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기적에 관하여

지난주 교회에서 성찬식이 있었다. 내가 딱히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실은 믿음이 좋다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성찬식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이니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기적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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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나는 열혈 신앙인이었다. 지금도 신앙이 없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간 여러 교회를 접하면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강산이 몇번 바뀌는 걸 보면서, 존경하던 분들의 모습이 변하는 걸 보면서, 한국교회/미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나자신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지적인 기반이 여러차례 바뀌면서, 먹고사니즘에 매몰되어 한참을 고분분투 하며 살다가, 그리고 가정을 가지고 다시금 살아가는 의미를 생각하다보니, 지금와서 바라보는 신앙은 20대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구약에 등장하는 신의 잔인함이나 이질적인 문화/종교에 대한 intolerances 불관용 같은 것은 이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0대의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을 테다. 이를테면 요시야왕의 우상파괴 운동이 21세기 도덕관념으로 어떻게 용납될 것인가? IS가 알레포의 유적들을 파괴한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16세기 크롬웰이 성모상을 불태운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이런 이슈는 상당히 다면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에서 뜨거운 남부 동상 철거 운동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인권과 평등을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믿음이라고 본다면, 남부의 동상들은 노예와 미국의 원죄를 나타내는 상징이고, 인권을 신봉하는 현대인에게 반드시 파괴되어야 할 우상일테다.

물론, 그리고 당연히도, 내가 남부의 과거나 노예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요시야가 파괴했던 바알 성상과 바알신앙의 문란함/잔혹함에 어떤 호감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슈들의 복잡함을 잠시 생각해본 거지…

작년에는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믿음의 근간이 복음주의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는데, 그것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많은 부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으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

대학시절 변증 차원에서 공부하고 지나갔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다시금 생각해보면 예수의 부활과 기적들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몇년전에 개인적으로 정리해본적이 있다. 그러나 여러차례 페북으로 소개했기에 마지막에 링크만 남겨두고 대신 최근 읽었던 뉴욕타임스 칼럼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칼럼들이다. 크리스토프는 예수의 가르침을 존경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예수의 부활, 동정녀 탄생, 오병이어의 기적 등등…)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종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물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첫번째 칼럼에서는 기독교 변증으로 유명한 팀 켈러 목사에게 물었다.

Am I a Christian, Pastor Timothy Keller?

팀 켈러는 단도직입적이다. If something is truly integral to a body of thought, you can’t remove it without destabilizing the whole thing.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린피스의 보드 멤버인 것이 말이 안된다. 속좁다고 말할 수 있다.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신앙인은 아니다.

두번째 칼럼에서 크리스토프는 이번에 좀더 리버럴한 크리스찬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카터는 평생을 지역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왔다.

President Carter, Am I a Christian?

카터는 말한다. 과학을 믿는 내게 이를테면 6일 안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 반대로 나는 신약을 믿고 이는 신약에 나오는 동정녀 출산과 예수의 부활을 포함한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못한다.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크리스토프는 묻는다. 예수는 화합을 가르쳤으나 종종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배제의 행동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터는 대답한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이렇게 말하죠.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저는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배제를 말하는 이들은 제가 이해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삶을 산다고 봅니다.

크리스토프는 묻는다. 나는 당신이 복음주의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은 오류가 없다고 종종 말합니다. 또 종종 성경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나요?

카터는 대답한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순들을 성경이 여러 저자들이 쓴 책이고 진본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봅니다. 성경의 초기 저자들이 거짓된 이야기를 썼다면 모순들을 삭제했겠죠. 저는 성경에서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와 사도바울의 초대 교회에 쓴 편지들을 중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모순이 나타날 때는 저는 평등과 인권에 기반하여 어떤 것을 믿을까 결정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칼럼에서 크리스토프는 뉴왁의 Tobin 추기경에게 묻는다.

Cardinal Tobin, Am I a Christian?

Tobin 추기경은 답한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에게 더 말할 여지가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예 저는 당신이 그의 영역안에 있다고 봅니다.

크리스토프가 묻는다. 저는 예수의 가르침을 존경하지만 기적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예수 시절에야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걸 믿는 시절이였으니 기적을 믿는게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2017년 지금에도 물위를 걸었다는 것과 몇개의 빵과 물고기를 뻥튀기 해서 수천명을 먹였다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Tobin 추기경은 답한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걸 믿을 자유가 있지요. 기독교인들도 비기독교에서 나온 지혜를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요. 사실 가장 놀라운 기적은 incarnation 성육신입니다. 기독교인은 태초이전에도 계셨고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우리가운데 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 외의 것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적들은 마술쇼가 아닙니다. 기적들은 모두 하나님이 누구신지, 나사렛 예수가 누구인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의 관련 칼럼은 지금까지는 이렇게 세개 이다. 발췌를 했으니 관심있는 분은 원문을 읽기를 권한다. 칼럼은 재작년부터 기독교 주요 절기, 그러니까 부활절과 성탄절에 쓰고 있으니 올해 부활절도 이어질지 모른다. 생각해보니 기독교의 주요 절기는, 어쩌면 당연히, 기적과 연결되어 있다. 부활절은 부활에, 성탄절은 동정녀 출산에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읽을 때마다 감격하는 파스칼의 말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The supreme function of reason is to show man that some things are beyond reason.” – Blaise Pascal

재인용: How Can I Possibly Believe That Faith Is Better Than Doubt?

+ 덧: 예전에 내가 정리했던 개인 신앙 이야기
내가 믿는 기독교 연재를 마치며 (201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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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에게 장미를

요즘 듣는 음악. A rose for Emily. 에밀리에게 장미를.

A rose for Emily는 포크너의 단편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듣게된 건 요즘 듣는 팟캐스트 때문이다. The Zombies의 오래된 이 노래가 팟캐스트 S-Town의 타이틀 송인지라.

S-Town은 릴리즈된지 나흘만에 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빅히트를 친 팟캐스트. 다큐멘터리임에도 범죄 소설보다 극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 (S-Town은 주인공이 자기 동네에 붙인 별명인 shit town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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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의 주인공은 방송 제작 중에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다. 앨라바마 시골 한 동네의 기괴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문학 한 분야를 열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뉴요커 리뷰 링크

“S-Town” Investigates the Human Mystery
https://www.newyorker.com/culture/sarah-larson/s-town-investigates-the-human-mystery

백인 인종차별 주의자들이 가득한 촌동네. 주인공 John은 평범치 않은 사람이다. 10센트 동전을 화학빈응을 일으켜 금화로 바꾼다. 게다가 뒷뜰에 미로가 있다. John은 세계 일류 시계공이기도 하다. 그는 동네가 부패했고 살인사건이 있었으나 은폐되었다고 주장한다.

John이 만든 10센트 금화 사진 링크

John 뒷뜰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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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남부 사투리가 진입 장벽이긴 하지만, 범죄소설, 포크너 소설 좋아하는 분들은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듯. A rose for Emily가 절묘한 선곡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동명의 포크너의 단편에도 독극물 살인이 나오고 팟캐스트 주인공도 독극물을 먹고 자살을 하기 때문. S-Town에도 포크너 소설처럼 남부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일종의 Southern Gothic을 오디오북으로 드는 기분.

+ 덧: 팟캐스트 프로듀서가 지미 팰런 쇼에 나와서 한 인터뷰 동영상

Fire Chasers

요즘 보고 있는 다큐멘터리 Fire Chasers. 4시간짜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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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 싸우는 캘리포니아 소방관들 이야기. 헬리콥터를 타고 투입된 대원들이 작전을 짜고, 장비를 챙기고, 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는 다시 헬기의 지원. 말그대로 전투상황이더라.

공유한 클립은 6분짜리 발췌본.

다음은 다큐멘터리 예고편

다큐멘터리 트레일러

둘째 키우는 이야기

요즘 둘째는 말을 한참 배우고 있다. 두돌이 조금 못되는 아기가 얼마만큼 말을 하겠냐만은 그래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될 정도.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은 두단어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고 단어도 3음절이 넘어가면 버거워한다.

그래도 놀라운 건 그정도 언어능력으로도 상당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이를테면 얼마전 이야기.

아침에 외출을 하려고 옷을 갈아 입히는데, ‘싫어’를 외치며 도망다닌다.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 뺀질거리며 종종거리며 숨는다. (으규, 벌써 미운 세살이 온겨?)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녀석을 붙들어 잡아서 침대에 눕힌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두다리를 잡아 들어 올리는 순간, 딸애가 헤헤 웃기 시작하더니 하는 말. “아빠, 미안.”

정확히 두음절 단어 두개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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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문화전쟁,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

어제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올렸다. 한 페친께서 미국 보수 개신교 계열이 기후변화 회의론에 동조하는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 물어보셨다. 나의 답변을 정리해서 담벼락에 올린다.

실은 개인적으로 최근들어 복음주의에 비판적인 관점도 가지게 되었다. 내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요즘 생각들의 정리로도 읽힌다. 복음주의는 20대 내 삶에 큰 지분을 차지하기에 내내 마음이 좋지 않다.

아래는 댓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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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제가 무슨 답이 있겠습니까. 다만 저도 관심있는 주제라 몇번 생각해본적은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관심있게 본 관점은 ‘미국의 반지성주의’인데, 미국 복음주의 계열이 반지성주의와 뿌리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리차드 호프스태터의 책에 관심은 있는데, 읽을 기회가 닿을 지 모르겠네요.

두번째는 문화전쟁이라는 관점인데,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건 요즘에 관련 책도 읽는게 있고해서 기회가 되면 정리해 볼까 싶기도 합니다.

문화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에서는 각종 다양한 이슈를 묶어서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이를테면 낙태, 총기소유, 반pc, 기후변화, 창조론 같은 이슈들을 묶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쪽도 보수 복음주의 계열이 주축이죠.

지구온난화는 제가 알기로 오바마 이전까지는 공화당에서도 동의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맥케인도 지구온난화가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바마도 취임 초기 때는 초당파적인 이슈로 접근하려고 했고요.

그런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코크브라더스의 영향이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화당의 돈줄이 그쪽인지라… 체계적으로 공략했다는 정황 증거도 좀 있고요.

그치만 저는 이 의견에 100% 공감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권이나 로비가 분명히 대중의 오피니언을 움직이는데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런 기반도 없이 정치인들이 선동한다고 휩쓸린다는 건 좀 무리하게 보이고요.

아무래도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토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반지성주의와 복음주의의 뿌리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글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feliview.com/modern-hist/nation-state/amorimoto-antiintellectu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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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Sunday와 몰려든 군중들

기후변화 회의론에 관하여

6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이해가 안되는게 몇가지 있다. 첫째가 총기 소유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음이 기후변화에 대한 정치적 쟁점화이다.

산타훈장님이 관련 포스트를 하셨는데, 기후변화 회의론 관련 댓글이 보이길래 좀 길게 댓글을 남겼다. 여기다도 옮겨둔다.

산타님 페북 포스트

+덧: 한 분이 전문가와 일반인의 견해 차이에 대해 의견을 주셔서 답변한 내용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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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기후변화 회의론은 기후변화에 인간의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산타훈장님 포스트가 기후변화의 진위를 가리는 주제가 아니기에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기후변화 회의론 관련 댓글도 있기도 하거니와, 혹시 오해하는 분이 있을까 싶어 몇자 남깁니다.

기온 상승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고,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는 정설입니다.

몇몇 이론이 있다고는 하지만, 소수이고 반박이 가능할 만큼 현재로서는 신뢰성이 현저히 낮고 (가치가 떨어지기에) 관련연구도 그다지 없습니다.

과학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자세를 기반으로 하기에 누구든지 반박할 수 있으나 그만큼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산타훈장님글의 다른 예처럼 백신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만한 과학적인 근거와 실험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백신 위해론이 정치적인 이슈가 된다고 안아키까지 불러와 양편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엔 산하 과학자 단체 IPCC가 정리한 자료 (한글 번역본) 링크를 남깁니다. 이것보다 더 잘 정리된 자료를 본적이 없고, 상당히 공신력있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IPCC의 자료가 공신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 같네요. 의사협회가 낸 백신자료가 믿을 수 없다고 하거나 통계청 자료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면 제가 더이상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https://www.ipcc.ch/pdf/reports-nonUN-translations/korean/ar4_wg1_korean/Chapter%2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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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굳이 IPCC의 공신력을 끌어들인 것은 과학자들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이뤄진 상황이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전문가 집단에서 컨센서스가 이뤄진 사안을 반박하는 것은 그만한 과학적인 근거와 자료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저는 논의의 시작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에 닥칠 리스크나 공동체에 닥칠 위험에 대해서 말할 부분은 정치의 영역이고 이조차도 지나치게 과장된다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인 것은 맞지만 그 여파와 대책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대중으로서 다수는 틀리고 전문가 집단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논란에 관해서는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후변화가 맞냐 틀리냐, 인류에 피해가 가는가 아닌가는 전문가의 영역이 맞고, 그다음에 그래서 어떻게 할것인가는 정치와 일반인들의 영역이 맞다고 봅니다.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초보 운전자에게 점검을 하라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카센타에서 점검을 우선 받고 결정은 차주가 해야겠죠. 2nd opinion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안되겠지만, 수리비가 비싸다고 자동차가 문제 없다는 사짜말을 믿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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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즘과 예루살렘 – There is neither Jew nor Gentile

며칠전 미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몇가지가 빠졌다. 괜한 오해만 사겠다 싶다. 추가로 몇자 더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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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며칠간 뉴스를 지켜본 결과로는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중동 정세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란은 많이 되고 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예전처럼 중동 정세의 중심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아마도 그런 판단하에 트럼프의 깜짝 발표가 있었겠지.

다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입지가 중동에서 더 약해질텐데, 트럼프는 별로 상관 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미국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두팔벌려 환영하고 있으니까. 대표적으로 친트럼프계 Paula White 목사는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녀는 트럼프 정부 evangelist 자문 위원장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http://www.cnn.com/2017/12/06/politics/american-evangelicals-jerusalem/

기독교계가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복음주의 계열 기독교인은 열정적인 환호를 보였다. 반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deep concern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정교회쪽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사실 오랜기간 애증의 관계였다. 이를테면 루터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유로 경멸했고, 이는 나치 인종청소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럼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알기로 이스라엘과 유대인, 비유대인 (성경 용어로는 Gentile 이방인)을 보는데에 크게 2가지 관점이 있다.

첫번째는 시오니즘에 동질감을 느끼는 보수 복음주의 계열의 관점이다. 이쪽이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의 hawkish policy에 동조하는 분들이다.

이쪽 주장을 성경에서 근거를 찾자면 대표적으로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 로마서 11장을 들 수 있다. 유대교는 선민사상에 기반한다. 그러나 본인이 유대인이 었던 바울은 예수교의 신앙과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러면서 비유대인을 접붙인 올리브나무에 비유한다.

그리고 26절에 이르러서 이렇게 말을한다.

all Israel will be saved. As it is written: “The deliverer will come from Zion; he will turn godlessness away from Jacob.” (NIV) 그후에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렇게 쓰인 말씀과 같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올 것이니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제거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지난번 포스트에도 시온산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시온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중에 하나이고, 종종 예루살렘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유대인에게) 신성한 산이다. 그러니까 보수 복음주의 쪽에서는 이에 근거해서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예수를 믿게되면 예수가 재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번 포스트
종교의 땅, 예루살렘(12월 7일자)

시오니즘에 공감하지 않는 다른 한쪽이 근거로 대는 구절은 갈라디아서 3장이다. 이 또한 바울의 편지이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할례와 믿음을 둘러싼 갈라디아인들의 신학 논쟁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다.

할례는 유대인의 징표이다. 당시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명확히 갈라서기 이전이었고, 따라서 어떤이들은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절차 중에 하나라는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믿는 믿음외에 다른 징표가 있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3장 28-29절에서는 신분제 사회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There is neither Jew nor Gentile, neither slave nor free, nor is there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If you belong to Christ, then you are Abraham’s seed, and heirs according to the promise. (NIV)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므로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을 상속자들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갈라디아서 선언 이후, 더이상 기독교에서 ‘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이나 종교나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존재로 초대되었다.

여담이지만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내가 성경에서 좋아하는 구절 중에 하나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막부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 하나에 감복해서 예수에 귀의하기도 했고 목숨을 내어놓기도 했다.

대충 정리해보자. 예루살렘이 가지는 의미는 기독교 안에서도 다양하게 해석된다. 어떤이에게 예루살렘은 유대인에게 회복되어야 할 물리적인 장소이기도 하고, 어떤이에게는 유대인과 타민족은 별다른 차이가 없기도 하다.

사실 미국 (또는 일부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서기도 한다. 트럼프가 종교적인 인물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에 그의 정치적인 메세지는 분명해 보인다. (외교적으로는 손해만 봤다는게 대다수의 분석이고)

예루살렘은 목놓아 울뿐이다. 그 조그마한 땅에 수천년간 종교적/정치적/지정학적 의미가 얽히고 설켜 흘린 피가 얼마인가.

마지막으로 성경 한구절만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예레미아 7: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I will bring an end to the sounds of joy and gladness and to the voices of bride and bridegroom in the towns of Judah and the streets of Jerusalem, for the land will become desolate. NIV

캘리포니아는 왜 산불이 자주날까

지리관련 궁금증을 매번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는 지리샘 페친님의 포스트. “캘리포니아는 왜 산불이 자주날까?”

링크: 대기 대순환과 지형이 만들어내는 캘리포니아의 산불

이건 딴 얘기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캘리포니아 산불 뉴스를 보실 때마다 걱정을 하시는데, 캘리포니아가 애틀란타와 전혀 다른 동네라는 걸 아무리 설명해드려도 마땅해 하지 않으신다.

얼마전에 오셔서 주변에 녹지 비율이 높고, 미국 집이 대부분 목조 건물이라는 걸 보시고는 걱정이 더해지셨다. 산불 한번 나면 정말 일나겠다며.

캘리포니아와 조지아는 기후도 다르고, 지형도 다르고, 거리도 엄청나게 먼… 나라만 같은 미국일 뿐이지 전혀 다른 동네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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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땅, 예루살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다는 발표를 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에 지금까지는 누구도 이를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AIPAC의 영향력 때문에 부시도 공약으로만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제는 이 이슈가 예전보다 국제정치에서 덜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거나, 트럼프가 워낙 파격적이라는 의미이겠지…)

예루살렘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이 모두 신성한 땅으로 여기는 곳이다. 유대교는 성전이 있었던 곳이기에, 기독교는 이에 더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기에, 이슬람은 모하메드가 하늘로 승천한 곳이기에 그러하다. 현대에 와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크게보자면 이스라엘-중동, 더크게는 기독교-이슬람)의 중심이 되었다.

2년전에 구약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를 되새긴 적이 있다. 생각이 나서 공유한다. 구약은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이 같이 경전으로 인정하는 책이기에 두 종교에 모두 동일한 의미가 있다.

혹시나 모를 오해를 막고자 덧붙이자면, 예전 포스트가 이스라엘이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혀 정치적인 입장없이 성경을 그자체로 독해했던 내용을 옮긴 포스트이다.

몇천년전 이야기를 현대의 문맥에 맞추어 재해석하는 일은 각자가 딛고서있는 믿음과 지적인 풍토,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예전 포스트
시편 121편: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2015년 11월 12일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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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예루살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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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징코와 자이니치

어제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Pachinko라는 소설을 언급했는데, 몇가지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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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Jin Lee (19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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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트 링크 (뉴욕타임스 선정 2017년 올해의 책 10권)

자이니치, 그러니까 재일교포에 대해서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본 영상물 중에서는 아래 첨부 다큐 (13분 분량)가 자이니치 (특히 조총련계) 에 대해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미국인의 시각이라 감정적이거나 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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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남북으로 갈리기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자이니치들은 육이오 이후 자신의 국적을 정해야했다. 지리적으로는 남한 출신이 많긴 했지만, 재일교포에 무심했던 남한정부에 비해 북한은 이들에게 심적 물적 지원을 했었고, 많은 이들이 북한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택했다.

이들은 주로 빠찡코를 운영하며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에 강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북한-일본 관계가 급랭하고 북한 군비 자금으로 흘러든다는 비판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빠찡코 운영이 많이 어려워 졌다고 들었다.

며칠전에 서점에서 훑어본 바로는 소설 Pachinko는 정치적인 메세지가 뚜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1910년 부터 현대에 이르르는 4대에 걸친 가족사, 사랑이야기, 가족 간의 갈등이 주였다. marginalized 주변화된 인물들에게서 좀더 극적인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보편적 사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