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러지에 대한 두가지 이론

Interesting article about pollen allergies

기사 링크: Why Are Pollen Allergies So Com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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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앨러지 때문에 심하게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앨러지 관련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앨러지가 왜 생기는 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앨러지를 일으키는 물질은 유해하지 않다. 다만 우리몸의 면역체계가 유해하다고 판단할 따름이다.

왜 그런가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이론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 몸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을 때, 앨러지의 원인이 되는 물질에 노출이 되어 그렇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현대인이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균과 pollen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설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화창한 봄날에 앨러지 때문에 나가 돌아다지지 못하는 건 곤욕스러운 일이다.

한국 방문중에 느낀 점들

0. 4년 만에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이 대학 졸업반이 되는 시간이고, 군대를 두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병장 만기 제대를 하고서 사회에 나왔을 때, 몹시 어색했었다. 늦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세상이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 사람이 눈앞에 흔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늦잠을 자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6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었다.

시차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다. 정신이 없다. 약간 멍한 상태로 가족/친구들을 만난다. 어떤 부분은 생소하고, 어떤 부분은 ‘아 그랬었지’ 싶다.

외국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전혀 모르는 곳에 가면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한다. 한국은 익숙한 곳이라, 생경한 느낌이 더 크다.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몇년 더 외국에 체류하면 한국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미국에 온전히 스며든 것도 아니니 약간은 서글프다.

두 주 정도 있으면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짧게 머물렀기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 좀더 있었다면 나는 다시 한국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느낀 이질감이 익숙함으로 변할 것이고, 나는 미묘한 차이를 더이상 느끼지 못할 것이다.

1. 공항에서 들어오면서

중국 자본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처음 본 광고판은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交通銀行. 과거 삼성이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려고 할 때, 제일 먼저 각국의 주요 공항 광고판을 장악하는 일부터 했다. 당시 한국인이 외국에서 애니콜 광고판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한 감정을 중국 사람들도 느낄런지 모른다.

2. 유행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하던 2002년. 김정은은 비씨카드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를 외쳤다. 그리고 그시절 우리는 ‘부자 되세요’를 덕담으로 주고 받았다. 모든 유행어를 사회현상이라고 부르고 분석하려 드는 것은 때로 과도하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는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공감을 주는 단어인듯 하다.

3. 자극이 넘쳐나는 한국

무엇보다 한국 여기저기 넘쳐나는 자극이 인상 깊었다.

3-1. 간판

우선 간판. 한국 간판은 자극적이다. 간판이 건물과 어우러지지 않을 뿐더러 간판의 모든 글자는 강조되어 있다. 문서로 따지면 모든 글자에 견고딕체, 글자크기 40 pt, 굵은 글씨, 붉은 강조색, 밑줄치기를 사용한 느낌이다. 모든 글자를 강조를 하다 보니 아무 것도 강조되지 않는다. 이것은 옆가게 간판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원색적으로 튀려고 하니 서로 묻힌다. 간판들이 서로 돌출되어 아우성을 지르는 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3-2. 지하철 광고

어디를 봐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다음 열차를 기다릴 때도, 열차안에서 고개를 잠깐 돌려도,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도 닫힐 때도 모두 광고이다. 소리부터 시선까지 광고를 피할 방법이 없다. 버스 안에서도 광고가 가득하고, 버스 밖에서도, 안내 방송을 들을 때도, 은행에서 순번을 기다릴 때도 광고는 피할 수 없다.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4년 사이에 일상 생활에서 광고 노출은 과하게 커졌다. 공해로 봐도 무방하다.

3-3. 뉴스

뉴스에 극단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뉴스를 틀어 보았다. 몇분 사이에 뉴스에서 파란, 좌초, 파국, 충격 같은 단어를 수차례 들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냥 틀어놓고 배경음으로 들으면서도) 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역시도 정보가 아니라 공해다. TV조선이나 채널a는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뉴스는 계속 된다. 그곳에는 한줄 짜리 단신이 나온다. ‘연봉킹’, ‘돌연’ 등등의 강조의 표현이 많아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간판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뉴스가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정작 보는 사람은 무관심해진다. 그럴 수록 컨텐츠 생산자는 더욱 자극적인 문구를 만든다.

3-4. 시위 구호

예전에 ‘결사항전’이라는 단어를 보고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결사는 목숨을 걸고라는 뜻이다, 살면서 목숨을 걸 일이 몇개나 될 것인가. 물론 사안이 중요하기에 강조를 하는 것을 알겠지만, 너무 흔하게 듣다보니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 이제 진정 강조를 하려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판인데, 나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잘 모르겠다.

3-5. 음식

한국사람은 원래부터 자극적인 것을 좋아했던 걸까. 맵고 짠 음식을 즐긴다. 직설적이고, 거침없으며, 저돌적이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그 안에서는 자극적인 한방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3-6. 내가 변한 것일까, 한국이 변한 것일까

해외에서 사는 것은 외딴 섬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열심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외국인들은 다른 사람에 별 관심이 없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보면 속세를 떠나 산에서 도를 닦다가 도시로 내려온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언어에 좀더 민감해져서 일 수도 있다. 예전보다 단어 하나하나가 더 신경이 쓰인다. 영어 환경에서 한국어 환경으로 바뀌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Gangnam,_Seoul,_Korea

4. 긍정적인 점

회식 문화가 달라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의하면, 이제는 이차/삼차로 가는 회식은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떤이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회식 자리를 한달에 한번 이상 갖기 힘들다고 했고, 어떤이는 경비 절감때문에 회식비가 많이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회사/부서/상관에 따라 편차가 있다.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변한 듯 하다.

이러한 변화는 주류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양주 시장은 예전만 못하다.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마시는 맥주나 도수가 약한 소주를 찾는다. 크래프트 비어도 열풍이고 맥주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나이든 어른신들은 건강에 좋다며 막걸리, 동동주를 찾는다.

남자의 육아휴직 사용도 꽤 활성화 되었다. 물론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주변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의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개인/가족을 더 자주 말하고, 조직은 예전보다 끈끈하지 않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들은 내가 한국을 떠난 4~5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안에서 느끼기에는 변화가 느리게 보이지만, 밖에서 보기에 5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로는 크다. 한국인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또 새것에 대한 저항이 작다.

한국인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빨리 개선된다. 그리고 5년 10년 후에는 한국사람들은 또다른 문제를 들고서 한국사람들은 이래서 안돼, 변해야돼, 외국을 봐봐. 라고 말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한국인은 놀랍도록 유능한 사람들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정도로 빠르게 개선하고, 바꾸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점에서 나같이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몇년만 지나도 한국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는 내가 한국을 떠난 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한국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내가 이전의 경험에 근거해서 ‘한국은 이래서 문제다’라고 말한다면 그 문제는 이미 사라진 다음 일지 모른다.

5. 그외 사소한 것들

5-1. 대중교통

간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니 사람사는 것 같았다. 미국,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망이 허술하다. 자동차를 항시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버스/지하철/택시를 이용하다보니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서울만의 매력이다.

5-2. 물리적인 접촉과 우측통행

한국은 서로 몸을 부딪히는 게 자연스럽다. 미국 사람들은 서로 간에 물리적인 거리를 둔다. 몸이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알아서 서로 비켜준다. 좁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곡예하듯 어깨만 살짝 돌려 피해가는데 반해, 미국 사람들은 넓은 곳에서도 상대가 지나가도록 멈추어 기다려 준다. 굳이 지나가야하는 상황이 되면 ‘Excuse me’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 얘네들은 우측통행이 생활화되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른쪽으로 몸을 피한다. 나도 알게 모르게 습관이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룰이 없어서 어색했다.

5-3. 비보호 좌회전

미국에서는 비보호 표지판이 없어도 대부분의 도로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게 어색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오니까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는게 어색했다.

5-4.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 이전

2호선을 탈때면 삼성역에 내려서 반디앤루니스 코엑스를 들리곤 했다. 책을 살 일이 없어도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를 주욱 둘러봤었다. 이번에 들렸을 때, 코엑스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반디앤루니스가 없었고, 대신 영풍문고가 들어와 있었다. 추억의 장소를 하나 잃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전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보진 못했다.

[reblog] 한국인의 스팸 사랑에 관한 NPR 기사를 보고

내가 이렇다.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부대찌개를 먹으리라 생각해두고서, 막상 한국에서는 밥만 열심히 먹다가 돌아왔다. 이제 반찬이 없을 때, 스팸을 먹으면서 부대찌개를 또 생각하겠지.

마눌님아 빨리 돌아와 다오~

(지난달에 한국 방문 전에 썼던 스팸 관련 포스팅을 발견하구서…)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최근 스팸을 먹을 일이 많았다. 혼자 밥먹을 상황에서 스팸만큼 요리하기 편한 음식이 없더라.

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의 스팸사랑이 신기한가부다. 작년에 BBC와 WSJ에서 한국사람의 스팸사랑을 뉴스로 다루더니 (BBC 기사 링크, WSJ 기사 링크) 어제는 NPR에서 다뤄주신다. 기사에 의하면 한국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스팸을 많이 사먹는 나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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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NPR)

In Korea, Spam Isn’t Junk Meat – It’s A Treat.

뭐, 먹는 거 가지고 저급하네, 세련되네 하는 건 무지의 소치이다. (제목과 달리 기사는 중립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치만 spam이라는 단어 자체가 spam mail의 어원이 될 정도로 싸구려 음식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단어이다. Luxury까지는 아니어도 아직도 우리는 스팸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것도 사실이고.

어찌 됐든, 기사보니까 갑자기 한국가서 부대찌개 먹고 싶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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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유치원 잡담 (한국식과 미국식??)

아이가 한국에 세달 가량 들어가 있다. 세달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한국말도 가르킬 겸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세달 등록을 받는 데가 거의 없었는데, 찾아보니 집앞에 한 곳 있었다.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좀 비쌌지만 아이를 집에 두기만 하면 심심해 할테다.

한국식과 미국식??

한달 가량 유치원에 다녔다. 아이가 몹시 즐거워 한다. 자리가 있는 반이 한살 어린 6세 반이었다. 한살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왕언니 노릇하는 게 좋은가 보다.

언제나처럼 수다스러운 아이는 매일 유치원 소식을 전해준다. 어제도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이 재미있어? 미국하고 뭐가 달라?” “뭐~ 재미있지. 근데 가끔 선생님이 무서울 때가 있어.” “어떻게 무서운데?” “선생님이 화나면 진짜 무서워~ 엄마보다 무섭다니까. 무서운 표정을 짓고서 말을 지~인~짜 빨리해.” “그럼 (빠른 톤을 흉내내면서) 이리 앉으세요. 그렇게 하면 안돼요. 뭐 이런식으로?” “그것 보다 더더 빨리.” “(눈을 부릅뜨고서 좀더 빠르게) 빨리 앉아요. 뭐 이렇게?” “조금 비슷하네.”

“너두 가끔 혼나?” “아니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말을 잘 안듣더라구.” “그치만, 미국도 선생님들이 혼낼 때는 무섭잖아. Ms. Libby도 ‘Don’t do that. Sit down here.’ 뭐… 이렇게 말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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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아이가 잠이 들고, 아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아이랑 얘기 하는 것 들었지?” “응” “내가 보기엔 한국 애들이 좀더 버릇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 어버이날 학부모 참관수업 갔을때 보니까 좋게 말해서는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더라구.” “그것도 애들 나름이지. 미국도 다루기 힘든 애들은 힘들잖아.” “그렇긴 하지만… 한국 6세반이랑 동급인 pre-K* 다니는 애들은 순진했던 것 같은데. ” “그렇긴 하네.” “미국 교육이 좀더 자립심을 키우는 방식이고, 미국 부모들이 더 엄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그건 case by case지. 으이구, 우리 자식이나 잘 키우지 별 걱정이야.”

그렇긴 하네. 별 걱정이다.

(*미국은 만 5세는 kindergarten, 만 4세는 pre-K을 다닌다. kindergarten 부터 의무교육 과정이다.)

된장 발음 영어

딸아이는 발음에 좀 민감한 편이다. 가끔 나오는 내 된장 발음이 거슬리는 지 교정해주기도 한다. 좀더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 영어 발음에 참견을 할 때도 있었다. 발음 교정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가족 말고는 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가르쳤다. 다행히 지금은 남의 발음을 교정 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 유치원이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한국 선생님도 영어를 쓴다. (원어민 선생님도 따로 있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한국 선생님의 영어 발음이 거슬렸나보다. 슬쩍 선생님에게 가서 자기한테는 영어를 안써도 된다고 했단다. 선생님 입장에서, 영어권에서 온 딸아이가 호응을 잘 해주어야 영어수업하기가 수월할 텐데, 오히려 딸아이는 한국어 쓰기를 더 좋아하니 그것도 문제이긴 하다.

+ 덧: 지난 주에 써둔 글을 정리해서 오늘 포스팅했음.

치킨이 힐링푸드?

몇 년만이라서인가. 한국이 낯설었다. 비슷한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군대 제대 하고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가 그러했다. I don’t belong here. 익숙한 곳인데, 조금은 달라졌고, 내가 속한 곳은 아니라는 느낌.

열흘 간, 가족/친구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괜찮은(?) 식사를 했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어르신을 만날 때는 주로 깔끔한 웰빙류. 나물/비빔밥/옛날 우동/한우/부페 등등. 친구들을 만날 때는 트렌디하거나 가벼운 음식. 파스타/브런치 등등. 나쁘지는 않았다.

오늘 점심 마침 일정이 없길래, 드러누워 치킨 배달을 시켰다. 반반치킨. 정오에 시켜 먹는 치킨은 바삭하다. 그날 올린 기름으로 처음 튀긴 닭이라 더 깔끔하다. 미국에서 가끔 한국드라마를 볼 때, ‘치맥’을 사들고 퇴근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한국 생각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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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jjdak.co.kr)

양념반, 후라이드 반을 먹으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음식을 먹으니 이제야 서울에 와 있구나 싶더라. 아무래도 내 입맛 시계는 사년전 서울을 떠나던 그 때의 배달음식 기준으로 고정 되어 있나부다.

[재공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어린이날이다. 작년에 아이들에 대해 써둔 글이 있어 재공유 한다.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캡처

이번주 목요일에 회사에서 ‘Take your child to work day’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오전과 오후 순서로 되어있었는데, 오전에는 아이들에게 회사소개를 하고 회사 투어를 했고 오후는 카니발이 있었다. 카니발에서는 각 부서별로 부스를 마련해서 솜사탕을 팔거나 물풍선 던지기, 링던지기 같은 가벼운 게임을 했는데 수익금은 donation한다. 딸아이는 어려서 오전순서는 참여하지 않고 오후의 카니발만 참석했다. 카니발이 끝나고 내 책상도 잠깐 들렸는데 딸애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동료들에게 인사도 시켰다. 아이도 즐거워 했고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아이가 위험할까봐 뾰죽한 물건을 치우기도 하고, 몸에 좋거나 맛있는 음식을 아이를 위해 따로 챙겨두기도 한다. 아이가 교양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태교도 하고, 커서는 책도 읽히며 음악회나 미술관도 데려가고 박물관에 따라가기도 한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좀더 좋았으면 하는 마음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환경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도 아이가 없는 사람의 마음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천양지차이다.

한 블로거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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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 정책의 방향 – KDI

근래에 본 보고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보고서이다. 이런 걸 직접 조사하는 분들이 계시구나… 딱히 말이 필요 없다. 채훈아빠님의 포스트를 참조하시길…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 정책의 방향 – 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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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90년대 말만해도 서울대에는 6대 광역시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그랬고… 연대에 다니는 친구들이 몇 있어서 더 비교가 되었는데, 서울대는 지방수재들도 꽤 많이 모이는 학교 느낌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 인가부다.

볼티모어 폭동에 대해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지난주 월요일 (2015/4/27) 페북에 끄적인 글 저장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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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dieGrayPrecinctProtest

(image source: wikipedia)

볼티모어에 폭동이 일어났다. 오늘부로 통금이 발효되었는데, 저녁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폭동은 경찰의 과잉폭력 때문에 발생하였다. 별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경찰과 눈을 마주치자 도망친 흑인 청년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폭력을 사용했고, 청년은 1주일만에 사망했다. 청년의 장례식은 폭동으로 금새 변했다.

마침 뉴스가 나오던 시간, 회사의 흑인 동료와 펍에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흑인과 경찰의 과잉 공권력으로 번졌다. 그 친구는 경찰이 모두 나쁘지는 않지만, 걔중에 좀더 폭력적인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항상 polite하게 대응하는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이 주제는 워낙 결이 많은 주제인지라 짧게 말하기 어려운데 (이를테면 미국 경찰의 과잉 공권력,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문제. 인종간 갈등 등등…) 그래서 그냥 짧게 이야기 하련다. ㅎㅎ

그 중에 미국 경찰의 공권력. 미국은 생각 외로 경찰의 힘이 강하다. 범죄자들에게 총이 있는 만큼 그들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언제든 총을 뽑아든다. 경찰과도 쉽게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랬다가는 이동네에서는 벌집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강력한 공권력은 역사적/사상적 배경을 다 집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간단하게 내가 느낀 점으로는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나라 사람들의 생각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은 정말 가!차! 없다.

작년에 퍼거슨시 사태에 이어 올해 또 한 건이 터졌다. 우리 동네야 별 영향은 없지만, 어쨌든 뉴스보니 마음이 심난해진다.

Amid Riots, Maryland Governor Will Deploy National Guard To Baltimore (NPR, 2015년 4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