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h. It’s Naptime at Ikea in China. (NYT)

미국인의 눈에는 공공장소에서 수면을 취하는 행동이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도 이상하게 본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인데, 이상한 한국인 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쉬는 시간에 눈을 부릅뜨고 잠을 쫓았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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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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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나도 예전에 한국있을 때 백화점 소파에 앉아서 주무시는 불쌍한(?) 아재들을 보면서 신기했었다. 어떤 분은 코까지 고시고. 나중에 나도 자리 차지하고서 살짝 눈을 감았다는 것은 함정. 쇼핑은 왜 그리 피곤한 건지…

아래는 이케아 매장에서 자는 중국인에 대한 NYT 기사와 사진들.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지난번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포스트에 이어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전통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번 포스트에 한 분께서 프랑스가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를 하면서 수녀복은 허용하는 모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실제 이번 이슈 이후에 이를 비난하는 아래와 같은 트윗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https://t.co/MTlIuAbQ4E

다만 현대에 와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Laïcité 원칙 적용은 ‘성직자’에 한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이슬람에만 차별을 한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대형)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이미 지어진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여 예외로 본다.) 동일한 원칙으로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별을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작년에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샤를리 에브도 같은 경우도 어떤 면에서는 세속주의 Laïcité 정신에 기초한 단체로 볼 수 있다. 이 잡지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가톨릭과 모든 종교단체를 조롱하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반은 이슬람혐오가 아닌 무신론(또는 반종교)에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프랑스의 반종교정책은 유럽에서도 강경한 편이라 (타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큰) 한국적인 정서에서도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2011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laïcité는 더욱 강화되어 1946년 부터 65년간 방송된 기독교 라디오 설교도 금지된 바 있다.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위해 내 입장부터 밝힌다. 지난번에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도 프랑스의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적 전통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미국적인 개인주의에 좀더 공감하는 편이다.

지난번 포스트에 언급했듯이 프랑스와 미국은 다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공화주의 전통을 근간으로하는 프랑스식 모델이 지금에 와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말하는 관용(똘레랑스)은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공화주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 평등, 박애, 세속주의, 애국주의가 이 공화주의의 근간이다.

프랑스 헌법 1조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프랑스는 분할될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 démocratique et sociale.” 헌법 첫문장부터 프랑스는 세속주의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종교와의 대립은 프랑스 혁명 (1789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정부는 당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이에 프랑스는 두차례 로마를 침공한다. (1798년, 1809년) 혁명정부는 가톨릭을 앙시앵레짐의 한축으로 여겼고, 프랑스 헌법에 충성서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범법자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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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엥 레짐을 풍자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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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나폴레옹은 왜 교황과 화해했을까? (nasica 블로그)

이후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를 하게 되는데, 가톨릭을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인정하는 대신 교회를 프랑스 정부의 관리 아래 두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정교(政敎) 협약 (Concordat)이다. (18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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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ord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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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프랑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현대적 의미에서 세속주의 laïcité 는 1905년 제3공화국의 정교분리 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모든 공적인 장소를 ‘종교 청정 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행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학교에서 종교 복장이나 종교 행위를 금하는 법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종교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은 1937년 제정되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법들이 제정될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비종교적인 국가이었기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프랑스의 인구 구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북아프리카 옛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무슬림들이었다. 다만 이들 이민 1세대들은 자발적으로 프랑스에 넘어온 이들이었기에 프랑스의 세속주의에 저항이 크지 않았다.

무슬림 2세/3세들이 오히려 종교적으로 근본주의화된다. 방리유라고 불리는 변두리에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히잡/니캅/부르카 등의 이슬람 전통복장 착용은 일종의 분노의 표시이며, 무슬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약 10% 가량으로 추산된다. 세속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프랑스의 정신은 이들을 공화주의를 거부한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다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 이야기로 돌아오자. 아무리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상을 고려하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복장 선택을 억압하는 프랑스의 정책은 여전히 비판 받을 만하다. 내가 느끼기에도 프랑스의 세속주의 정신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 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듯 하다.

이상이 내가 burkini 이슈를 프랑스의 정체성 문제로 보는 이유이다.

관련 포스트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여성의 의복과 종교에 대한 단상들
이슬람 여성 복장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서…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참고자료
The deep roots of French secularism, BBC, 2004년 9월 1일자
1905 French law on the Separation of the Churches and the State (영문 위키피디아)
Laïcité (영문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미국은 다문화국가이다. 처음 미국 왔을 때 미국이 다문화국가임을 시각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히잡과 터번을 쓴 아랍계를 봤을 때이다. 미국에서 히잡을 쓴 아랍계, 터번을 쓴 시크교도, 키파를 쓴 유대계, 육식을 금하는 인도계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 미국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복장이 주변인에게 위화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해서 (실제로 히잡이나 터번을 쓴 사람은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복장을 금지시키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자유에 대한 믿음이 강한지라,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내가 느끼기에 소위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미국식 다문화주의는 다른 문화를 용인하며 (또는 무관심하거나 참아내며) 지내는 dynamic한 잡탕찌개 상태이다.

그런 미국인의 시각으로 프랑스의 전신 수영복 부르키니 burkini 금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미국 문화에 어느 정도 젖어들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요즘 프랑스 내에서도 이슈가 되는 burkini는 이슬람 스타일 수영복으로 전신을 가리는 형태의 수영복이다. 최근 프랑스의 15개 도시가 이를 금지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이 한 여성의 전신 수영복 burkini를 강제로 벗기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유되며 논란이 더욱 커졌다. (아래 NYT 동영상 참조)

http://nyti.ms/2bDGnZ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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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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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는 여성의 복장을 금지하는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는 것일까. (더 이상한 건 프랑스인의 64%가 burkini 금지를 찬성한다는 것이다.)

우선 프랑스와 미국은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해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1905년 카톨릭과의 갈등 이후 세속주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를 프랑스어로 laïcité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종교적 행위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금지된다. 이 원칙에 근거해서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의 키파와 아랍계의 히잡 착용이 공립학교에서 금지 되었다. (2004년)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니캅(눈만 남기고 모든 부위를 가리는 아랍 여성 의상)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세속주의 뿐만 아니다. 프랑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다른 가치는 ‘여성의 평등’이다.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아랍계 의상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다. 히잡/니캅/burkini를 금지하는 일을 남성중심주의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여성의 평등’이라는 가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우선한다. 2014년 유럽인권재판소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올라온 SAS v. France 건 판결은 이러한 프랑스의 논리에 손을 들었다. 판결은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법을 인정해주었다.

최근 burkini 논란은 또한 프랑스의 안보위협과도 연결되어 있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은 전신 수영복 burkini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아랍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행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를 순수하게 표현의 자유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를 프랑스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쉬운일이 아니다. 연이은 테러 사건으로 프랑스에는 극도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 전문가들은 burkini가 이슬람 극단주의를 구분하는 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통 이슬람에서는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며칠전 대선출마를 선언한 사르코지도 학교에서 무슬림 복장을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정체성 논란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의상에 대한 논란은 그 중에 하나이다.

관련 포스트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여성의 의복과 종교에 대한 단상들
이슬람 여성 복장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서…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참고자료
이슬람 세계와 ISIS의 단절을 위한 과제 – 여성 인권, 산타크로체님 블로그
Burkini bans in France have sales of full-body swimsuit soaring, says designer, the guardian, 8월 23일자
Why the French keep trying to ban Islamic body wear, the Economist, 8월 23일자
When a Swimsuit Is a Security Threat, NYT, 8월 24일자

여러분 수학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옮긴 이코노미스트지 경제학자 개그는 실화에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졌다.

올해 5월, 유펜에 재직하는 한 경제학자가 필라델피아에서 시라큐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는데, 이 경제학자가 마침 수식을 계산 중이었기에 성의 없게 대답했다고.

옆자리 여자는 이 남자가 뭐에 집중하는지 궁금했고, 종이를 보니까 무슨 복잡한 암호와 숫자를 잔뜩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겁에 질린 이 여자. 수식을 테러리스트의 암호로 오인한 나머지 승무원에게 알리고 비행기는 중간에 돌아오게 된다.

경제학자의 이름은 Guido Menzio라고 한다. (찾아보니 페북도 열심히 하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WP 기사 참조.

Ivy League economist ethnically profiled, interrogated for doing math on American Airlines flight (WP, 5월 7일자)

여러분 수학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image source: http://www.telesurtv.net/english/news/Doing-Math-on-a-Flight-Can-Now-Get-You-Accused-of-Terrorism-20160507-0028.html)

비행기에 올라탄 경제학자의 10가지 행동

Airline safety – Ten ways to tell you might be sitting next to an economist, the Economist, 5월 9일자

1. 안전수칙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는 in the long run’ 인간은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에.

2. 옆에 있는 당신에게 ‘공짜 음료’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소근댄다. “There is no such thing. complimentary refreshment.”

3. 복도 자리에 앉은 그는 가운데 좌석에 앉은 당신과 대화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사람이 멍청하다는 “합리적 기대 rational expectation”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렇지만 그는 당신 뒷자리에 앉은 여성을 보고서는 자리 바꾸기 경매 competitive auction을 제안한다.

5. 팔걸이를 독차지하면서, 자신이 더 높은 ‘한계 효용 marginal utility’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6. 팔꿈치로 당신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넛지 nudge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7. 좌석 위 선반을 열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떨어지면서 그의 머리를 때린다.

8. 그러나 그 책을 발 받침대로 쓴다.

9. 비행기가 3만 5천 피트 상공에 이르러서야 안심을 한다. 그리고서 이제 ‘일반 균형 general equilibrium ‘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10. 비행기에서 내내 그리스 문자, 알파, 베타, 감마를 써댄다. 그가 수학계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알고보니 그는 그리스로 향하는 IMF 협상팀의 일원이었다.

11. 10개 항목에 하나를 추가한다. 왜냐하면 그는 ‘양적 추론 quantitative reasoning’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 덧: 이코노미스트지가 항상 진지한 것 만은 아니다. 가끔 고순도의 개그도 구사한다.

자메이카 공중보건 이야기

자메이카가 유독 육상에서 강한 이유를 설명하는 자메이카 육상 기사를 읽고서 흥미가 생겨, 자메이카 공중보건 관련 자료를 좀 찾아봤다.

자메이카는 가난한 나라임에도 기대수명이 선진국 수준이다. 독특한 이 현상을 연구한 한 학자는 이를 Jamaica Paradox라고 이름 붙였다. (자메이카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 76세이다.)

관련 서적: Poverty and Life Expectancy: the Jamaica Paradox by James Riley (2005년 출간)

마침 이 책을 소개한 NPR 기사가 있어 공유한다.

A Surprising Theory About Jamaica’s Amazing Running Success (NPR, 8월 18일자)

이 책에 따르면 1920년대 록펠러 재단은 개발도상국의 보건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국으로 봉사팀을 파견한다. 말라리아, 결핵, 그리고 각종 수인성 질병 퇴치가 목표였다. 이에 그들은 파견국에 요양원을 짓고, 하수 정화시설을 설치한다.

그런데 자메이카에 파견된 Benjamin Washburn이라는 양반이 좀 똘똘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메이카가 이러한 대책을 실행할 만큼 돈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다. 그래서 대신 가난한 나라가 감당할 만한 현실적인 대책을 실행한다.

이를테면 기존의 결핵 대처 방법은 환자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요양원 자체가 드물고 환자가 치료비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처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을 요양원 대신 집으로 보내고 외출을 자제 시켰다. 그외에도 그는 화장실을 외부에 따로 지어서 하수도와 분리시키고, 모기 퇴치 캠페인을 벌이는 등 현실적인 사례들을 개발했다.

또한 개인위생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나섰다. 여기서도 Washburn의 기지가 돋보이는데, 그는 돈이 들어가는 홍보매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위생과 관련한 몇가지 사례들을 연극대본으로 만들어서 학교에 배포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즐기면서 위생관념을 키우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자메이카의 기대수명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서 1977년에 이르러서 기대 수명은 2배가 된다. (1920년 36세에서 1977년 70세로… ㄷㄷ)

우사인 볼트는 1986년 생이다. 자메이카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국민의 건강은 선진국 수준이다. 우사인 볼트는 자메이카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열악한 훈련 환경에서도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아주 건강한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4.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경알못이 보기에 경제학자들은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항상 논쟁하는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버나드쇼는 이런 말을 남겼을까. “모든 경제학자들을 쭉 이어서 길을 만든다면, 그들은 결론이라는 도착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If all economists were laid end to end, they would not reach a conclusion.”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는 경제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거리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케인즈 승수 Keynesian Multiplier’ 이다. 케인즈가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발표한 이후로 그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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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cal multipliers – Where does the buck stop?, the Economist, 8월 13일자

1928년에 대공황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대공황은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국인들은 치솟는 물가와 파운드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당시 영국 경제학자들은 소위 말하는 ‘재무부의 견해 Treasury View’로 상황을 판단했다. 그들은 영국 정부에 닥친 재정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재정을 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리카도의 대등 정리를 계승한 사상이다. 정부의 지출은 결국에는 빚이고 미래에 세금을 걷어서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긴축재정을 주장했다.

잠깐, 이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작년 그렉시트 때 일부 경제학자들이 말했던 내용과 유사하다. 그들은 그리스의 방만한 재정으로 유럽에 위기가 왔으니 그리스의 재정을 건전화하는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Treasury view는 시카고 쪽의 민물 경제학자 freshwater economist들로 이어진다. 물론 이들이 treasury view를 정확하게 똑같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민물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뒤에서 다시 살펴 보자.

어쨌든 케인즈는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유동성 선호liquidity preference’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일정수준의 돈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정부가 지출을 줄인다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게 되고, 총수요가 줄어들어 재정적인 문제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는 ‘승수 효과 Multiplier effect’를 말한다. 이는 거칠게 요약하면 정부의 지출이 국가의 소득을 증대시킨다는 이론이다. 예를들어 정부가 1조원의 예산을 들여서 학교를 짓는다고 하자. 그리고 학교를 짓는데에는 500억원이 든다. 그러면 이 건축회사에게 500억원이 생긴다. 그런데, 건축회사는 건물을 혼자 지은 게 아니다. 페인트공, 전기기술자, 시멘트 업자를 고용해서 건물을 짓는다. 그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야 된다. 그래서 70%를 수수료로 지불하고서 이제 30%가 현금으로 남는다. 이때 1/30%를 계산 하면 3.33이 되는데, 이게 케인즈가 말하는 승수 multiplier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건축회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인트공도 있고 전기기술자도 있는데, 계산해보니까 모두가 30%쯤을 현금으로 남긴다면, 결론적으로 승수가 3.33이 되는 것이다.

근데 3.33이 무슨 의미일까. 바로 3.33의 비율 만큼 국가 소득이 증대된다는 이야기이다. 정부가 1조원 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3조 3천 3백억 만큼 소득이 증가한다. 완전 마술이다.

이러한 견해로는 재정긴축은 최악의 수이다. 케인즈가 가정한 세상에서 불황이 오면 사람들은 유동성을 선호하고 현금을 일정 수준 가지려고 하는데, 이자를 낮춰봐야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이를 ‘crowd-in’ 이라고 하고, 고전 경제학이 보는 관점을 ‘crowd-out’이라고 한다.

케인즈 경제학이 가장 흥했던 시기는 2차대전 즈음이다. 영국과 미국은 전쟁을 위해서 엄청난 재정 지출을 했고, 이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 이는 케인즈 승수효과를 완벽하게 입증하는 듯했다.

또한 미국의 Alvin Hansen과 Paul Samuelson은 케인즈 경제학을 계승하여 방정식을 완성한다. (Hansen–Samuelson multipliers) 아참 여기서 한센과 사무엘슨은 연재 2회와 3회에서 나왔던 그 사람들이 맞다. 대가들은 여기저기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 상황은 역전된다. 케인즈식 처방전이 잘 안먹히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온 것 이다. 이때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로버트 루커스Robert Lucas같은 학자가 등장한다. (참고로 루커스도 연재 2회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의 공급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면서 케인즈 승수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루커스는 ‘합리적 기대 rational expectation’라는 개념을 활용하여서 재정정책은 납세자들의 미래 지출에 대한 기대치를 바꾸어 결국 케인즈 승수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시카고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들을 흔히 민물 경제학자 freshwater economist라고 한다. 오대호 근처에 있는 시카고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논쟁을 좋아하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겠는가. 민물 경제학자들에 반대하는 짠물 경제학자 saltwater economist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해안에 위치한 학교에 재직했기에 짠물 경제학자라고 불리운다. 이들의 다른 이름은 New Keynesian이다. 이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은 Larry Summers, Greg Mankiw, Stanley Fischer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재정 정책 fiscal policy대신에 중앙은행 central bank의 역할을 강조했고, 중앙은행이 잽싸게 deft 경제를 조정하여서 승수효과를 뽑아내야 (squash) 한다고 말했다.

그럼 현재는 어떨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계는 또한번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승자(?)가 없다. 다만 불황이후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케인즈 승수에 관한 논쟁이 흥미롭다. 2008년 이후에 케인즈 승수를 다시 계산하는 논문이 쏟아졌다. 예를 들자면, IMF는 케인즈 승수를 계산해서 1.5라는 결론을 낸 바있다. 사실 지금 이자율은 거의 제로에 이르렀는데, 이 상황에서는 재정정책 말고는 쓸만한 탄환도 없다. 80년 전 옛날 책을 다시 뒤적이는 수밖에는…

+ 덧1: 이번 연재는 조금 늦었습니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고 (애는 밤마다 왜그리 서럽게 울어대는지), 또 별생각 없이 시작한 경제이론 연재가 너무 큰 관심을 받는 바람에 부담이 커져서 이기도 합니다. 경제학 비전공자인 경알못이 경제학 썰을 푸는데, 경제학 교수님과 박사님들이 보고 있으니 얼마나 살떨리던지요. 어쨌든 그냥 용감하게 올립니다. 어차피 제 포스트는 공부차원에서 하는 거니까요. 대신 오류가 있으면 바로 지적해 주실 것을 페친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오늘 포스팅은 주제 자체가 워낙 논쟁적이라 또 한번 살떨리네요.

+ 덧2: 다음 순서는 내쉬 평형과 먼델 플레밍 모형입니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

자메이카 육상선수의 비밀

자메이카 출신 하버드대 사회학자 Orlando Patterson 교수의 NYT 기고문을 공유한다.

우선 감상부터. 특정 국가/민족이 특정 스포츠 종목에 강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런 설명에는 선입관이 개입되기가 쉽상이다. 그럼에도 기사는 재미있게 읽었다. 자메이카의 공중보건이나 사회체육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Patterson은 자메이카가 육상에 강한 이유가 인종에 있지 않다고 한다. 자메이카의 조상은 서아프리카 출신이 많다. 동일한 조상을 가진 서아프리카가 딱히 육상에 강한 지역은 아니다. 또한 자메이카처럼 서아프리카 출신이 많은 미국/브라질 보다 자메이카는 육상에서 월등한 성적을 보인다.

자메이카는 특이하게도 육상이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라이다. 중고교 전국체전의 인기는 대단해서 매년 3만 명의 관중이 모인다고 한다. 국가적으로도 육상에 대한 지원이 (캐리비안 국가임을 감안하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자메이카에서는 육상이 야구 만큼이나 인기 종목이라고 한다.

Patterson 교수는 또한 자메이카의 지리적 환경(산악지대)이 육체적으로 탁월한 선수들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대신 공중보건을 이유로 든다. 1920년대 록펠러 재단의 캠페인은 개인위생, 깨끗한 물, 모기 박멸에 힘을 쏟았고, 자메이카는 가난한 나라임에도 평균수명이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다가 사회체육 장려도 더해졌는데, 가난한 나라 자메이카는 돈이 안드는 달리기를 장려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메이카인의 호전성과 경쟁적인 국민성을 이유로 든다. 물론 자메이카인은 호전성 때문에 열악한 치안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육상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그럼 왜 이렇게 육상에서 성공적인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Patterson 교수는 리더십의 부재를 이유로 든다. 정치/경제적인 발전은 리더십이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메이카의 인적자원과 사회기반은 약하지 않다. 공중보건에서의 성공이 우선 그렇고, 육상과 음악산업 (레게 음악) 에서의 성공도 자메이카인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포스트: 자메이카 공중보건 이야기

Shaking Up Italy’s Most Popular Museum (NYT)

이태리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이태리는 문화 유산과 볼거리도 많지만 그만큼 정신없고 무질서한 동네라는 것을.

내게 피렌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관람 경험 그 자체는 아주 쾌적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우선은 더웠고, 징징거리는 딸을 안고서 줄선 다음 새치기 하는 사람들하고 실갱이를 해야 했으며, 암표상이 득실 거렸고, 소매치기에 신경을 쓰느라 주위를 살펴야 했다.

이태리는 오랜 역사 만큼 잘못된 관행과 관료주의가 뿌리가 깊은 나라이다. 관광산업이라고 별 다를게 없다.

작년 우피치 미술관은 독일인 Eike Schmidt를 관장으로 임명한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공유한다.

일화를 하나만 옮긴다. 그가 처음 부임하고서 한 일 중에 하나는 매표소에 경고 스피커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소매치기와 암표상을 주의하라는 스피커를 설치하고서 몇일 뒤, 경찰이 Schmidt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공공장소에서 비인가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329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Schmidt는 다소 화가 났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자기 돈으로 벌금을 낸다. 그리고 기자들은 이를 기사로 썼다고. 그는 순진한 독일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대중의 지지도 얻었다.

기사를 읽어 보면, 그의 개혁에 매번 이렇게 즐거운(?) 해프닝만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대부분은 지루한 관료들과의 싸움이고,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 덧: 마눌님께서 우리가 피렌체에 간건 겨울이었다고 알려주시네요. 하마트면 페북 구라쟁이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 기억속의 피렌체는 여름일까요. 꿈 속에서 피렌체를 한 번 더 갔던 걸까요. 이놈의 건망증이란… 아직 40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큰일입니다. ㅋㅋ 뭐 우피치 앞이 혼잡하고 정신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