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의 성장 모델과 허리케인 하비

한강의 지류인 탄천. 탄천 옆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수서 지역은 저지대이다. 90년대에 수서는 장마철만 되면 물에 잠기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장마가 끝나면 (지금도 한국에 장마철이 있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을 소집해서 건물지하의 물을 퍼내는 일을 시킬 정도 였다. 그러나 90년대 서울시는 치수 정책에 공을 들였고, 다행히도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수서 지역은 큰 침수가 없었다. 물론 수서역은 아직도 간혹 잠기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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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개발 되었다. 개발/도시화가 진행되면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들어선다. 치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도로와 건물은 impervious surface불투수면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투수율이 증가하고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빠지기 어려워진다. 비유하자면 흙바닥에 비닐을 깔아둔 셈이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시개발 과정에는 빗물 펌프장과 배수시설 확충이 따른다. 90년대 초 수서는 이 배수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찾아본 건 아니고 동네 아저씨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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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문제는 기후변화로 국지성 폭우가 잦아졌다는데에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잘 작동하는 물순환 시스템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근래에는 잦아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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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하비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 폭우와 무절제한(?) 도시개발의 결합이 얼마나 큰 피해를 줄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휴스턴은 1830년대에 강하구 습지에 지어진 도시이다. 저지대이고 bayou가 있다. 도시 개발 초창기부터 홍수에 시달리곤 했다. 습지대의 작은 도시는 곧 석유 산업의 메카가 되었고, 성장이 지속되어 미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4번째라고 하면 뉴욕, LA, 시카고 다음가는 큰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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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처음 자리를 잡을 때 휴스턴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휴스턴은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고, 그러면서도 물가도 싸고, 일자리도 많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기회의 도시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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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이 일종의 모델 도시로 자리 잡았던 데에는 특유의 자유주의 (또는 리버테리안) 문화가 한 몫을 했다. 미국의 또다른 성장 모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지역과는 달리 이쪽은 개발에 규제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보자면 민주당 강세인 캘리포니아와 달리 공화당 강세인 이지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규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건축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기에 중산층에게도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가능했다. 엄청난 땅덩이에 무제한으로 개발을 하면서 덩치를 키워가는 소위 wild west 스타일의 개발인 것이다. 건축 관련 규제가 많아 건축물 승인을 위해 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캘리포니아가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사회문제를 겪는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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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하비가 쓸고 지난간 후에 미국 언론들은 휴스턴의 부실한 도시 계획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대표적으로 NYT가 있고, 워싱턴 포스트, slate, Atlantic, 뉴스위크, 뉴욕 매거진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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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Houston’s ‘Wild West’ growth (워싱턴 포스트,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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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정치적인 견해 차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WSJ에서는 이는 엘리트들의 생각일 뿐이라는 사설도 냈다. 규제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좀더 많은 배수 시설이 필요할 뿐이라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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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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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중에 크루그먼도 한마디 덧붙인다. (역시 이양반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분) 크루그먼의 포스트에는 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지역 집값 비교 그래프도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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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210조원의 피해를 입힌 하비의 뒷처리는 쉽지 않아보인다. 주정부, 시의회, county, 부동산 개발 업체, 보험사 등등이 엮인 난제를 푸는 일이 상당히 지저분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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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포스팅을 하는 와중에 궁금해서 서울시의 치수 대책을 찾아보니 좋은 자료가 있어 같이 링크를 걸어둔다. 참고로 서울의 불투수율은 50%에 조금 못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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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가 물순환에 미치는 영향과 서울시 현황 (2012 물순화 도시 포럼, 김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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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샌프란시스코 총기사고

지난주에 미국에서는 총기사고가 두건 있었다. 둘다 수요일 하루에 이러난 일들이다. 하나는 공화당 의원들을 노린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UPS에서 교대 근무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관련기사: Victims of shooting at San Francisco UPS facility are identified as families and co-workers mourn (LA Times)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UPS 총기사고는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범인을 포함 4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작년에 본사 파견 피크 시즌 지원팀으로 갔었던 곳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아는 분들은 아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침 며칠 전에 시카고의 총기 사고에 올린 적이 있었다. (작년에 올린 글을 재공유했었다.) 작년 메모리얼 데이 연휴 때 시카고에서 64명이 총에 맞았고, 그중 6명이 사망했다. 그 글을 올리면서 한마디 덧붙였는데, 미국에서 총기사고는 대부분 우범지역에서 일어나기에 평범한(?) 미국인들은 총기의 위협을 매일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시카고의 경우도 대부분 교민은 북쪽에 많이 살고, 서부와 남부 우범지역에 가는 것만 조금 조심하는 정도지 총기의 위협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관련해서 작년에 정리해둔 시카고 살인사건, 총기사고 관련 포스트들 링크도 남긴다.

미국에 살면 몇년 안에 총맞는 거 아니냐?, 2016년 6월 10일 포스트
시카고 살인사건 발생률, 2016년 6월 8일 포스트

그렇기는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 총기사고 이야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데, 종종 건너건너아는 분들이 당한 불운한 사건들을 접할 때면 더욱 마음이 안좋다. (다행히도 직접 아는 사람의 사고 소식은 들은 일이 없다.) 수요일 사고 처럼 큰 일은 아니었지만, 작년에도 같은 층에 일했던 한 분에게도 안좋은 일이 있었다.

몇년 살아보니 미국에서는 한국 교통사고 참사 소식 듣는 정도의 빈도로 총기사고를 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건너 건너 아는 지인 중 하나 쯤은 끔찍한 교통사고 스토리가 있는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빈도로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총기사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냥 느낌만이 아닌 것이, 실제로 미국에서 총기사고의 사망률은 교통사고 사망률과 비슷한 정도 이다.

(CDC 관련 자료: https://isaacinseoul.wordpress.com/2015/12/03/vital_statics/)

총기 규제와 미국의 총기 이슈는 미국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주제 중에 하나이다. 작년에 올랜도 총기 참사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 꽤 심각하게 고민하고 찾아본 적이 있었다. 나름 4편으로 나누어서 연재를 했었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관련해서 아래 링크들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같다.

1편: 총을 가질 권리 (2016년 6월 18일자 포스트)
2편: 총기 규제의 범위 (2016년 6월 19일자 포스트)
3편: 총기 규제에 대한 오바마의 견해 (2016년 6월 20일자 포스트)
4편: 신원조사와 관련 법안 국회 상정 (2016년 6월 20일자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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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중에 샌프란시스코 시티 투어 – City Lights book store, Blue Bottle, and In-N-Out

City Lights book store and Cafe Trieste known as meeting places for Beat movement writers such as Ginsberg, Kerouac, and Ferlinghetti


Blue Bottle coffee shop known as Apple Inc. of coffee house

 

And In-N-Out

짧은 근황: 택배 상하차 일용직 근로 체험중

한동안 페북이 뜸하기도 했고, 요즘 지내는 얘기를 잊기전에 메모도 해둘 겸 해서 몇자 남긴다.

이번주 월요일 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와있다. 우리회사는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가 피크 시즌이라 일손이 딸리는데 사무직 직원들도 일부를 뽑아서 일을 시킨다.

사실 사무직 직원들을 일시키려면 항공료도 지원해줘야 하고 호텔비까지 부담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 일것 같긴 하지만 현장을 경험 시킨다는 명목도 있고 해서 매년 몇백명씩을 ‘Ready Team’으로 뽑아서 보낸다. 올해는 내 차례.

평소에 육체 노동을 안하는 사무직이라고 해서 그다지 봐주는 건 없다. (오히려 더 힘들게 굴린다) 주 6일에 12시간씩 트레일러에 택배 상자를 싣고 내리는 일을 한다. (여기 알바는 한 4~5시간 하다가 간다.)

울회사가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회사라서 그렇기도 하다. 순익이 7조원이 넘는 대기업이지만 CEO부터가 택배 배달원으로 시작하는 회사라 한번쯤은 상하차 경험을 해야한다는 유무형의 압력이 있다.

올해는 샌프란쪽에 인력이 부족해서 당일(!) 연락을 받고 밤비행기를 타고 날라왔다. (미안해요 마눌님.) 이 상하차 작업이란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이고 12시간을 일하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야간 쉬프트라 수면 패턴도 엉망…)

한 이삼일은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더라. 어쨌든 버티다 보니 몸이 적응 되면서 요령도 생기고 근육도 붙어서 그럭저럭 할만해 졌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구나 타이어를 짐으로 부치는 사람들은 원망스럽다. (아~ 카페트나 덤벨 부치는 사람도…)


(image source: http://www1.pictures.zimbio.com/gi/UPS+Bustles+During+Busiest+Package+Delivery+rVf5NUB1SDEl.jpg)

하나 좋은 소식은 살이 쭉쭉 빠져서 가져온 바지가 헐렁해서 못입을 지경이라는 거. 역시 내가 미국와서 살찐 건 나이나 음식 때문이 아니라 운동 부족이었던 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이제는 같이 일하는 짐꾼들과도 그럭저럭 말을 트고, 문신한 흑인들과도 서로 bro라고 부르며 지내고 있다. 사실 여기서 며칠 구르면 옷차림이나 행색도 비슷해져서 그다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육체노동을 계속 하다보면 생각이 단순해 지는데, 우선은 먹는 거에 민감해진다. 그날 메뉴가 뭔지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트레일러 한차를 박스로 가득 채우면 뿌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이렇게 길들여 지는 것일까??) 휴식과 일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맺고 끊음이 없는 사무직 일과는 확실히 다르다.

택배 상하차가 힘든 일이지만 여자도 근근히 보이고 (미국은 여자라고 살살 일하고 그런 것도 없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흑인 틴에이져 부터, 틈만 나면 댄스를 하는 히스패닉 청년, 트럭 운전을 하다가 은퇴한 오십대 백인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대학나왔다거나 아틀란타 본사에서 왔다거나 사무직이라고 말해봐야 별의미가 없어 그냥 초짜입니다 라면서 섟여서 지내는 중이다. 나는 여기서 그냥 미스터 아틀란타다.

그렇게 열두시간을 일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잠이들기에 이런저런 글을 올리는 것도 사치스런 일이 되었다.

와중에도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다. 그중 하나는 앞에서 말한데로 살빠지고 근육이 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 감사에는 딸래미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가끔 딸램과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아들이고 따님께서 부모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통화할 때마다 아픈데는 없냐, 일은 안힘드냐, 눈치봐서 살살해라고 이런저런 (잔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아이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다. 내가 샌프란으로 가고서 딸래미가 그렇게 아쉬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한테 내가 가진 용돈이라도 좀 손에 지워 줄 껄 하더랜다. 아무래도 샌프란 가면 돈이 좀 필요할 텐데라면서…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