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체성과 도널드 트럼프

이민자의 나라 미국

몇주 전 있었던 사내 교육 시간. Ice break를 하게 되었다. 자기 소개와 함께 독특한 경험담을 하나 곁들이는 것. 대부분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 성패트릭 데이에 술집에서 쫒겨난 이야기라던지, 어릴 때 집에서 곰을 키워봤다던지 등등. 그런데 남미 지역 PR을 담당하는 한 매니져가 일어나서 본인은 술집에서 죽은 고양이를 걸어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들 무슨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겠거니 웃었는데, 그 친구는 그것이 갱단의 소행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콜롬비아 난민 출신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잠시 심각해졌다가 다음 사람 순서로 넘어갔다.

이 친구와 몇번 점심을 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이 국가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고,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가 아닌 우파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직원은 이탈리아계 이민 3세 이다. 그 친구와 가끔 음식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주로 한국 음식 이야기를 그 친구는 주로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는 지금은 이탈리아어를 거의 못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온지 5년 정도 되었다. 그동안 나는 미국 사람들 눈에는 한국 이민자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한국 출신 이민 1세대 비슷한 처지다. 아이는 한국말에 능숙하고 밥과 김치를 좋아하지만 초등학교에서 미국 역사를 배운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이야기를 아이에게서 들으면 생경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문화 배경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매일 만나고 그속에서 함께 살면서 이 나라의 독특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heritage가 뚜렷하게 남아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이를테면 미국 이민자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일계와 England 계 이민자들은 문화적인 정체성이 강하지 않다. 직장 동료 중에 독일계가 한명이 있다. 대화 소재로 독일 이야기를 꺼내봤으나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독일계 미국인 이민자들은 1,2차 세계 대전의 기억 때문에 의도적으로 독일인의 정체성을 지운 역사가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The silent minority,economist, 2015년 2월 7일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누구일까?

그런데 미국에서도 조금 다른 그룹이 있다. 조상을 물어보면 German, Irish, English라고 대답하는 사람들과 달리 American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의 주제인 도날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다. 내가 매일 만나는 미국인들은 대다수 대학교육을 받은(bachelor or master degree), 관리/사무직 직장인 (managerial career) 들이고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트럼프 지지자를 만나본 일이 없다. 나는 도대체 트럼프 지지자 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래는 뉴욕타임즈에서 조사한 트럼프 지지 지역과 인구 센서스 데이터와의 상관관계이다. (The Geography of Trumpism, NYT,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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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저학력의 백인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American이라고 보고 있으며, 트레일러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농업/건축인부/공장 근로자 같은 전통적인 업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이고, 미국 출생이면서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이 대다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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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으로 보면 남부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이 몰려 있는 Bible belt 지역과 산업기반이 약한 upstate New York, 그리고 과거 미국의 공장이었으나 쇠락한 미시건 일대의 rust belt 지역이다. (출처: Donald Trump’s Strongest Supporters: A Certain Kind of Democrat, NYT, 2015년 12월 31일자)

트럼프 지지자들의 현지 목소리는 링크한 뉴욕타임즈 기사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글 번역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This Is Trump Country (NYT, 3월 4일자) 한글 번역: 트럼프 지지자를 찾아서 (뉴스 페퍼민트)

트럼프가 막말 제조기에 지나지 않을까?

트럼프를 떠올리면 보통은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무례한 언사가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종종 그것이 언론이 만들어낸 일종의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 본인도 자신의 이미지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에 대해서 말할 때, “he is crazy but…”이라고 말을 꺼낸다. 그 말인 즉슨 트럼프가 싸가지는 없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인종차별 주의적인 발언말고도 진지한 이야기가 많다. 이를 테면 트럼프는 군수사업이나 제약 산업과 결탁한 정치인들이 미국을 말아먹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이라크에 수조원을 쓰고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고, 실질적인 의료 독과점으로 미국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또 자주 말하는 것은 자유무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NAFTA나 TPP 같은 자유무역 정책이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실직자를 양산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심각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말한다. 자신의 회사 경영 경력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자 보는 회사를 운영하면 경영자가 쫓겨 나야 한다고 한다.  (관련 자료: Millions of ordinary Americans support Donald Trump. Here’s why, the guardian, 3월 7일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하나만 집고 넘어가보자. 경상수지 적자가 회사의 적자와 같은 개념인가? 트럼프가 이야기 하는 무역의 개념은 중상주의에 가깝다. 경제학에서는 200년 전에 내려놓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관점이다.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벌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싸게 물건을 들여오는 외국은 도둑이라고 본다. 실제 트럼프는 대미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는 중국을 역사상 가장 큰 도둑이라고 표현했다. (출처: On Trade, Donald Trump Breaks With 200 Years of Economic Orthodoxy, NYT, 3월 10일자)

경상수지 적자가 국가 경제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맞는 이야기 처럼 들린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거시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그 부분을 강조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관련해서 궁금한 분들은 다음 두 글을 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한글로 되어있다. 거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상식적인 이야기, 경제학에 익숙치 않으면 조금 기술적인 이야기이다.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불황형 흑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무역 이슈는 정치적으로는 이견이 갈린다. 다만 경제학의 관점에서 무역은 상호간에 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보며, 보호 무역에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트럼프의 정치적인 이해는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지지층 중 상당수가 전통 산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일자리를 잃고 쇠락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와 샌더스

잠깐 민주당 이야기도 해보자. 민주당 경선 이야기는 공화당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아서 한국에 그다지 보도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난주에 있었던 민주당 미시건 경선은 의외였고, 시사점을 남겼다.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정도 우세를 보이던 힐러리를 샌더스가 누른 것이다. Rust belt에 위치하는 미시간에 클린턴이 통과시킨 NAFTA에 대한 피해의식 남아 있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샌더스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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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민주당 여론조사. 출처: huffpost pollster)

최근 샌더스와 트럼프에서 공통점을 찾는 분석 기사들이 보인다. 몇몇은 샌더스와 트럼프가 자유무역에 반대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관련 기사: What Trump and Sanders Get Wrong About Free Trade, NYT, 3월 16일) 샌더스 지지자 들에게는 트럼프가 엮이는 것이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역 뿐 아니라, 의료개혁, 외교 방향 (고립주의) 등에서 생각보다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샌더스을 지지하는 사람들 모두가 rust belt 지역 사람은 아니다. 젊은 지지층이 있고, 그들은 샌더스의 한결같음, 대학/의료 개혁에 대한 지지, 월가에 대한 비판의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샌더스 인기에 일정 지분을 차지하는 중서부 백인 남성의 지지는 이러한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 이해하기 힘들다.

맺으며

이야기가 길었다. 올해 미국 대선은 힐러리 vs. 트럼프의 구도로 정리 되는 분위기 이다. 올해는 트럼프 이야기를 듣기 싫어도 계속 들어야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이 시점에서 나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 전문성은 떨어지는 이야기이고, 그저 신문 기사들 요약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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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미국의 정체성과 도널드 트럼프

  1. 흥미로운 주제에요. 그 American identity에 관련된 기사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우리 정치학자들이 알고 있는 건 미국 국민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아요. 관심도 적고, 잘 알지도 못하고. 특별히, 경제 정책처럼 어려운 정책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는 경우가 적을 거에요. 자유무역의 혜택 같은 건 대중 정치에서 논하기엔 쉽지 않은 주제죠. 트럼프가 (1) 그쪽을 이해를 못해서 그러는 지, (2) 아니면 그러한 대중의 신념 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은 도둑! 같은 주장은 그런 면에서 결과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연구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복잡한 측면들을 잘게 쪼개서 하나의 연구 주제로 만들고, 그 중에서도 이론화할 수 있는 한 주제를 깊이 파서, 몇 개의 가설을 세운 다음에 테스트를 하죠. 이걸 뭉쳐서 큰 이야기를 만드는 건, 거의 책 쓰는 수준이기 때문에, 웬만한 학자들도 쉽지 않을 거에요. 언론인들은 쉽게 하는데, 그건 아마도 깊이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논리적인 충돌들, 이론적인 애매함들, 테스트의 신뢰성을 생각하고 표현할 인센티브가 적기 때문이겠죠. 다시, 대중은 그런 부분엔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까요.

  2. 촉망받는 정치학자님께서 커맨트를 달아주시니 부끄럽군요. 저는 잠깐 자리를 피해야 겠습니다…ㅎㅎ

    말씀하신대로 트럼프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에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 연설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데에는 그의 전달력도 한 몫을 하는 것 같구요.

    언론인과 학자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저도 언론 기사들은 학문과 달리 치열한 신뢰성 검증과 논리적인 구조에 대해 덜 고민해도 되는 부분이 있어서 이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언론 기사들이 빠르게 다양한 각도로 시사점을 던저주는 장점이 있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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