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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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는데, 김영하 팟케스트를 통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일상의 어떤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섬세함은 나에게 충분한 호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마지막에 헤더가 로버트의 방에 있다가 바깥의 학생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지. 남자친구인 콜린과 처음으로 관계를 갖는 장면이라던지.

침대 옆에 누워서 딴짓을 하던 아내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 아내의 감상은 나와 사뭇 다르다. 소설이 붙들고 있는 기억의 한 자락이 아내의 무엇인가를 건드린 듯하다. 그러한 경험은 소설을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든다.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가 남자라니. 아내는 잘 믿지 못했다.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하여 글을 썼으니 필시 경험이 창작 동인이 되었을 텐데.

<대성당>을 읽을 때. 레이먼드 카버가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으나, 카버의 이야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

차이는 아마 시점이 아닐까 싶다. 포터의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그 차분한 절제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기억의 쪼가리가 읽는 사람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건조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소설의 이야기와 내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책을 사서 표제작 외에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내 기억과도 맞춰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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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귀족체험

이제 마지막 날이다. 아직 하루의 로드트립이 남았다. 아침은 호텔에서 든든히 먹기로 했다. 부시시한 얼굴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1층으로 향했다. 서버는 쿠바계 미국인. 생긴 것이 체게바라 비슷하다. 체게바라가 수염을 깍고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다음, 서버 유니폼을 입은 것 같다. ‘체게바라’ 서버는 말수가 적었지만 필요한 것을 제때에 챙겨주는 센스가 있었다. 그의 빠릿빠릿함에 나는 만족했다.

둘러보니 손님은 대부분 백인이다. 반면에 종업원은 히스패닉과 흑인. 호텔이나 식당에 오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서비스업의 본질은 유럽의 귀족 체험이 아닐까. (블로거 격암님의 포스트에 빚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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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드 ‘다운튼 애비’ 첫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견습 과정인 한 하인에게 전임자가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아침에 주인에게 신문을 가져다 줄때, 주인 어른은 새로나온 신문지 느낌을 좋아하니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리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영국 귀족 한 가문을 챙기기 위해서 저택에는 수십명의 하인들이 같이 산다. 어떤 하인들은 주방을 전담하고, 어떤 하인들은 정원을 가꾸며, 어떤 하인들은 청소를 한다. 그리고 집사가 이들을 총괄한다.

우리가 호텔에서 받는 서비스의 원형은 귀족 저택의 삶이다. 귀족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부가 필요하다. 현대인은 그런 호사를 매일 누리지는 못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고서 잠깐 경험해 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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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그리고 콜롬버스

돌아가는 길은 루트를 다르게 잡아봤다. Dothan을 거쳐 Columbus를 지나는 일정이다. 아이가 Columbus라는 지명을 반가워 한다. 학교에서 Columbus day의 유래를 배우면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대해 들었다고. 역사가 짧은 미국은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그 날이 일종의 개천절인 셈이다. 내게는 별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지만, 노는 날이니 어쨌든 환영이다. 그 콜럼버스 덕분에 우리가 데스틴을 다녀올 수 있지 않았던가.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돌아가는 길이다. 가는 동안은 설래는 마음이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반대로 집에 가는 길에는 그간 피로도 쌓인데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종종 마음이 무겁다.

탁트인 평야와 지평선을 보면서 잠깐 좋아했다가 금방 지루해졌다. 뒷자리에 앉은 딸아이는 하루 더 머물었으면 좋겠다고 칭얼대다가 잠이 든다.

아틀란타에 도착할 즈음에는 어둑어둑해졌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내리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오니 침대가 참 반갑다.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목화와 야자수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이라크 지역의 역학관계와 IS

예전에 세상 모든 국가/단체에게 어그로를 끄는 IS가 어떻게 유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IS의 적대 세력은 다음과 같다.

시리아 아사드 정부, 시리아 반군, 시리아 쿠르드, 터키, 미국/EU, 이스라엘, 이라크 정부, 이라크 쿠르드, 이라크 시아, 이란, 러시아, 알카에다… 그야말로 모두의 적이다. (관련 포스트)

나의 작은 의문은 산타크로체님의 포스팅을 보고 정리가 되었다.

완전한 권력의 공백 보다는 그나마 나은 IS 세력. 석유와 그에 얽힌 이해관계. 난민문제. 등등등 아~ 복잡다.

산타크로체님의 포스트: 시리아 난민은 많은데 이라크 난민은 왜 안보일까? ISIS가 건재한 이유, 러시아 개입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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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볼만한 TED 강의도 공유한다. 5분짜리라 부담없다.

현지인에게는 (당장 내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보다는 ISIS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부조직 서비스 (전력, 치안, 쓰레기/하수 처리 등등…)가 낫다.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석양의 결혼식

Beignet

셋째날 점심은 seafood로 결정했다. 휴양지에서 먹는 외식은 비싸고 맛이 없기가 쉽지만 바닷가에서 seafood를 포기하자니 왠지 아쉬웠다. 가기로 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날 것 같은 Stinky’s라는 곳이었다.

다행히 냄새가 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서빙을 하는 금발의 여자가 피로에 찌들어 보였다. crab cake, grilled grouper, fried shrimp를 주문하는 동안 한번도 웃음을 짓지 않는다. 무표정한 그녀가 딱 한번 웃음을 지었는데, 우리가 beignet을 주문할 때였다. 그녀의 웃음은 ‘그래 촌놈들. 이제야 제대로 메뉴를 골랐군.’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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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beignet은 New Orleans 음식인데, 쉽게 말하면 밀가루 덩어리를 도너츠 처럼 튀기고서 파우더 슈거를 입힌 디져트이다. 프랑스 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New Orleans가 프랑스 이주민과 관련이 깊은 도시라서 그렇다. 내가 느끼기에는 뭐든지 튀기고 달게 만들어서 몸에 나쁘게 하는 미국 스타일 음식일 뿐이었다. 뭐 경험삼아 먹어볼 만은 하다.

석양의 결혼식

숙소로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다. 오늘 이 호텔에서 7개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호텔이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있는 것은 백사장 때문이다.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서 결혼식이 진행된다. 백사장에서 치루는 석양의 결혼식이라. 로맨틱하게 여겨질 법하긴 하다.

옆에서 힐끔 본 바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결혼식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모래 덩어리가 되기 쉽상이다. 하객들의 의자에도 모래가 가득하다. 그래서 인가 보다. 서약을 마친 후에 사진 몇장 찍고서 모두들 성급히 자리를 뜬다. 사진으로는 몹시 낭만적이다. 나중에 신랑신부가 앨범을 들춰보면 석양이 기억에 남을까 아니면 어설픔이 기억에 남을까.


  
(직찍)

아이폰 지문인증

해가 지고서 숙소로 들어왔다. 사흘째이니 그만큼 추억도 쌓였다. 아내와 나는 핸드폰에 모인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딴일을 하는 사이에 딸아이가 나의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삐죽거린다.

아이의 불만은 아이폰의 지문인식 잠금기능이었다. “불공평해. 엄마 핸드폰은 잠금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데, 아빠 핸드폰은 잠겨 있어. 그러면 엄마는 아빠 핸드폰을 볼 수 없고 아빠만 엄마 핸드폰을 쓸 수 있잖아.”

전형적인 딸내미 화법이다. 자기가 아빠 핸드폰을 쓸 수 없다는 불만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아이는 말을 트기 시작한 네다섯 살 때도 돌려 말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내가 초콜렛을 먹는데,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잊었다고 하자. 아이는 살며시 옆에 와서 귀에다가 입을 대고서 속삭인다. “나도 초콜렛 좋아하는데.”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특히 여자 사람 말의 미묘한 뉘앙스는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딸아이가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딸이 구사하는 여자 나라 언어를 독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여자나라 말 입문과정이라고 할까.

고민 끝에 아이도 아이폰 잠금해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설정 메뉴로 가서 지문 추가 등록 버튼을 눌렀다. 아이가 핸드폰에 엄지 손가락을 수차례 붙였다가 띠었다가를 반복했다.

‘Registered.’ 아이가 아이폰을 접수하는 순간이다. 딸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딸램은 테스트까지 해본다. 아이폰을 옆에 두었다가 자동으로 잠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서 엄지를 척 올려 놓는다. 마지막으로 자기 지문이 통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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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목화와 야자수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말라리아와의 전투 그리고 승리의 소식

고등학교 때, <닥터스>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하버드 의대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었다. 그 책 프롤로그의 한 부분이다.

간단한 숫자 두개- ’26’이었다. 방안은 호기심으로 술렁거렸다. 잠시 그대로 있던 홈스는 숨을 가다듬으며 학생들을 주시했다. ‘여러분, 이 숫자를 기억해 두십시오. 지구상에는 수천 가지의 질병이 있지만, 의학적으로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스물여섯 개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가 짐작일 뿐입니다.’

지금은 숫자가 몇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질병과 벌인 전쟁에서 인류는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이번주 이코노미스지 메인 기사를 공유한다. 기사 (Eradicating disease, 10월 10일자) 에 따르면, 이 치열한 전투에서 일부 승전보가 들리고 있다고. 그중에 하나는 말라리아고, 하나는 홍역이다. (이 전투는 주로 아프리카에 있는 몹시 가난한 나라들에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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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이코노미스트 해당 기사)

말라리아는 지난 10년간 사망자 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2000년에 85만명에서 2015년은 연간 45만명으로 줄었다. 홍역의 경우는 75%가 줄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사실 말라리아는 거의 극복했다고 여겨졌으나 돌아온 전례가 있다. 그당시 말라리아와 싸우던 무기는 단순했다. DDT를 통한 모기 박멸과 클로리퀸이라는 치료제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울린 승전보 때문에 연구지원이 축소 되었고, 모기는 DDT에 내성을 얻었다. 그리고 치료제에까지 내성이 생기자 말라리아가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 모기박멸의 수단도 다양해졌고, 신약개발에도 연구비가 꾸준히 지원되고 있으며, 유전자 기술을 통해 말라리아에 내성을 가진 모기 보급(?)까지 이뤄지고 있다.

아! 말라리아 치료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21세기의 극적인 말라리아 퇴치에는 아르테미시닌이 큰 역할을 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개발한 약이다. 투유유 교수는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힌트를 얻어 개똥쑥에서 추출한 소재로 약을 개발했다고 한다. 개똥쑥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약초인데, 학질과 허열에 좋다고 써있다고. 학질이 바로 말라리아이다. 투유유 교수는 박사학위도 없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 연구자라고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관련 기사

  1. 인류의 말라리아 극복 상황에 대한 기사: Breaking the fever (이코노미스트 10월 10일자)
  2. 투유유를 비롯한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기사: Wisdom, ancient and modern (이코노미스트 10월 7일자)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해변

오전에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해수욕 이야기 이다. 햇살은 피부를 파고 들어 찌르는 듯 했다. 플로리다는 sunshine state가 아니던가. 더위에 약한 나는 파라솔 밑에서 숨어있어야 했다. 돗자리에 올라온 모래의 감각을 익숙하게 만드는데에는 적지 않는 무뎌짐이 필요했다. 무뎌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해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적합하지 않은 사치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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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을 많이 했는데, 사실 나쁘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딸아이가 파도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가 파도를 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해변에 앉아있다가 파도가 올때마다 깔깔 웃으며 파도에 몸을 맡긴다.

나 역시 조금씩 즐기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면 불편한 감각이 사라진다. 역시 몸을 담구어야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얀 모래사장과 바다를 보고서 불평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직찍)

Gator beach

플로리다 하면 주로 해변이 연상된다. 영화나 미드에 자주 나오는 마이애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플로리다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대부분 늪이다. 플로리다의 반은 늪이라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늪은 악어의 공간이다. 현대인이 설마 야생악어와 마주칠 일이야 있을까 싶지만 미국처럼 땅이 넓다보면 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플로리다서만 연평균 10회 가량의 악어 사고가 있다고 한다.

캡처

(Source: Statewide Nuisance Alligator Program)

야생에서 악어를 만나는 일을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데스틴에서는 유쾌하게 악어와 만나는 방법도 있다. 악어를 사육하는 곳에 가면 된다. 우리는 오후에 악어 농장을 찾아갔다.


(직찍)

보다시피 성인 악어는 아니고 아이 악어이다. 이곳에서는 악어에게 먹이도 줄 수 있고, 아기 악어를 들고서 사진도 찍을 수도 있다. 원한다면 만져볼 수도 있다. 나는 겁이 많은 딸아이가 무서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본인이 직접(!) 악어와 사진을 찍기를 청했다. 나중에는 새끼 악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진정으로 즐거워 하더라.

    
(직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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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미국식 네거티브 선거

이번달 초 민주당 후보 1차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샌더스가 힐러리의 이메일 논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I know it may not be good politics, but the American people are sick and tired of hearing about your damn emails.”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각오를 하고 말하건대, 미국인들은 그 놈의 이메일 얘기는 이제 지겨워한다.)

당시 나는 토론을 귀로 흘려 들으면서 딴 짓을 하고 있었는데 (페북, 트위터, 블로그 등등의 잉여질…) 깜짝 놀라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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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CNN)

멋있는 것 인정한다.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겠다는 뚝심이 샌더스 답다. 그러나 본인도 말했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쫓아가는 입장에서는 네거티브 전략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게다가 샌더스는 지지율 상승이 정체되는 추세다. 물론 세상일이 계산 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 (바이든이 돌연 출마 선언을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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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uffpost Pollster)

혹자는 (네거티브를 안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러워하더라.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런 일은 미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12년 미국대선. 당시 나는 미국 현지에서 롬니와 오바마 선거전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선거는 막판으로 갈 수록 치열해 졌다. 그런데 막판에 롬니에게 터진 치명적인 스캔들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47% 발언이다.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같은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이런 호재를 놓칠 이유가 있을까. 티비에서는 네거티브 광고가 지겹도록 반복되었다. 47% 동영상이 계속 나왔고, 롬니 측에서는 질세라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다’라는 광고를 했다. 상당히 원색적이다. 물론 이런 광고를 선거 캠프에서 직접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각 후보 지지 단체의 이름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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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inal presidential election results: source wikipedia)

단 특이한 점이 있다. 네거티브 광고는 주로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방영된다. 당시 내가 살았던 노스캐롤라이나*는 스윙스테이트로 들어갔기에 네거티브 광고가 주구장창 나왔던 것이다. 네거티브 전략은 확고한 지지층에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애매하게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씩 효과를 보이는 확실한 전략이다.

승리가 확실한 지역의 광고는 다르다. 선거기간 중에 뉴저지를 갈일이 있었는데 (뉴저지는 민주당 텃밭이다.), 대부분의 광고는 점잖았다. 차분하게 정책을 선전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굳이 네거티브를 하면서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의 특이한 대통령 선거 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대선은 알다시피 간접선거이다. 50개 주에서 각 주의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다. 주마다 (2개주를 제외하고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인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압승이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 이를테면 플로리다는 27명의 선거인단이 있는데, 10:17로 이기던지 1:26으로 이기던지 관계 없이 이기는 당이 27표를 획득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도 여러모로 볼거리는 풍성하다. 선거권이 없는 나는 그저 남의 집안 싸움 구경하는 기분이다. 아참, 싸움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기도 하다.

*주: 당시 노스캐롤라이나는 크게 봐서 경합주에 들어 갔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를 포기하고 오하이오, 버지니아, 플로리다에 집중했다. 결론은 알다시피 압승 이었다.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몽고메리와 목화밭

2시간 반 정도 달렸나. 이제 제법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몽고메리에 온 것이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몽고메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Rosa Park가 떠오른다.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이다. 마틴 루터킹도 이곳에서 목회를 했었다지. 남부는 많은 지명이 흑인 민권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사는 조지아도 그러하고 알라바마도 흑인의 인구 비중이 많다. 알라바마와 조지아인구 30%는 흑인이다.

(직찍. 길위에 펼쳐진 알라바마의 목화밭)

고속도로에서 85번 국도로 접어 들자 간간히 목화밭이 보인다. 아직도 미국에서 목화를 키우는 구나. 10월 초까지는 목화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남부는 예로 부터 목화 농사의 중심지였다. 햇살이 강하고 땅이 비옥해서 목화가 좋아하는 환경이다. 나는 목화밭을 보면 일렬로 서서 목화를 따는 노예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헐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준 이미지일 것이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노예가 아니고, 죄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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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지금은 당연히 목화를 손으로 재배하지 않는다. 경비행기로 농약을 주고 (돌아 오는 길에는 경비행기가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는 것도 보았다.), 트랙터로 추수하고서, 방직기로 솜을 뽑아낸다. 모든 과정은 기계화되어 있고, 규모의 경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윤을 남기기 힘들다. 여전히 미국은 목화를 생산하고 있지만, 인건비 때문인지, 지금에 와서 목화의 가장 큰 생산국가는 중국과 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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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재인용)

남부의 문화

남부는 남부만의 색이 있다. 남부는 초기 이민자들의 문화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19세기 남북전쟁 이전까지 남부 부자들은 북부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르며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했다. 청교도, 도덕주의, 가족은 남부의 중심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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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media)

남부 사람들의 시각은 소설 (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잘 드러나 있다. 한 장면만 예를 들어보자. 스칼렛의 두번째 남편은 프랭크라는 제제소 주인이다. 스칼렛이 흑인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데, 프랭크는 도덕적인 응징으로 KKK단과 함께 복수를 한다. 마거렛 미첼이 가진 가치관을 평범한, 그리고 선량한(?) 남부 백인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당시 그들은 KKK를 테러집단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문화적 순결함을 지키는 모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시대는 변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남부는 여전히 도덕적인 가치가 강조되는 곳이다. 때로 도덕적인 순결의식은 인종차별의 모습, 또는 강한 보수성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남부에서 도덕과 보수 성향이 분리된 가치가 아닌 것이다.

Florida_(Chile)

(image source: wikipedia)

플로리다, 히스패닉, 그리고 쿠바계 미국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플로리다에 들어왔다. ‘Welcome to Florida’ 표지판 옆에는 야자수가 심겨져 있다. 제일 먼저 풍경의 변화를 느낀다. 목화밭이 야자수로 바뀌고, 활엽수림이 늪지대로 변한다.

플로리다와 알라바마의 차이는 식생만이 아니다. 문화도 다르다. 우선 건물이 그러하다. 붉은색 지붕과 분홍색 벽은 스페인의 영향 때문이다. 플로리다는 원래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발견’해서 정착했던 땅이기도 하다.

인종 구성도 다르다. 조지아와 알라바마가 흑인들의 주라면 이곳은 히스패닉의 주다. 히스패닉 액센트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조지아에서 흑인 액센트 (Ebonics)를 듣는 것과 비슷한 빈도이다.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조지아에서 히스패닉은 9%인 반면에 플로리다는 25%를 차지한다.

젭 부시와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에 기반을 둔 정치인이 히스패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젭 부시의 부인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다. 공화당의 젊은 신성 마르코 루비오는 쿠바계 미국인이다. 여담이지만, (선거 시즌이니까 덧붙이자면) 마르코 루비오는 젭 부시 똘마니 정도로 여겨졌는데, 요즈음 젭 부시의 인기를 넘어서고 있다. 운이 따라준다면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플로리다는 쿠바계 미국인이 가득하다. (미국내 히스패닉의 대다수는 멕시코계인 것과 달리.) 쿠바계를 생각하면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갈색 머리, 넓은 이마, 넙대대한 얼굴이 떠오른다. 2011년 겨울, 플로리다 팜 비치에 갔을 적에 식당의 서버의 얼굴이 전형적인 쿠바계의 얼굴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얼굴을 피델 카스트로가, 그리고 마르코 루비오가 가지고 있다.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왠지 모르게 쿠바인 얼굴을 하고 있다. 쿠바에 머무르면서 얼굴도 쿠바 사람처럼 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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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American: source wikipedia)

Fidel_Castro      download

(카스트로(좌), 체게바라(우): source wikipedia)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로드트립

바다에 가기로 했다. 사실 바다는 내가 즐기는 휴양지가 아니다. 햇볕에 살이 데일까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는 일도, 속옷과 속살 사이에 모래와 소금물이 엉겨 붙어 있는 상황을 애써 참아내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불편함들만 참을 수 있다면 바다 만큼 살아있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 없다. 무엇보다도 갓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에너지를 발산하기에는 바다가 제격이다. 아이가 컸으니, 해변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 사치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하기도 했다.

데스틴은 내가 사는 아틀란타에서 350 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미터로 환산하면 550 킬로미터 정도이고 서울/부산 거리보다 조금 멀다. 다만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해 교통체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힘겨운 거리는 아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 밀가루 같이 부서지는 고운 모래와 백사장을 머리 속에 그리며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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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6시간이다. 3박 4일 일정에 오며 가며 6시간 씩 걸린다면 로드 트립도 여행의 일부로 봐야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땅의 변화를 느끼며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여행하면서 나누는 잡담도 즐거움의 한부분이다. 여섯 시간을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여행의 반은 고난길이 되지 않겠는가.

일부 미국인들에게 로드 트립은 그 자체로 취미가 되기도 한다. 같은 부서에 있는 닉은 바이커인데, 휴가는 할리를 타고서 길 위에서 지낸다. 모터사이클 동호회에서 사람들을 모아 몇날 며칠을 달리는 것이다. 닉에 따르면 바이크 위에서는 바람과 자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유리로 외기를 차단하고 경험을 제한하는 자동차 여행과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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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ixabay)

하지만 나는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다. 평생 모터사이클 여행을 할 마음이 생길리는 없으리라. 고요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일행과 장시간 수다를 떠는 것이면 충분하다. 수다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1평이 조금 넘는 좁은 공간에서 6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차에서 내릴 즈음에는 일종의 유대감이 생긴다.

고장난 LP판

30분을 달렸다. 이제 아틀란타를 벗어났고 I-85 고속도로 위에 있다. 바깥 풍경이 단조롭다고 느낄 즈음 뒷자석을 보니, 아내와 아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다시 창밖을 보았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흐리다. 남부의 햇살은 지나치게 강해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운전 중에 피부가 상하기 쉽다. 나도 몇년을 무신경하게 다니다 보니 팔에 기미가 생겼다. 미국 사람들에게 피부암이 흔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 났다. 흥이 났는지 노래를 흥얼거린다. 최근에 학교에서 배운 ‘Under the Sea’이다. 바다여행에 어울리는 노래이다. 몇번인가 반복한다. 조금 있다가 지겨워졌는지 이번에는 자작곡을 흥얼거린다. 자작곡이래야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단순한 멜로디에 요즘에 배운 단어를 후크로 걸어 계속 반복한다. ‘the~ northern~ hemisphere~ the northern hemisphere.~ the northern~ northern~ northern~ hemisphere~.’ 고장난 LP판이 따로 없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언어를 습득하는데, 그 방법이 과학적이다. 단어를 익히는 데에는 반복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기억을 강화하는 데에 멜로디가 함께 한다면 효과는 배가 된다.

딸아이가 한국어를 깨치던 만 두살 쯤. 그때도 아이는 단어를 반복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읊조리고는 했다. 그때는 4음절 단어가 어려웠던가 보다. 노래 가사는 ‘할아버지’나 ‘호랑나비’의 무한 반복이었다.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딸과 하루를 마무리하던 이야기

간만에 딸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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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media)

딸램과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내가 물었다. 오늘은 좋은일, 감사한 일이 뭐야?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하나 정도는 있겠지, 하루에 하나도 감사할 일이 없을까. 음~ 헤일리랑 재미있게 놀았던게 좋았어.

아빠는 뭐가 좋았어? 글쎄, 오늘 저녁을 가족끼리 맛있게 먹어서 좋았지. 그리고, 또? 음~ 그리고는 아빠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아빠는 오늘 안 좋았던 일은 없어? 안좋았던 일은 없는데. 그러면 하기싫었던 일은 없어? 글쎄… 예를 들자면 회사일이라던가…

후우. 덥지않아? 선풍기 좀 틀어줄까? 아니 안더운데.

아빠는 회사일이 재미있어? 아~ 뭐 항상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 열심히 일하면 사람들이 칭찬해 줄 때도 있고… 보람 있을 때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아이가 고개를 떨군다. 이어서 쌕쌕 소리가 들린다.

다행이다. 그런데 얘는 어떻게 내 속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