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중우정치

최근 미국 정치 덕후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칼럼을 하나 소개한다.

칼럼은, 트럼프의 등장을 이야기 하면서, 너무 많은 민주적인 절차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칼럼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주류 보수가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주는 칼럼이고, 민주주의에 대해, 미국 정치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도 볼 수 있기에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Democracies end when they are too democratic (New York Magazine, 5월 1일자)

캡처

필자는 정치 블로거로 유명해진 Andrew Sullivan이다. 여담이지만, 이 아저씨는 게이인데, 성소수자 이슈를 제외하고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졌다. 게이이면서 보수주의자인 기묘한 조합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미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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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을 번역해볼까 하다가, 워낙 장문이고 굳이 100% 동의하지 않는 글에 잉여력을 소진할 마음까지는 동하지 않은지라, 몇가지 논점만 살펴보려고 한다.

칼럼은 이번 미국 대선이 플라톤의 ‘국가’의 한 부분을 연상시킨다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As this dystopian election campaign has unfolded, my mind keeps being tugged by a passage in Plato’s Republic.

그리고선 플라톤이 말했던, 민주정에서 참주정으로의 이행을 언급한다.

And it is when a democracy has ripened as fully as this, Plato argues, that a would-be tyrant will often seize his moment.

간단하게 플라톤이 말한 민주정(democracy)과 참주정(tyrant)을 정리해보자. 내가 철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의 정리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민주정은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체제이다. 그리고 민주정은 다수의 하층민과 소수의 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민주정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숫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자유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부를 부자에게서 뺏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때 선동가 (demagogue)가 등장하여, 소수 부자들에게서 부를 빼앗아 나눠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동가는 다수의 힘을 조직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어낸다. 선동가는 자신의 권력의 기반이 약한 초기에는 대중의 약속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는 듯 보이다가, 곧 늑대로 돌변하여 숙청을 한다. 참주가 된 선동가는 대중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외부인에 대한 증오를 키운다.

Andrew Sullivan은 트럼프의 모습에서 플라톤이 말한 선동가를 보았던 것 같다. 아주 역겹다고 말한다. 물론 그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과 현대 민주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소크라스 시대와 달리 미국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 될 수 있게 고안되어 있다고 말한다.

Part of American democracy’s stability is owed to the fact that the Founding Fathers had read their Plato. To guard our democracy from the tyranny of the majority and the passions of the mob, they constructed large, hefty barriers between the popular will and the exercise of power. Voting rights were tightly circumscribed. The president and vice-president were not to be popularly elected but selected by an Electoral College, whose representatives were selected by the various states, often through state legislatures. The Senate’s structure (with two members from every state) was designed to temper the power of the more populous states, and its term of office (six years, compared with two for the House) was designed to cool and restrain temporary populist passions. The Supreme Court, picked by the president and confirmed by the Senate, was the final bulwark against any democratic furies that might percolate up from the House and threaten the Constitution. This separation of powers was designed precisely to create sturdy firewalls against democratic wildfires.

미국의 정치 체계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Andrew Sullivan이 정리한 위의 문단은 미국 정치가 처음부터 얼마나 보수적으로 설계 되었는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가 대중의 인기와 일시적인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랬다. 이를 테면,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그리고 상원은 주별로 2명씩 상원 의원을 선출하는데, 이는 인구수가 많은 주에 힘이 집중되지 않게 만드는 장치이다. 또한 6년 임기의 상원 의원은 2년 마다 1/3씩 나누어서 선출하는데, 이를 통해 일시적인 정치 돌풍이 상원을 한번에 바꾸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또 대법원 판사는 대통령에 의해 선출되고, 상원의 승인을 받게 되어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이러한 제도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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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장치에 포함된 비민주적인 요소들은 몇 세기에 걸쳐 변하게 된다. 점차 direct democracy가 된 것이다. 우선 선거권이 여자와 흑인에게도 주어졌고, 선거인단 제도도 변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식 경선도 1968년도의 Democratic convention 이후에 정착되었다. 그리고, 기성 정치인이 아닌 outsider의 대권 도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최초는 1940년 공화당 후보인 Wendell Willkie이다. 그는 정치 경력이 없는 사업가였다. 결과는 선거에서 루즈벨트에게 참패. 이후에도 Ross Perot, Jesse Jackson, Steve Forbes, Herman Cain 같은 outsider들이 도전을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올해는 알다시피 Ben Carson, Carly Fiorina, Donald Trump가 있다.

여기까지 읽다보니 한국의 정치 시스템이 생각났다. 바로 1987년 민주화 열풍, 그리고 혼돈기를 거쳐 정립된 대통령 직선제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대통령 간선제가 미국 대통령제의 틀이 되었듯이, 대통령 직선제 전환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독재국가였고,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대표되는 나라 였다. (요즘에 우리가 브라질/그리스를 바라보는 것 처럼 말이다.) 그 혼돈을 일순간에 잠재웠던 사회적인 합의가 대통령 직선제의 약속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우리에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진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독재 국가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체택하고 있고, 선거의 공정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재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 이다. (마르코스 라던가 우고 차베스 라던가…) 그러나 한국은 1980년대를 지나며 대통령 직선제가 공정한 게임과 동의어가 되었고, 어떤 의미에서 한국 정치의 정체성이되었다.

각 나라의 선거 제도와 장단점에 관해서는 아래 자료를 참조하면, 유용할 듯 하다. 특히 정치학도라면 필독 자료가 아닐까 싶다. 자료를 보면서 어떤 제도도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점과 단점이 있을 뿐이다. 역사적인 배경과 국민의 합의에 의해서 절차가 세워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Electoral System Design: the New International IDEA Handbook

다시 Andrew Sullivan 칼럼으로 돌아와서, 이 아저씨는 미국 정치 시스템이 direct democracy로 변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 민주주의는 media democracy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트위터, 페이스북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대중은 눈이 먼채 욕망만을 쫓고 있다. 이것이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가장 우려했던 그 상황이다. 사유와 실증에 기반한 논의는 사라지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감각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대중만이 남은 것이다.

And what mainly fuels this is precisely what the Founders feared about democratic culture: feeling, emotion, and narcissism, rather than reason, empiricism, and public-spiritedness. Online debates become personal, emotional, and irresolvable almost as soon as they begin. Godwin’s Law — it’s only a matter of time before a comments section brings up Hitler — is a reflection of the collapse of the reasoned deliberation the Founders saw as indispensable to a functioning republic.

참고로, 예전에 나도 미디어와 트럼프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한적이 있는데, 관심있는 분은 여기를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칼럼의 반정도 내용이고, 나머지는 왜 미국 민주주의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트럼프는 어떻게 이 기회를 잡았나에 대한 Sullivan 아저씨의 분석이다. 이 아저씨는 책을 많이 읽었는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용한다. 거리의 철학자 Eric Hoffer, 소설가 Sinclair Lewis같은 사람도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도록 하겠다. 나의 잉여력 발산도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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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ffer

그래도 아쉬우니까, 이 아저씨의 주장을 러프하게 요약하자면, 타락한 21세기 미디어 민주주의는 플라톤의 참주정을 연상시키고, 트럼프 같은 선동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 elite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트럼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정도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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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민주주의와 중우정치

  1. Larry and Bartel의 Democracy for Realists를 추천합니다. 파운딩 파더들은 공화주의자들이었죠. 메디슨이 특히 그랬고 해밀튼은 엘리트주의자였고 제퍼슨이 그나마 좀 민주주의자에 가깝긴 한데 대지주에 노예소유자였으니… Relic이란 책도 좋아요.

    • 찾아보니 투표자 개개인의 성향과 선거 결과가 왜 일치하지 않는지 잘 설명해주는 책인 것 같네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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