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사내유보금 논란

새정부 들어 사내유보금, 재벌 규제 논의가 다시금 뜨겁다. 올 초에 관련 이슈를 나름 정리해본 적이 있어서 다시 공유한다.

단, 이 이야기들은 한국과 1도 관련없는 외국에서 (특히 미국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임을 감안해 주셨으면 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냉소적인, 또는 부정적인 어조의 댓글은 삼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관련 포스트
사내 유보금과 labor share (2월 27일 포스트)
커가는 반기업정서, 그리고 독과점 이슈 (2016년 9월 29일 포스트)
미국기업의 record-high profit과 독과점 이슈 (2016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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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편향성을 거스르며 살기

작년 오늘 포스트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이번 주에 예일대 졸업식에서 있었던, UN 미국 대사의 졸업식 축사의 일부분을 옮긴다.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아래에 원문도 첨부한다.

“우리는 번거롭게 생각하는 과정이 없이 귀에 듣기 좋은 여론을 즐긴다. (We enjoy the comfort of opinion without the discomfort of thought.)” 존 F 케네디는 1962년 이런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할 때, 아니면 검색을 할 때도 그 결과는 이전 검색 히스토리나 위치에 기반한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 됩니다. 우리가 얻는 주된 정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정보들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없이 듣기좋은 여론이 되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의 편향성을 거스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보다 그들과 소통을 하는데에 관심이 있다면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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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엘리트들의 반격

요즘 트럼프 대통령 탄핵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뉴스를 보면 매일 매일이 정치 미드를 보는 것 같다.

최근에는 FBI 국장 코미의 메모로 인해 탄핵 impeachment 이라는 i-word를 정치인들이 거론하기 시작했다. 탄핵이라는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성사 가능성이 작다. 그렇지만 최근 트럼프가 위기를 맞은 것은 워싱턴 법조인들의 반격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워 간단히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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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Comey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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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는 캐피탈 힐에 있다. 지금까지 네번 가보았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흰색의 건물들과 정갈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3년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했을 때는 킹목사 동상 주변으로 여유롭게 조깅을 하는 젊은 백인을 보았다. 그래서 인지 캐피탈 힐을 생각하면 조깅하는 젊은 엘리트 백인이 그려진다. (윈터솔져에서 캡틴아메리카도 그 주변을 조깅 했는데,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도 떠오른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위치한 DC 지역 근방은 고급 주택들도 즐비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 로비스트, 그리고 법조인들이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한 블럭 벗어나면 FBI 본부와 법무부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식당가가 있다. 그곳 식당가에서 식사를 할때 마주치는 사람의 (조금 과장해서) 열에 아홉은 법조인이다. 이 지역은 바로 트럼프가 해고했다가 역풍을 맞은 두 법조인이 활동한 공간이기도 하다. 한명은 FBI 국장 제임스 코미이고 다른 한 명은 법무대행 샐리 예이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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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y Yates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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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은 사업가들과 다르다. 이익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업가들과 달리 그들은 절차와 규정, 그리고 문서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펌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제임스 코미는 메모광으로 유명하다. 부시 정권에서 워싱턴 법조인으로 입문한 그는 민주당으로 물갈이 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가 커리어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부시정권에서 고문에 반대했다는 것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남겨둔 메모들은 의원들이 트럼프를 공격할 빌미가 되었다.

또다른 법조인은 샐리 예이츠 이다. 예이츠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트럼프가 무슬림 7개국 출입국 금지 조치를 추진할 때, 발목을 잡힌 계기 중에 하나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예이츠는 법적인 전문성을 살려서 조목조목 근거를 대며 트럼프 행정명령의 위헌성을 논쟁했었다. (관련 기사 및 동영상)

예이츠 관련 이전 포스트
No 라고 말할 의무 (2월 1일자 포스트)

그러니까 이제 트럼프의 싸움은 법조인의 영역으로 진입한 셈이다. 선거나 부동산 개발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법률가들의 세상은 절차, 문서, 그리고 규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업을 하며 수차례 소송을 경험한 트럼프가 왜 법조인들과의 싸움에서 (지금까지는) 이렇게 무력할까. 워싱턴의 법조인과 대통령의 관계는 의뢰인과의 변호사처럼 비밀 보장을 전제로한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고용된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국가에 충성할 것을 서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계약과 금전 관계가 아닌 자신의 커리어와 reputation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트럼프는 처음 무슬림 입국 조치를 추진할 때, 줄리아니 (그역시 법조인) 를 불러서 무슬림 금지 조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세련되게 다듬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코미를 불러서도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그는 워싱턴의 법조인들을 개인 변호사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계가 그렇게 간단한 곳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앞으로 전개될 일에서도 중요한 인물들은 법조인들이다. 우선 다음달 청문회 출석이 예정된 코미가 그 중심 인물 중에 하나이고. 이번 코미 해고 사태를 전후로 새로 떠오른 인물 Rod Rosenstein이 또 다른 등장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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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Rosenstein (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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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Rosenstein 역시 정치색이 강하지 않은 워싱턴 법조인이다. 법무부를 통해서 이뤄진 코미 해임 사태는 원래대로라면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가 중심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제프 세션스도 러시아 관련 의혹으로 이번일에서 직접 나서지 못했고, 대신 차관인 Rod Rosenstein이 나섰다. 처음에 코미 해임을 건의했다고 알려진 것도 Rod Rosenstein이고 (물론 나중에 트럼프가 자기 입으로 자기가 코미를 해임했다고 말해서 이도 유야무야 됐긴 하다.) 그리고 특수 검사 Robert Mueller를 임명한 것도 로젠스타인이다. (출처 wikipedia)

글쎄다. 워싱턴의 복잡한 셈법으로 트럼프가 로젠스타인을 희생양으로 낙점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워싱턴 법조인이 그리 naive할리 없다. 로젠스타인도 어떤 면에서 보면 특수검사 뮬러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니까.

관련 기사

JAMES COMEY AND THE REVENGE OF WASHINGTON’S PROFESSIONAL CLASS, the New Yorker, 5월 17일자

시간에 대하여

어제 샤워를 하며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시작은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떠올리면서 였다. 넷플릭스는 정액제로 과금을 한다. 회원들은 무제한으로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얼핏 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무제한 이라고 여겨지는 컨텐츠는 시간이라는 제약조건 때문에 실상은 무제한이 될 수 없다. 누구에게나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크게 보면 레져시간은) 정해져있다. 부페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게다가 음식과 달리 컨텐츠는 한계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좋은 컨텐츠만 확보해 두면 그다음은 회원수를 늘릴 수록 그만큼 이익이다.

젊어서는 간과하기 쉽지만 시간은 유한한 재생불가능한 자원이다. 다양한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다. 돌이켜보면 전공을 바꿔서 가방끈도 늘려보고, 사는 나라도 한차례 바꾸어 보았지만, 흰머리만 생겼을 뿐 그다지 현명해 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부유한들, 아무리 성취를 이룬들,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마침 시간에 대한 the Economist 기사를 보았는데 공유한다. 2014년 크리스마스 특집기사라 the Economist 기사 치고는 좀 긴편인데, 그래도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 하다.

In search of lost time: Why is everyone so busy? (the Economist, 2014년 12월 20일자)

1930년대에 케인즈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예측한 적이 있다. 자신의 손자 시대 쯤 가면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일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천재 케인즈도 시간에 대한 예측은 전혀 헛방을 짚었다.

물론 (미국 기준으로) 주당 근무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40년 전에 비해 미국인들은 주당 12시간을 덜 일하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의 도움으로) 여성들은 요리와 청소에 시간을 덜 소비한다. 남편들도 60년대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서 가사활동에 보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더 시간이 없다고 느끼게 된 것 일까.

the Economist 지는 두가지 정도로 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첫번째는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고, 두번째는 시간 자원 배분의 양극화이다.

18세기에 시계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점차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게 될 수록 점점더 시간을 쓰는데 인색해진다. 토론토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실험을 했는데, 두 그룹에 똑같이 86초 짜리 오페라 도입부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그룹에는 실험 전에 시급 hourly wage에 대한 질문을 했고, 이 그룹은 오페라를 들으면서 더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시간이 적다는 불만을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UT Austin과 서강대학교 교수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일 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상 바쁘게 살면 좀더 부유한 삶을 살게될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더욱더 바쁘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을 하는 현대인은 좀더 시간을 쪼개서 ‘멀티태스킹’에 몰입한다. 나는 1970년대 한 경제학자가 말한 성공한(?) 사람의 레져 시간 묘사를 보고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브라질 산 커피를 마시면서, 네덜란드산 시가를 피우고, 동시에 프랑스 꼬냑을 마시면서 뉴욕타임스를 읽고, 브란덴브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스웨덴 출신의 와이프와 여가시간을 갖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지금와서는 다소 우습게 읽히지만, 현대인의 욕망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다. 그러니까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살고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꿈은 여가시간에 그 시간을 다시 쪼개어 동시에 여러가지를 멀티로 즐기는 것이다.

19세기에는 레저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면, 현대인에게는 바쁨 그 자체가 부유함과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페북/인스타를 둘러봐도 놀러가는 자체가 자랑할 꺼리는 아니다. 휴가를 얼마나 꽉채워서 즐겼는가 그와중에도 나는 얼마나 빡세게 사는 가를 보여주는게 관건이지.

인터넷 문화는 멀티 태스킹과 성급함을 일반화 시켰다. 현대인의 시간 감각에서 250 밀리세컨드는 의미가 있는 차이이다. 구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250밀리 세컨드 느린 웹사이트를 덜 방문한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삶과 세속적인 성공에의 욕망 추구는 다분히 미국적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삶을 상상할 때 미국인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글래스도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반이상이 주어진 휴가의 반정도를 쓰고 있고, 15% 정도는 휴가를 전혀 쓰지 못한다고 한다. 글래스도어 자료의 신뢰성은 둘째 치더라도 미국이 한국 사람들 생각하는 것 만큼 널널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유럽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적인 기업문화를 속물적이라고 말하지만 유럽도 휴가 문화가 예전만 못하다.

시간을 쪼개쓰는 현대인의 문화가 보편적이 되면서 가장 도전을 받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여성의 직장활동이 늘어나는 동시에 좋은 엄마의 기준은 높아졌다. 시간 소비의 절대치 기준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미국기준) 그러나 아무리 가사분담이 잘 되어있는 가정이라고 하여도 여성의 가사 노동은 요리나 청소, 빨래 그러니까 아무리 해도 티도 안나고 끝도 없는 일인 경우가 많고 남성의 경우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또는 (미국의 경우) 잔디 깍기 아니면 집 수선, 가구조립 같은 좀더 티나는 또는 재미있는 일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가구 조립 같은 일들을 즐기지는 않는다만 미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

하나만 더 보태자면, 그러니까 이것도 미국 중산층 (또는 상류층) 부모의 느낌이겠지만, 중산층 가정은 대부분 계획을 해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는 준비된 상태로 아이를 갖는다. 노산이 늘었고, 교육받은 사람들일 수록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예전보다 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부모님과 비교했을 때 훨씬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시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런 글을 올리는 나도 최근에 블로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각해 볼 수록 참 묘하다. 그러니까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을 좀더 잘 쓰고 많은 것을 얻을 것 같지만, 실상은 시간이 부족한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고 더 불행해 진다.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시간이다.

the Economist지 기사는 레져에 대한 1962년 Sebastian de Grazia의 고전 ‘Of Time, Work and Leisure’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나도 여기에 옮겨두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Lean back under a tree, put your arms behind your head, wonder at the pass we’ve come to, smile and remember that the beginnings and ends of man’s every great enterprise are unti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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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관련 이전 포스트 링크
젠더와 육아이슈 (2016년 1월 7일자 포스트)
산타크로체님 블로그: 왜 고학력자들은 끼리끼리 결혼할까?
직장문화와 성평등 (2016년 9월 12일 포스트)
유럽인의 긴휴가에 대한 수다 (2016년 9월 13일 포스트)

미국인들에게 북한의 존재감

1746명의 미국인에게 북한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정답률은 고작 36퍼센트.

요즘 미국뉴스에서 그토록 북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북한의 존재감은 딱 이만큼인 듯.

터무니없이 낮은 정답률에 우선 놀랐고, 다음으로 정답이 아시아 전체에 고루 퍼진 것에 놀랐다. 찍어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중국이나 인도차이나를 찍은 사람은 그나마 그러려니 하는데, 호주를 찍은 사람과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을 찍은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뱀발.
글고 보니 최근 한 팔로워 분이 소개해주신 기사도 생각난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한국이 인도나 이집트보다 오지라는 이야기. (물론 어떤 외국인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보야, 한국이 오지야! (조선일보 2008년 8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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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에서 드러난 교회의 분열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나타난 (가톨릭) 교계 표심에 대한 기사.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 양극화의 물결은 프랑스 카톨릭 계도 예외가 아닌듯. 강력한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한 나라 프랑스에서도 종교/윤리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이슈가 되었다는 내용이 흥미로워 저장해 둔다.

프랑스 대선에서 드러난 교회의 분열 (가톨릭 뉴스,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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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nuel Macron (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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