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기독교 : 1. 이슬람과 기독교

# 들어가며: 언제나 그렇듯이 제 포스팅의 일차 목적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적인 내용이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분들은 이번 연재를 읽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연재는 전도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으며 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글은 이슬람교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글의 독자는 ‘성경과 기독교에 의문을 가진 이슬람 교인’인 셈입니다. 이점을 감안하고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입니다.

islam_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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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이뤄지는 토론을 보면서 저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적는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저는 신학/역사/인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일이 없기 때문에 깊이에 한계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해왔던 부분이고 저의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제 생각을 몇자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L님과 K님의 토론을 보면서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이 꾸란을 접근하는 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꾸란은 선지자 무하메드의 계시를 기록한 책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슬람은 꾸란의 단어 (아랍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암기하며,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종교입니다.

제 생각은 선지자 모하메드가 중세(6~7세기)의 인물이 었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무슬림의 모든 행동의 근거는 모하메드의 계시에 바탕합니다. 그런데 중세의 도덕관념과 세계관은 현대인의 눈으로는 몹시 이질적입니다.

저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류는 변해왔고 이슬람 세계는 중세의 가치관(정확히 말하자면 모하메드의 계시)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비무슬림의 눈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중세의 종교관은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주류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므로서 성경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더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더 잘 이해하려는 신학 연구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 시절에 가장 열중했던 일이 독일어 성경 번역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아랍어로 씌어진 꾸란의 원문 자체를 신성시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인 것이지요.

종교개혁 이후에도 서양의 세계관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근대/현대로 오면서 인류가 겪었던 가장 큰 변화중에 하나가 ‘개인’의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와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개인/사회라는 개념은 비교적 생긴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당시 새로운 개념이었던 ‘individualism’을 ‘self-reliance’라는 말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개인주의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self-reliance’라고 정의한 것이지요.

당시 철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던 이야기는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20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개인의 가치를 고귀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류는 인권을 신경쓰기 시작했고 여성의 인권도 비약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겪은 비무슬림의 눈으로 무슬림 사회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슬람 국가에서 인권은 무시되고, 여성은 억압된다고 비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연재글 목차)

+ 이슬람과 기독교

+ 유대교와 기독교

+ 나는 성경을 어떻게 믿는가?

+ 인간과 불확실성의 문제 1 (물질적인 해법)

+ 인간과 불확실성의 문제 2 (정신적인 해법)

+ 기독교의 방식 (대속)

+ 내가 믿는 기독교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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