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예일 법대까지

며칠전, 한 단편 소설을 리뷰하면서 미국의 교정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링크)한 적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skid row 길거리 인생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교도소에서의 삶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밑바닥 인생의 굴레, 삶의 관성을 거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이지만 픽션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답다. Reginald Betts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n ‘Bastard Of The Regan Era’ A Poet Says His Generation Was ‘Just Lost’ (NPR Fresh Air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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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NPR 해당 인터뷰)

1996년 Reginald Betts는 차량절도를 한다. 16살 소년은 중범죄자 수용소에서 8년을 복역한다. 24세에 출소한 Betts는 몇년 후에 예일대 법대생이 되었다. 그는 자서전과 시집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을 발췌/정리해서 한글로 옮겨봤다. 링크에 스크립트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전체를 직접 들을 것을 추천한다.

질문: 작가님께서 쓰신 책의 제목 ‘레이건 시대의 서자들’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두가지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첫째는 말그대로 아버지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부재만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적인 맥락에서 레이건 시대의 젊은이들은 아비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저 자신 그리고 저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생각해볼 때 저는 우리가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잊혀졌다고 느낍니다.

질문: 작가님은 어떤 점에서 레이건 시대가 버림받은, 그리고 잊혀진 시대라고 규정하시는지요?

레이건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980년에 태어났고 마약과의 전쟁은 제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Mandatory Minimum Sentences 관련 형법은 우리 사회, 특히 중독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언젠가 시카고에서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털복숭이 맘모스 동영상을 봤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트라우마와 비극의 사건 현장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머니 맘모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 시대에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크게 볼때, 우리는 사회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조망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을 둘러싼 사랑과 관심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인생을 가정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저는 책에서, 레이건 시대의 부산물인 우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흑인들의 삶에서 시스템 적인 한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질문: 범죄를 저지를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차량절도를 사전에 계획했나요?

아뇨. 우발적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저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공개석상에서도 여러차례 이야기 해왔지만, 저는 범죄를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차량 절도는 제가 자란 지역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죠. 제가 아는 사람중에도 차량 절도범이 있었습니다. 차를 훔치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들고서 차주인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와 15살 짜리 공범은 그 차를 훔쳤습니다. 그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린 하루였고, 그 결정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질문: 그럼 이제 교도소 이야기를 할까요? 제 생각에 감옥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책과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법전을 공부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었고, 감옥 안에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에서 범죄를 배웁니다. 또 그들은 전과기록 때문에 정상적인 직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네요. 제 생각엔, 죄의 경중에 고려하지 않고 모든 범죄자들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정책이 수많은 죄수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망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저는 감옥에서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구타도 거의 없었고, 망가지지 않았어요. 물론 저는 일년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수감된 첫해를 독방에서 지냈죠.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일년 동안 저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질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작가님께서는 독서를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독방에서 독서를 하면서 또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하셨는데요. 감옥에서의 독서 체험은 감옥 이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랐나요?

감옥에 가기 전에는 저에게 독서는 그저 재미였습니다. 의무감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옥에 갇히고서 독서는 마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길로 향하는 수단이 되었지요. 독서는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는 법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책을 구하셨나요? 그것도 독방에서요.

어떤 점에서 독방에서의 경험은 제가 시인이 되고 지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방에서는 원하는 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되죠. 독방에서는 책을 구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은 책을 구해냅니다. 어떤 사람은 감방안에 책을 두고 가는데, 이게 돌고 돕니다. 보통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책들입니다.

한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날 오후, 나는 옆방에다 ‘누구 책 좀 보내줄수 있어?’ 하고 물었죠. 누군가가 감방 문틈으로 책을 던지더군요. 지금도 누가 그 책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은 Dudley Randall의 시집이었습니다. 바로 그 책이 제 인생을 바꿨지요. 그 책을 접하고 저는 Etheridge Knight, Robert Hayden, Lucille Clifton, Sonia Sanchez 같은 흑인 작가들을 알게되었고 문학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고른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적인 영역이 넓어 질 수 있었죠. 톨킨을 배웠고, 판타지 문학을 접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접하기도 했죠. 제가 책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책이 마법이 되었던 셈이죠. 저는 책을 통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고 삶이 변했습니다.

질문: 교도소 이후에 대해 얘기해 보죠. 감옥에서 출소할 당시 작가님은 24살 이었죠? 8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에 어디로 갔나요?

네,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다른 출소자들과는 달리 저는 갈 곳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차를 줬기 때문에 차도 있었죠. 어머니는 제게 바위 같은 존재였어요.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의 도움이 컸지요. 어머니는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의 책을 보면 신에게 올리는 감사의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님이 말하는 신은 누구인가요? 자서전에 따르면 작가님은 감옥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신앙을 가지지는 않기로 했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특정 종교의 신을 지칭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가족은 침례교이고, 저는 교회와 조금 미묘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일한 하나의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살아남고, 이후에 제가 이룬 모든 일들이 스스로 해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감옥에서 살아남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일대 법대에 진학할 자격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약에 제가 감옥에서 한두가지 결정만 다르게 했더라도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신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질문: 어머니께서는 작가님을 잘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죠. 작가님께서는 아드님을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어떻게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들과 피할 수 없는 종류의 대화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이야기죠. 제 아내는 상담치료사이고,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죠. 저는 시인이자, 작가이며, 예일대 법대생입니다. 우리는 아들과 대학생이 의미하는 것, 석사학위가 의미하는 것, 고등교육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은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피할 수 없는 대화가 있죠. 아들이 5살일 때 일입니다. 아들의 유치원 친구가 너희 아버지는 차를 훔쳐서 감옥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상처받고 울기 시작했죠. 선생님이 저를 불렀고 저는 제가 아이에게 설명하겠다고 했죠. 저는 5살 아이에게 내가 차를 훔쳤으며 그때문에 감옥에 가야만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5살 짜리에게는 나쁜 사람이 가는 곳이 감옥입니다. 여러번 설명을 해야했죠.

제가 아들을 보호했던 방식은 불편한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안에는 수많은 흑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 사회가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면 아이에게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매일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것을 보죠. 또 제가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매일 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그를 통해서 배우고, 그 배움이 아이를 사회에서 보호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잘 보호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제가 감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셨죠. 책에 대한 애정과 감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심을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가르친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과 관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맘모스는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 있었죠. 지금 저에게 공동체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아이들이 감옥과 같은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지요.

저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다수 평범한 백인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순간순간 맞닥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에 맞서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요. 저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아이들이 좀더 나은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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