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비아 국민투표: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이번주 일요일 FARC와의 휴전 승인 국민투표 결과는 콜럼비아인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 52년 동안의 내전이었다. 그리고 이제 콜럼비아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바로 전주에 콜럼비아는 해외에서 손님을 초대해 휴전을 축하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었다. 평화가 이제 눈앞에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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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C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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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전문가들은 낮은 투표율을 한 원인으로 지적한다. 때마침 콜럼비아를 쓸고간 허리케인 매튜는 북부지역 휴전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했다. 투표율은 37%에 그쳤고 고작 0.5%의 차이로 정전 협정이 부결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낮은 투표율 외에 정의를 향한 요구와 현정권에 대한 불만을 더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하나씩 살펴보자. FARC는 게릴라 전을 52년간 지속해온 군사집단이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FARC는 콜럼비아의 우파/친미 정권에 반대하며 1960년대에 내전을 시작했다. 그들은 수십년간 농민들을 학살했고, 소년/소녀들을 납치해서 병력을 수급했으며, 코카인등의 마약을 주된 수입원으로 삼았다. 현재 콜럼비아의 비공식적인 기간 산업은 마약제조로 파악되는 지경이다. 커피는 그 다음이다. (물론 FARC만 약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콜럼비아 마약 카르텔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오랜 세월 쌓여온 서로간의 증오를 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번 휴전 협정안에 대해서 인권단체들도 우려를 표명했었다. 투표 전에도 대부분의 외신은 ‘완벽하진 않지만’ 평화를 축하한다는 묘한 뉘앙스의 기사를 실었었다.

콜럼비아인들은 평화를 원했지만 동시에 정의를 말했다. 가족과 이웃을 살인하고 강간한 반군들이 가벼운 사회봉사와 벌금형에 처해지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FARC는 심지어 정치적인 이권도 보장받았다. 무장해제를 전제로 2026년까지 선거없이 의회에 10석을 보장받았다. FARC와의 게릴라전은 주로 밀림과 오지에서 이루어 졌고, 내전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평화보다는 정의를 실현해야한다고 말했다. (투표 결과를 보면 시골은 찬성표를 도시 지역은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협상의 자리에서 정의 실현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협상을 주도한 산토스 대통령 측은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오랜 시간 전쟁을 해온 반군들이 모든 죄값을 치루려면 그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최소한 교도소에 장시간 투옥되어야 한다.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감옥에 가라고 하면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을까. 반군들은 무장해제 요구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산토스 대통령 측은 철저한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대신에 FARC에게 정치 세력으로의 변신을 보장했다.

FARC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싸울 힘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라크전에서 볼 수 있듯이 게릴라전은 깔끔한 마무리가 불가능에 가깝다. 원래 국민투표는 휴전 협정의 가부를 묻는 것이었다. 국민투표 가결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에서 반군이 휴전협정에 사인을 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반대’파는 반군이 더 싸울 의지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표는 휴전협정의 가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휴전협정 조건의 부당함을 묻는 투표가 되었다.

투표에서 콜럼비아인들이 ‘No’를 말한 또 다른 이유는 현 콜럼비아 대통령 산토스의 지지가 바닥이라는 데에 있다.

브렉시트 투표에서도 보았지만 지지율이 낮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이용하게 되면, 사람들은 현정권에 반대하는 의사 표시로 반대표를 던지곤 한다. (산토스의 경우는 5년전 휴전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국민투표를 전제하긴 했다.)

국민투표 자체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묻는 일이고 어찌보면 복잡할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정치적인 복잡한 이슈들이 엮이게 되면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

혹자는 브렉시트 이후에 국민투표 제도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나는 국민투표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이용하려고 드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복잡한 이슈를 단순하게 바꾸어 흑백논리로 만들고 나면, 다음에 정치인들은 이를 결정하는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긴다. 그러면 반대급부로 이를 이용하려고 하는 정치인이 등장한다. 콜럼비아는 전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베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콜럼비아 대통령을 지냈다. 유력한 집안 출신의 산토스 현대통령과 달리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2006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개헌을 추진했다. 개헌의 골자는 삼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지점에서 우리베와 산토스는 갈라선다. 사실 산토스는 우리베가 점찍은 후계자였다. 우리베는 개헌에 성공하지만, 콜럼비아 헌재는 삼선 허용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우리베는 결국 정권을 산토스에게 이양한다. 그러나 정계은퇴는 하지 않았고, 의원으로 정치를 계속한다.

우리베는 휴전협정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그의 주된 채널은 트위터. 그의 계정은 450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슬로건으로 ‘We want peace, but not this peace.”를 내어 놓았다. 모두들 반신반의 했지만 그의 전략은 먹혔다. 그결과 52년 내전 역사 중에서 가장 평화에 근접하게 되었던 순간이 허사로 돌아갔다. 이제 누구도 앞일을 모른다. 다행히 반군이 전쟁을 재개할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나쁘게 풀리면 우리베가 말하던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콜럼비아인들은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제오늘 콜럼비아 뉴스를 접하면서 한 회사 동료 얼굴이 떠올랐다. 콜럼비아 난민 출신인 그녀와 지난주에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정전협정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흥분하며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뉴스에서 투표결과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콜럼비아인의 사진을 보면 그친구 얼굴이 겹쳐져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관련기사
HOW COLOMBIA’S VOTERS REJECTED PEACE, the New Yorker,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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