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dox of tolerance

The Paradox of tol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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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이론적인 배경에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

Toleratio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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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샬럿츠빌 사태 Vice news 다큐멘터리

Speechless.

여타 다큐멘터리가 그렇듯이 편집과 미디어의 관점이 녹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테면 트럼프가 소위 ‘alt-left’라고 칭한 antifa를 찍은 동영상도 돌아다닌다. 그러나 아무리 쉴드를 친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fine people이라고 칭하는 것은 무리수다. 선량한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유대인은 물러가라’ 라고 외치는 시위에 동참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수의 극단주의자들과 분명히 거리를 두는 발언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주의: 영상에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이 포함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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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나치 역사 청산 과정

그저께 독일인의 과거사 청산 관련해서 포스팅을 했었다. 페북에서 한분과 댓글 대화를 나눴는데 좀 길어졌다. 기록 차원에서 포스트로 따로 저장해둔다.

링크도 걸어두려했는데, 재공유를 한 포스트라 아쉽게도 좌표가 따로 안찍힌다.


반갑습니다.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네요.

독일이 1950년대 이전까지는 나치 역사를 정리하는데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야기는 저도 잘 몰랐었네요.

제가 절차와 과정은 잘 모르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 과정이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독일인은 나치와는 완전히 결별한 사람들이 된것은 분명합니다.

(이건 독일이 아니고 이스라엘 이야기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나온김에, 예를 들자면, 유명한 아이히만 재판의 경우도 체포하는 과정, 그리고 재판의 절차를 따지고 보면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하고, 독일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스라엘의 법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국제법 상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 편이였죠. 그러고 보니 아이히만 재판도 60년대 일이군요.)

어쨌든 현대로 돌아오면 민족주의와 배타주의가 다시금 힘을 얻는 서구 정치 지형에 유일하게 극우(?)가 힘을 못쓰는 나라가 독일이기도 합니다.

독일인들의 나치 금기는 지독할 정도인데, 독일인의 원죄와 별 관련이 없는 제 입장에서는 좀 심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독일에서 무슬림에 대한 공포가 다른 유럽에 비해서도 큰 편임에도, 반이슬람을 표방하는 AfD가 독일에서는 큰 힘을 못쓰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CDU의 메르켈과 그의 유력한 대항마인 SPD의 슐츠도 모두 인종적인 발언에는 선을 분명히 긋고 있죠.

서구 사회에서 뜨거운 주제인 극우세력 이슈도 영미권이나 프랑스에서는 경제/사회적인 이슈로 또는 ‘freedom of speech’ 문제로 접근하여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철저히 도덕 문제로 접근/분석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말이 길어졌네요. 좋은 내용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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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범 재판 사진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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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과거사 기억

3명이 죽었다. 지난 주말에 버지니아 샬럿스빌에 모였다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blood and soil’을 외쳤다고 한다. 독일어로 하면 이는 ‘blut und boden’ 즉 ‘피와 땅’이고 나치의 슬로건이었다.

자연스레 독일이 생각난다. 그것도 약 100여년 전의 독일 말이다.

독일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현대의 독일인들은 유대인 학살과 나치와 연관된 과거에 대해 꽤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 가면 골목골목 마다 바닥에 작은 명판 같은 걸 볼 수 있다. 그 명판에는 그 주소에 살았다가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개개인의 기억은 사라져도 이름은 영원히 남기겠다는 의지이다.

마침 오년전 독일에 갔을 때 찍어둔 사진과 그당시 적어둔 메모가 있어 공유한다.

유대인과 독일의 반성 (2014년 7월 3일 포스트)

세이의 법칙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이번주 경제이론은 세이의 법칙입니다.

Say’s law: supply creates its own demand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입니다. 주의할 점은 여기에서 공급과 수요는 개별 재화의 수요공급이 아니고 총공급/총수요라는 정도가 되겠군요. 그점을 간과하면 논쟁의 가치가 없는 터무니 없는 명제가 되어버리죠.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나 될 법 합니까. 물론 거시 관점에서도 세이의 법칙 자체가 요즘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세이기는 합니다만.

몰랐는데 세이는 프랑스 혁명 때 살았던 나폴레옹과 동시대인이군요. 참 옛날 이론이긴 하네요.

세이의 법칙 자체는 워낙 유명하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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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Baptiste Say (1767-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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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코노미스트 경제이론 시리즈

작년 게시물 중에 6가지 주요 경제이론 시리즈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코노미스트지 연재물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했었다. 경제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적 없는 경알못이 공부/정리를 해가며 올린 글이라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던 것같다.

아쉽게도 내쉬균형을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자료도 찾아보고 서두도 구상해두었는데 시기를 놓쳤다. 정작 글을 올리려니 열심이 식어버린 관계로… 나머지 이론들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https://isaacinseoul.wordpress.com/2016/09/06/economics/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올해도 이코노미스트지가 6가지 경제이론을 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처럼 정리해서 포스팅을 하게 될 것 같지않다. 잊기전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긴다. 지난주까지 두개의 이론이 소개되었다.

첫번째는 거래 비용이론을 정리한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 그의 이론은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가 정리한 코스이론에 따르면 시장이 실패했을 때도 정부의 개입보다는 당사자간의 협상이 유효하다. 신제도학파의 아버지쯤 되는 사람이다.

관련 링크는 아래.
Coase’s theory of the 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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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ald Coase (19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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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게리 베커의 인적자원론 이다. 베커는 경제학의 지경을 돈문제 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의 영역까지 넓힌 사람중에 하나이다. 그가 연구한 주제는 교육과 특히 연결되어있다. 그의 이론은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왜 적은 수의 자녀만을 갖는가?’ ‘요즘 사람들은 왜 더 교육에 시간을 많이 투자 하는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관련 링크는 아래.
Gary Becker’s concept of human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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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y Becker (193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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