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t and Won’t by Lydia Davis

요즘에는 리디아 데이비스 Lydia Davis를 읽고 있다. 그녀는 미국에서 현재 활동하는 단편작가 중 가장 독창적인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폴 오스터의 전부인이고, 2013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Lydia Davis

New Yorker: Long Story Short (리디아 데이비스 소개 기사)

Lydia Davis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주에 NYT에 실린 싯다르타 무케르지 Siddhartha Mukherjee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가 Lydia Davis의 책을 읽고 있다고 해서였다.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암:만병의 황제의 역사’의 저자이다.)

이전에도 몇몇 영미권 작가들이 그녀를 추천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Lydia Davis는 아직 한국에 소개된 바가 없다.) 게다가 그녀의 소설은 초단편 very short short story이다. 백일을 갓 넘긴 딸내미를 보다가 짬짬이 읽기에 딱이다.

집어든 책은 최신간인 ‘Can’t and Won’t’

굳이 이 책을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궁금해진다.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plot 이랄께 없다. 형식이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는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한두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단편(?)을 몇자 옮겨본다.

Ph.D.

All these years thought I had a Ph.D.
But I do not have a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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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ington

Now that I have been here for a little while, I can say with confidence that I have never been here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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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 하나도 옮겨 본다. 최소한의 문장과 단어를 사용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드는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여자, 서른.

서른이 된 한 여자, 어릴 적부터 살던 집을 떠나기 싫다.
왜 내가 집을 떠나야 하는가? 여기는 부모님의 집이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 왜 내가 어떤 남자와 결혼해서 다투고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야 하는가?
그러나, 그 여자는 창문 앞에서 벌거벗는 것이 좋다. 그녀는 어떤 남자가 그녀를 바라봐 주는 정도는 좋겠다고 생각한다.

A Woman, Thirty

A woman, thirty, does not want to leave her childhood home.
Why should I leave home? These are my parents. They love me. Why should I go marry some man who will argue and shout at me?
Still, the woman likes to undress in front of the window. She wishes some man would at least look at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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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겁게 읽었던 piece도 한번 옮겨본다. 글쓰기에 대해 쓴 일종의 메타 소설 쯤 될 듯하다. 워낙 언어를 압축해서 썼기에 내 어설픈 번역으로 맛을 살리기 힘들긴 하다. 원문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글쓰기

계속해서 써가기에는 삶이 너무 고단하다. 예전에 삶은 쉬웠고, 때로는 즐거웠고, 그때는 쓰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그때도 어려워 보이긴 했다. 지금와서 삶은 쉽지가 않다. 정말 고단해졌고, 비교하자면, 쓴다는 건 약간 우스워 보인다. 종종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해 쓴다. 그리고 내가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해 쓸 때, 종종 그것은 동시에 현실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주 자주, 삶을 잘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쓴다.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자기 삶을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는 대신에, 글쓰기를 그만두고서 나는 내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삶 자체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지도. 내가 좀더 현명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더이상 쓰지 않는 것이다. 내가 대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다.

Writing

Life is too serious for me to go on writing. Life used to be easier, and often pleasant, and then writing was pleasant, though it also seemed serious. Now life is not easy, it has gotten very serious, and by comparison, writing seems a little silly. Writing is often not about real things, and then, when it is about real things, it is often at the same time taking the place of some real things. Writing is too often about people who can’t manage. Now I have become one of those people. What I should do, instead of writing about people who can’t manage, is just quit writing and learn to manage. And pay more attention to life itself. The only way I will get smarter is by not writing anymore. There are other things I should be doing 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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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데이비스는 프루스트 Proust와 플로베르 Flaubert의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번역을 한번 거친 영어 문장을 읽는 기분도 든다.

문장은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데, 리듬감이 있어서 그렇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지 않고서는 리듬감이 나올 수 없다.

어쩌면 평생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도전하는 것 보다는 리디아의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길이는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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