재 연방 대법원에서 위헌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관련 포스팅
테드 크루즈와 마이크 펜스 (07/21)

팀 케인 역시 종교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학부시절 1년을 휴학하고 예수회 선교사로 온두라스에서 선교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그는 최근 NCR (카톨릭 뉴스)에서 개인의 종교 신념과 공직으로 정치인의 입장이 충돌 하는 상황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심지어 히틀러 조차도 사형을 시행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인인 동시에 국가의 시민이고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기에 버지니아 주지사로서 11건의 사형집행을 진행시켰다고 한다.

팀 케인의 말을 인용한다. “The hardest thing about being a governor was dealing with the death penalty. I hope on Judgement Day that there’s both understanding and mercy, because it was tough.”

관련 기사
Spiritually motivated: How Tim Kaine navigates his faith and politics, NCR, 08/25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도 낙태 이야기가 나왔다. 펜스는 평소대로 자신의 신념을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인 태아를 지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팀 케인에게 되묻는다. 생명을 존중하는 후보께서 어찌 pro-choice를 지지할 수 있는가?

팀 케인은 여기서 직답을 회피하고 화살을 트럼프에게 돌린다. 트럼프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펜스는 트럼프가 세련된 정치인 polished politician은 아니지 않냐면서 쉴드를 친다.

여담이지만, 부통령 후보 토론은 본인들의 토론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기에 결국은 서로의 대통령 후보를 방어하거나 상대방측 후보를 비판하는게 주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올해 토론이 정확히 그랬다.

부통령 후보 토론 스크립트

그렇다면 팀 케인의 평소 입장은 어떨까. 그는 낙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정부는 여성들에게 결정을 할 권리를 주여야 한다고 말했었다. “I’ve got a personal feeling over abortion, but the right role of government is to let women make their own decisions.”

개인적으로는 케인의 의견에 80% 쯤 동의한다. 여기에 내 의견을 더하자면, 개인의 종교적인 (또는 도덕적인)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동일한 신념을 가지지 않고 있는 타인에게 그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낙태를 금지할 때 그 부담을 지고갈 당사자는 국가가 아니다. 약간의 비약을 감수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는 국가차원에서 이뤄지는 꼰대질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케인의 이러한 애매(?)한 입장은 비판을 받기 딱 좋다. 실제로 펜스는 토론회에서 케인이 pro-choice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Hyde Amendment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참고로 Hyde Amendment는 연방정부가 낙태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이다. pro-choice인 힐러리가 폐지 하려고 하는 법안이지만 기독교인 케인은 Hyde Amendment를 지지한다.)

강경한 pro-life인 펜스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이다. 위선이나 박쥐 같은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선으로 보는 것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적인 영역에서 pro-choice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낙태를 권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결론을 맺는다. 현대에 와서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애매하고 불확실한 사안에 대해 결정할 것을 강요당한다. (때로는 결정을 하지 않는 것 조차 결정이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방향, 그리고 이념적 노선은 자주 충돌하게 마련이다.

이런 때에 정치에서는 선명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분들은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면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유권자들이 모두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선택들은 더욱 어렵고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매일의 삶에서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을 재점검하며 행동을 바로잡는 일은 누구나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최소한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신앙인의 모습에 따르면 그러하다.

한때는 유권자층의 종교와 지지자의 종교의 일치 여부가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케네디 시절 그의 캐톨릭 신앙은 선거에서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지금은 후보자의 신앙 자체가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한국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장로님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다만 지금에 와서도 유권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명한 이념이나 또는 (특히 미국의 경우) 종교적인 가면 뒤에는 대부분 정치적인 계산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The Barber by Flannery O’Connor

이전 글에 이어서, 플래너리 오코너 Flannery O’Connor의 다른 단편, 이발사 The Barber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한다. 보통은 책읽고 기록을 남길때, 줄거리 요약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요새 같은 때에 이 소설은 줄거리 요약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대학 교수인 Rayber는 애틀란타에 있을 선거 Democratic White Primary 이야기를 이발사와 한다. 리버럴을 자처하는 그는 이번 선거에서 Darmon을 뽑는다고 했고, 이에 이발사는 Rayber를 ‘검둥이 옹호자’로 매도한다. Rayber는 자신은 ‘검둥이 옹호자’도 ‘백인 옹호자’도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발사는 Hawkson을 지지한다. 이발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Hawkson을 선동가 demagogue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쇼맨십이 대단한 사람이다. 이발사는 Hawkson이 백인 구역에서 검둥이를 쫓아내고, 번드르하게 호의만 베푸는 헛똑똑이들을 혼쭐 내며, 자기들을 돈 벌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 1947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왜 이렇게 익숙한 장면들인지.)

Rayber는 분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논리적인 반박문을 준비한다. 친구는 이발사와 논쟁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Rayber는 그만두지 않는다. 그리고 이발소에서 준비한 연설문을 읽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Rayber는 격분한 나머지, 이발사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내가 니 둔해 빠진 정신을 바꾸려고 이러는 줄 알아? 도대체 날 뭘로 보고? 내가 니 빌어먹을 무식함을 어떻게 해보려고 이러는 거 같애?”

그리고서 Rayber는 뛰듯이 그자리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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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nnery O’Connor (출처: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