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편집자, 그리고 지적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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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세심함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인 노동이다. 노동이라고 굳이 쓴 것은 번역가에게는 원저자의 창작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가 이상으로 숨겨져 있는 지적 노동가는 아마 편집자가 아닐까 한다. (이말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링크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듯.)

과학책 번역가가 실제로 하는 일

하긴 세상에 어떤 재화/서비스가 숭고한 땀과 노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이른바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의 생산과정은 많이 숨겨져 있는지라, 책을 읽을 때 마다 관계자들의 노고에 직접적인 찬사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불평을 하긴 쉽겠지.) 유치원다닐 적을 돌이켜 보면, 밥을 먹을 때 농부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지만, 책읽기 전에 출판 관계자에 감사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도 안다. 사람들에게 재화/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할 때마다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브라질의 농부에게 감사하고, 신발을 신을 때마다 중국/베트남의 이름없는 노동자에게 감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한 가치를 치루고 소비를 하고 보상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정당한’ 가치라는 게 언제나 논쟁이다. 극단적인 시장 만능 주의자를 제외하고서는 시장이 조정하는게 언제나 옳다고 하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출판 시장 상황에서 (나는 다른 나라는 잘 모르니까 미국/일본에 비교해서) 시장이 결정하는 계약금/월급이 번역/편집자 분들의 기회비용과 노력을 온전히 보상해준다고 믿기 힘들다.

그럼 어쩌라구. 너는 답이 있냐? 묻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내가 그걸 알면 투철한 사상가가 되어서 혁명을 일으켰겠지.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그럴듯한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불완전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딱 돈받은 만큼만 일하고, 보이는 데서만 잘하는 사람들 만 있어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답일런지 모른다. 제도가 중요하랴, 그 안에서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지.

애구, 사설이 너무 길었다. 내 개똥철학 한마디 듣는 것 보다 링크걸은 글 읽는게 더 좋다. 번역/편집의 과정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 소상히 알려주는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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