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 ‘불안한 사회에서 부모의 욕망 비우기’를 읽고

원글 link: 불안한 사회에서 부모의 욕망 비우기 (복음과 상황 290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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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았다. 글쓴이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분명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는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나는 그시절 나의 부모님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그리고 그때 부모님과의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님을 더 이해하게 되고, 나 자신을 더욱 알게되고,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무언가를 더 알게된다. 진솔하게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나눠준 글쓴이에게 감사한다.

+ 덧 (2015/04/27)
링크된 글이 전체공개에서 회원공개로 바뀌었다. 원글을 읽는 것을 추천하지만, 회원가입이 번거러운 분들을 위해 일부 발췌한다. (사실 회원가입이 어렵지는 않다.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된다.)

내가 학력고사를 보고 합격 소식을 기다릴 때, 나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합격자 발표 당일, 전화를 걸고 ‘합격’이란 소리를 듣자 난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다행이다’란 생각만 들었다. 난 합격하지 못했어도 나름 다시 잘할 자신이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 할지라도 내 마음은 그랬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만약 내가 불합격했단 말을 들었으면 엄마는 엉엉 울었을 것이다. 자리에 누워 계속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겨우내 ‘내 인생은 의미가 없어’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을 것이다. 난 그게 ‘불합격’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엄마가 가진 그 큰 부담감은 언제나 날 힘겹게 했다. 내 인생에 신경 쓸 시간이나 에너지가 모자랄 정도였다. 엄마의 불안을 걱정하느라고. 엄마의 두려움을 돌보느라고.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느라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성취’가 크게 자리 잡을 때 그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와 짐이 된다.

대학 학비를 댈 만큼 사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도 대학 가서 자기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며 살겠지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 학비 대기 어려운 부모들은 자식만은 어떻게든 그런 경제적 상태로 밀어 넣어주기 위해 대학에 목을 매는 것 같다.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아들이 착실하게 공부하여 경영학과를 나와 취업을 준비하는데 돈 있고 빽 있는 친구들이 먼저 취업하는 것을 보고는 왜 엄마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느냐고 원망하더란다. 얼마나 좌절이 되었으면 그랬을까.

나는 우리 아이가 대학엘 가더라도 ‘바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만약 둘 중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난 대학생 대신 생각하는 사람이 되길 권할 것이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조금만 길게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시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스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때와는 또 달라서 점점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정도까지 치닫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벌이 높아도 좁기만 한 채용시장, 돈 이외의 가치가 바닥을 치는 사회. 학벌로도 안 되는 채용시장이라면 자기만의 차별화된 능력, 그 아이만이 가진, 아이가 가장 잘할 무엇을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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