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을 대비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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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아무리 많이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게 몇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장거리 비행.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열다섯시간. 그 시간을 좁디 좁은 비행기에 갇혀있다 보면 수명이 며칠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내 기대수명이 80년이면 79년 360일 쯤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노트북을 장시간 사용하거나 overload하면 발열로 인해 수명이 줄어 드는 데, 꼭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기지개도 켜보고, 복도를 이리저리 다녀보고, 영화도 보지만 좀처럼 시간이 안간다. 어떤이들은 알콜의 힘을 빌어 잠을 청하기도 하는 것 같다. 조심해야한다. 과음하다가 바비킴된다.

이번 비행에는 뭘하고 시간을 죽일지 고민해 봤다. 책도 몇 권 들고 갈 생각이고, 아이패드도 풀로 충전해서 들고갈 생각이다. 기내 상영 영화가 중요하다. 예전보다 나아진게 있다면, 내가 영화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VOD(video on demand)이다. 2년 전인가 대한항공 미주노선을 타봤는데, 채널을 돌리는게 아니구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거다. 감격했다. 비즈니스를 탄 느낌이었다. (비즈니스는 진작에 이런 시스템이 었다.) 십년 전에 캐나다 갈 때였나 노트북을 들고 탔는데, 지뢰찾기 게임을 했었다. 탈때는 분명히 하수였는데, 내릴 때 쯤 되니 고수가 되어 버렸다. 한계 상황에서 인간의 집중력은 무한 증가한다.

몇달째 만지작 거리고 있는 초고 상태인 글들을 완성 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블로그 게시판에는 40개 가량 드래프트 상태로 저장되어 있는 글들이 있다. 어떤 글은 주제만 메모 되어 있는 글들도 있고, 어떤 글들은 개요만 짜놓은 글들도 있다. 어떤 글은 거의 다 썼는데, 영 올리기가 찜찜해서 임시 저장 해둔 놈들도 있다. 딸램과의 이야기,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각 나라별 커뮤니케이션 방식, 돈에 대한 내 나름의 경제학적/사회학적/철학적/성경적 고찰 시리즈 등등. 꽤 오랜 시간 생각에 물을 주고 이런 저런 잡다한 메모를 모으다보면 그럴 듯한 글이 될 때가 많은데, 그정도 글이 나올라면 몇 번 글이 뒤집어 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경우는 산책을 하거나 샤워를 할 때 좋은 생각이 많이 나오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그렇게 생산적이기 힘들 것 같다. 이건 실현 불가능한 생각인듯.

아내는 비행할 때 먹을 것을 준비한다. 이착륙을 대비해서는 껌과 사탕을 준비하고, 중간중간 유용한 과일도 준비한다. 이착륙 할 때는 기압 때문에 귀가 먹먹해진다. 나는 침 몇번 삼키면 괜찮아 지는데, 아내는 꽤 힘들어 한다. 그럴 때 껌과 사탕은 조금 도움이 된다. 몇년 전 부터 귀마개도 사용해 봤는데, 아내가 꽤 만족한다. 고통을 줄여주니 꽤 기특한 도구이다. 기내식을 계속 먹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항공사 입장에서 나름 신경써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일 테지만, 먹는 입장에서는 곤욕이다. 아무래두 기압이 낮은 곳에서 대량으로 조리를 하기 때문에 냉동식품의 퀄리티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계속 앉아 있어서 소화도 안될 지경인데 이런 음식을 먹고 있자니 사육당하는 가축의 느낌이 든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서 내리면 몇시간은 속이 부글거리고 그 좋은 나의 먹성도 사라진다. 아내는 귤이나 신선한 과일을 준비하는 데, 이게 그나마 낫다.

딸아이는 워낙 어려서 부터 장거리 비행에 자주 데리고 다녔더니 비행기가 자기 세상이다. 비행기에 앉으면 바로 담요와 쿠션을 뜯어보고 만져본다. 우선은 자리부터 편하게 만든다. 열 몇 시간의 비행이 순탄하기 위해서는 안락함이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안전 메뉴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도 읽는다. 주로는 그림을 보지만, 그래도 그게 무슨 재미일까. 하긴 동물원에 가서도 동물보다 지도를 더 재미있게 보는 녀석이니 거기에 그려진 그림이 큰 재미를 줄런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엔 주위를 살핀다. 앞으로 뒤로 놀만한 아줌마/할머니가 없나 살핀다. 아이의 놀이 상대로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딱이다. 손녀 생각이 나는지 그 분들은 비행기 안에 있는 꼬마들의 좋은 친구가 된다. 몇시간은 그정도로 버틸 수 있다. 그것마져 지루할 때는 어린이 프로를 찾는다. 몇년 전까지는 뽀로로가 큰 도움이 됐다. 몇 시간은 더 버틸 수 있다.

그 다음은 승무원 언니들. 딸애는 승무원과 친해두면 뭐라도 하나 더 나온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한국말, 영어, 몸짓, 발짓, 표정을 다 동원해서 애교를 부리고 어떻게든 그들의 시선을 잡아챈다. 서비스를 하는 분과 친해지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비스가 만족스럽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는 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만족을 나타낸다. 어디서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는 법을 배웠을까 궁금해진다. 조금은 가엽기도하다. 두살 무렵 부터 부모의 유랑에 동참을 시켰으니 말이다. 서울, 제주, 채플힐, 뉴욕, 애틀란타, 마이애미, 런던, 취리히, 로마, 프랑크프루트 등등. 좋은 경험이 되었을 거라고 말해보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겐 환경이 자주 바뀌는 건 큰 스트레스이다. 만 네살이 될 때까지는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꼭 일주일을 아펐다. 한번은 딸때문에 마일리지를 모아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한 적이 있지만, 매번 그렇게 여행할 수는 없을 터이다.

이번 비행에는 가족이 없다. 일정 때문에 아내와 딸이 먼저 한국에 들어가고, 나는 따로 갔다가 따로 돌아와야 한다.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장거리 비행 무사히 잘 마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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