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즈음에

한해가 시작되었고, 한살을 더 먹었다. 매년 별 감흥없이 생일이 지날 때가 많은데, 올해는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다. 참 감사하다. 딱히 세상에 보탬이 될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따로 챙겨서 기억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세상에 빚진 것이 많다.

어렸을 때와 달리 가끔은 내 나이를 잊곤 한다. 최근에 누가 나이를 묻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계산을 했야만 했다. 그래서 빠른 계산법으로 생각해낸 게 하나 있는데, 딸의 나이를 기준으로 내 나이를 계산하는 것이다. 나는 딸아이와 정확히 30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내 딸 나이에 서른만 더하면 된다. 내 나이는 기억하지 못해도 딸애 나이는 항상 기억하고 있기에 이 방법이 가장 빠르다. 어느새 삶의 중심이 딸로 이동했다.

감사하게도 딸은 잘 크고 있다. 내가 따뜻하게 잘해주는 아빠는 아닌데도, 자기 아빠를 무척 사랑한다. 이번 생일에는 딸아이가 직접 골라서 내게 잠옷을 선물해주었다. 편한옷을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해서 특별히 보들보들한 소재의 옷을 골랐다고 한다. 아이의 계획 대로라면 ‘서프라이즈’ 선물인데 입이 간질간질해서 며칠전에 내게 귀뜸해주었기에 품목은 이미 알고 있었다.

딸아이의 기준으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이다. 돈모는 재미를 느끼게 해줄 요량으로 작년에 저금통을 마련해 주었는데, 요새는 동전이 생기면 의례히 딸아이의 손에 쥐어준다. 그렇게 일년을 모으니 꽤 묵직해졌다. 그래서 인지 딸아이는 항상 자기가 부자라고 말한다. 한번은 아내랑 내가 어떤 물건을 살 때 너무 비싼게 아닌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딸아이가 대화에 끼어든다. 자기가 부자니까 걱정 말라며 좋은 걸로 사라고 한다. 아이 때문에 우리 가족도 덩달아 부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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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녀석이 어디서 돈이 생겨서 잠옷을 샀을까. 동전만을 모아서는 부족할 터이다. 사실은 얼마전 아이 외할머니가 세뱃돈을 주셨더랬다. 그 돈을 가지고서 엄마랑 선물을 사러 갔다고.. 아이 엄마가 타겟(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같은 곳)에서 할인코너를 기웃거렸더니, 아이가 제일 비싼 몰에가서 제일 좋은 옷으로 골라야 한다고 말하며 단호한 표정을 짓더란다. 결국 아이가 주장한 대로 백화점으로 갔다고… 내가 살면서 받아본 중에 가장 부담스러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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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 Swift와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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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0~20대 여자애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Taylor Swift. 특히 (그녀의 노래가 컨트리가 베이스라서 인지) 남부에서의 인기는 엄청나다. 특이하다고 생각이 든건, k-pop은 10~20대 여자 가수들은 30~40대 아저씨 팬덤을 공략하고 남자 가수들은 여심을 흔드는게 전략 포인트인데, 이동네는 오히려 반대로 10~20대 여자 가수들이 또래 여자아이들의 감성을 노래한다. 어찌보면 이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30대 거무죽죽한 동양 남자가 뭐 Taylor Swift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겠나. 이건 아무래도 딸아이 때문이다. 어제 딸내미가 초등학교 가서 또래 친구 (Hailey라는 전형적인 남부 백인 여자아이) 한테 Taylor Swift 노래를 들었다며 유튜브로 틀어달라고 해서 같이 듣고 딸내미의 막춤을 감상해야 했다.

딸내미에 의하면 Hailey는 Taylor Swift의 노래를 다 외우고 있고, 특히 ‘Shake it off’를 좋아하는데, 자기는 ‘Out of the Woods’가 더 좋단다. 아직 7살 밖에 안된 유치원생 아이들이 틴팝을 좋아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게 왜 더 나를 당황스럽게 했냐하면, 취향의 영역 (이를테면 음악/미술 등등…)이 지금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나나 부인의 일부분을 닮아가고 커가는게 뿌듯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그러한 영향을 외부에서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특히나 취향의 부분까지) 앞으로는 점점 더 커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그 외부의 영향력이라는게 좀더 이질적이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은 덤.

이런 부질없는 생각 해서 뭐하겠나. 결국 자녀라고 해도 내것도 아닌데… 딸내미랑 좀더 이야기 나누고 대화라도 따라가려면 결국 딸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도 들으면서 같이 막춤도 쳐주는 수 밖에.

대학의 미래 – 오바마 대통령의 커뮤니티 컬리지 무료화 계획에 대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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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톰행크스가 뉴욕 타임즈에 I Owe It All to Community College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그곳에서 배운 지식이 어떻게 현재의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뉴스 페퍼민트에 번역 되어 있으니 한글판을 읽고 싶은 분들은 오늘의 나를 만든 커뮤니티 칼리지(뉴스페퍼민트)를 참조하면 된다.

뜬금없이 톰행크스가 이 글을 기고한 이유는 지난 8일 오바마 대통령이 테네시의 한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전국의 커뮤니티 컬리지를 무료로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Obama Plan Would Help Many Go to Community College Free: NYT) 처음에는 나는 이 계획을 들었을 때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주 불가능하지 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현재 미국의 커뮤니티 컬리지들은 30%의 예산만을 등록금에서 조달(NYT)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4년제를 포함해서 60~70%(출처:대학교육연구소)) 또 커뮤니티 컬리지의 경우는 지금도 장학금 같은 방식으로 70~90%의 학생들이 무료로 등록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600억 달러의 예산을 공화당에서 통과시킬리는 만무하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학교를 무료로 개방했을 때 일단 등록하고 보려는 학생들이 생길 것이며 (free rider의 문제), 수준낮은 4년제 대학은 어려워 지는 등 (2년제가 공짜라면 허접한 4년제에 누가 가겠는가?)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여기서 부터는 정리되지 않은 제 생각을 써본 글이니 그냥 재미로만 읽어 주세요. 군데 군데 논리의 구멍이 뻥뻥 뚫린거 찾기 쉽습니다. ^^ ————————————————————-

이 뉴스가 내 관심을 끈 것은 대학의 미래에 대해서 미국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오바마는 교육 이슈를 이야기 하기 좋아한다.) 사실 대학의 미래는 항상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지만 이야기 하기 조심스러운 소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들이 대학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각자가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학문을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대학의 목적을 어떻게 보는가 이다. 모든 것을 투자 대비 가치로 따지기 좋아하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대학은 신분 상승의 수단 또는 대졸 임금 프리미엄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만 대학을 본다면 2010년대 지금에 와서 대학교육은 실패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데에는 몇가지 근거가 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캡처

(출처: 한국은 인적자본 일등 국가인가 (KDI), 채훈아빠 블로그 재인용)

KDI의 최근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가장 위의 파란색 점선이 고졸 대비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임금 프리미엄인데, 1980년대의 80%에서 현재로 오면 60%까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캡처

(source: wealth by degree (economist))

또 위의 이코노미스트 자료를 보면, 빨간 점선이 OECD 평균 대학 진학률인데, 30년 만에 약 18% 정도 증가 한 것을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대학진학률은 높아지는 추세이고 대학의 임금 프리미엄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관련해서 관심있으신 분들은 링크 자료로 들어가면 참고자료 리스트가 잘 정리되어 있다. 참조하시길.)

그러나 대학이 단순히 임금 상승을 위한 수단인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내 식으로 이해를 하면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 이다. 심지어는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하는 경영학 마져도 (내가 공부했을 때 느낀 바로는) 기업 현장의 실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이라고 하는 학문을 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후배 직원을 받아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아무리 대학에서 잘나가는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실무에 바로 투입되어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학문하는 곳으로서의 대학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와서 정립이 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대학이라는 곳은 엘리트 계층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70년대 그러니까 대학진학율이 10% 정도이던 시절에는 대학생들이 고졸/중졸을 보는 시선은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19세기 만해도 미국사람들에게 대학이라는 곳은 목사가 되기 위해 가는 곳이었고 따라서 라틴어와 희랍어를 필수로 가르켰다. 그이후 라틴어가 필수 과목에서는 사라졌지만, 20세기 초까지도 대학생들은 남을 돕기 위해 대학에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출처: 최후의 교수들, 프랭크 도나휴)

그렇지만 지금의 대학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대학에 진학한 공대생의 상당수가 미적분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이고, 영문과에 진학했다고 하지만 원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데 60~70%가 대학에 진학하는데, 그 모두가 학문을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 만약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학을 진학한다고 하면, 대학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고 교양을 가르키는 곳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고등 교육 과정(대학원이 되었든, 연구소의 형태가 되든…)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오바마의 커뮤니티 컬리지 무료화 제안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나라 만의 현상은 아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지식의 양은 점점 쌓였기에 12년의 의무 교육과정으로는 현대인에게 기본적인 교양의 수준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커뮤니티 컬리지 무료화는 어떤 의미에서 13년의 정규 교육과정 (미국의 경우는 kindergarten 1년이 더 해져서 13년이다.) 에다가 2년의 추가 교육과정을 정규로 더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당연히 국민들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의 문제를 단순히 잘살기 위한 투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대학과정을 정규교육화 (즉 세금을 집행하여 무료 또는 무료에 가까운 교육과정으로 만드는 것) 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80~90%가 대학에 진학한다면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으로 프리미엄이 붙을 수가 없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반대로 대학 교육을 교양있는 시민으로 키우기 위한 기본 소양을 키우는 것 (고등학교와 유사한 그 연장 선상의 어떤 것)이 라고 본다면 전국민에게 정규 교육과정으로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도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것이 100년 남짓 되었을까?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 모습대로 나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s. 쓰다가 보니 무슨 레포트도 아니고 주장하는 글도 아닌 이상한 뻘글이 되었네요. 지금까지 하던 포스팅과 또다른 형태의 글입니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다지 전문성도 없는데, 논란이 될만한 주장만 늘어 놓은지라 포스팅하기 망설여 졌는데, 그냥 길게 쓰고 지우기도 아까워서 포스팅합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가계부채

회사에 부하직원이 있다. Denzel 이라는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이다. (미국남자는 군대를 안가니까…^^) 그친구가 며칠전 퇴근할 때 차가 막혀서 고생한 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랬다고 하니 바로 자기차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차가 퍼져서 길거리에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폐차직전인 차를 몰고 다닌다. 그친구는 돈을 모아서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와서 놀란 건, 길거리에 폐차직전인 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뒷 유리창이 깨진 상태에서 비닐로 대충 가려서 다니는 차, 부러진 백미러를 청테이프로 칭칭감아서 다니는차 등등 정말 우리기준으로는 어떻게 저러고 다닐까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없이 버스/지하철을 이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뉴욕/LA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미국에서 차가 없이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달만 살아봐도 가족 수만큼 차를 굴려야하는 미국 삶을 이해하게 된다.

차뿐만 아니라 대학을 갈 때는 대학 학자금이 필요하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집을 사게 되었을 때 모기지까지 빚을 지게 된다. 딱히 낭비를 해서라기 보다는 젊은 시절에는 가진 게 몸뚱이 밖에 없고 수입이 작은데 생활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빚을 지게 되고 결국 이 빚을 갚다가 끝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미시경제학에서도 연구되어진 토픽인데, 1950년대 모딜리아니 교수는 Life cycle income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관련 도표는 아래와 같다. 쉽게 말하면 지출은 어느정도 일정한데 수입이 못따라 주기 때문에 30대까지는 빚을 지고 산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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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연구는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막연하게 다르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우리나라 사례에 대한 통계자료를 KDI에서 발표하였기에 공유해 본다. 다른 각도에서 본 데이타들이 더 있는데 흥미 있는 분들은 원문을 보시기 바란다.

재인용: 채훈아빠 블로그 (가계 부채의 연령별 구성변화)

원출처: KDI 현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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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데이타를 보면 미국의 경우 life cycle hypothesis가 상당수 맞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차트에서 미국은 20/30대는 소득대비 부채가 높다가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부채비율이 작아진다.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채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딱히 통계자료나 연구자료를 본적은 없다. 그래서 미국/한국에서 다 살아본 내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딱히 연구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머리속에서 나온 생각이기에 누가 반론들어오면 할 말은 없다. 근거자료나 인사이트가 더 있으신 분 있으면 알려주시라.

첫번째 가설 – 노년층은 부동산은 사두면 득이된다는 전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분들은 10%씩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를 지내온 세대이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여전히 믿는 분들이시기에 그러하다. 그분들에게는 빚을 지고 무리를 해서라도 자산을 늘리는 것이 체득된 재테크 지혜이다.

두번째 가설 – 20/30대의 빚을 50/60대가 감당하고 있다. 지금의 50/60대는 부모님이 소팔아서 공부를 시키신 은혜를 경험한 세대이다. 당연히 자식의 학자금/전세자금/혼수는 부모의 부담이다. 그러나 이분들이라고 몇억씩하는 전세금/학자금을 땅을 파서 만들어 내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주택담보 대출로 대학등록금/결혼자금을 마련해 주셨을 것이다.

세번째 가설 –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가 젊은 층의 주택 구입 부담을 줄여주었다.

사실 전세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미국에서 피같은 렌트비를 몇년정도 날리면서 살다보니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린 게 전세라는게 상당히 세입자에게 유리한 특이한 제도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사거나 월세를 사는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안정된 중산층에 들어갔는가 하는 기준이 자기 명의의 집이 있는가? 월세를 사는가가 기준이 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자기 이름으로 집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빚이다. 모기지라는 상품이 20~30년의 장기 대출이기 때문에 복리로 집값을 갚다보면 이자가 원금보다 커지게 된다. 요즘은 이율이 4% 조금 못되는데, 계산해 봤더니 30년 복리면 원금의 90% 가까이 이자를 지불한다. 3억짜리 집을 샀다면 5~6억을 지불하는 셈이다. 저금리 시대인 요즘도 그러한데 예전에는 돈벌어서 은행에 다 갖다 바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을 듯.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세가 있어서 다르다. 어디선가 전세는 본질적으로 사금융이다라고 말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데, 쉽게 말하면 세입자는 집주인한테 돈을 빌려주고 그 대신 그만큼의 렌트비를 안내는 구조이다. 작은 자본으로 사금융의 채권자가 되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면 집장만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 비해서 쉽게??) 전세금에 대한 은행이자는 월세보다 훨씬 싸고, 전세금을 전액 상환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전세가 세입자에게 유리하다. 이걸 왜 사금융이라고 하냐하면, 전세금 규모의 돈을 생전 처음 보는 집주인에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행위가 전세제도가 아니고서는 도대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세입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다르다. 적은돈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누려서 집을 사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세제도가 없다면 외국이라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서 집을 구입해야하는데, 은행이 아닌 개인간의 거래(전세금)로 돈을 조달하기 때문에 렌트비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금융이기 때문에 은행보다 높은 이자비용이 든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세입자 입장만 경험했다. 집주인은 투자 수단으로 전세를 놓지만, 마치 시세에 비해 싸게 해주면 선심을 쓰는 양. 비싸게 올리면 시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양 행동한다. 누가 누구한테 선심을 쓰는 건 아닌 금융거래(?)인데, 마치 채무자가 갑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구조이다. 누군가는 전세제도로 이득도 얻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으니 (부작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정도로 마무리…)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제도 인 것이다.

이 특이한 구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옛날에는 부동산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말하는 사람있을 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00년대 만해도 주택청약으로 집사고, 전세끼고 집사고 해서 꾸준히 모으라는 재테크 조언을 여러 어른들한테 들었었다.

우리나라 상황도 많이 바뀌고 있다. 집값은 예전처럼 오르지 않는 것 같고, 한국 계신 분들하고 이야기 해보니 전세비를 2년만에 몇천을 올려줘야 해서 이사를 갔다는 분들도 많다. 전세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아주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20대는 학자금 대출때문에 아우성이니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빚갚다가 끝나는 사회가 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울러서 하나 우려스러운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금융은 대부분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갚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게 집값이 무작정 올랐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수입이 없는 노년 세대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자와 원금을 같이 갚는 구조이다. (명세서를 보면 principal and interest라고 나온다.) 또 다른 차이는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출이 주택담보 대출로 퉁쳐서 빌려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집을 살 때 발생하는 mortgage loan과 집을 담보로 창업을 하거나 결혼자금을 사용하는 경우는 home equity loan으로 구분하여 빌려주고 home equity loan의 경우는 더 리스키 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자가 높다. 우리나라는 일회적인 소비에 대해서 대출이 쉽다보니 더 위험해 보인다.

이런 이야기는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고 할 이야기도 많긴 한데, 그냥 이정도로 마무리 지어야 겠다. 나야 평범하게 그냥 미국 살면서 어떻게 하면 렌트비를 줄일까 궁리하는 1인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관심은 많지만 딱히 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빚도 안지고 내 미래도 저당잡히지 않나 고민은 많지만, 처자식 먹여살리는데에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별 욕심없이 최대한 빚 적게 지고 아끼면서 사는게 답인 것 같기도 하구…

딸내미한테 한수 배우다

서비스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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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동네 한인 마트에 갔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딸아이는 화장실이 급했고, 아내와 같이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아내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하는 말이 “여긴 참 화장실 관리가 엉망이야.” 맞장구를 치느라 나도 보탰다. “남자 화장실도 그렇던데. 이 마트 수준도 알만하네. 여기 식료품을 어떻게 믿고 사겠어. 담엔 웬만하면 다른 마트 가야겠다.”

장을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아빠, 그런 이야기는 사람들 있는데서 하지마. 혹시라도 마트 사람이 들었으면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어?” “그래, 맞다. 다음부턴 조심 할께.”

일곱살 딸아이에게 한수 배웠다.

왜 비행기에서 신분 격차를 새삼 느낄까?

땅콩회항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하루 이틀 이야기하다가 말겠거니 했는데 해를 바꿔가면서 모두들 한소리씩한다. 굳이 내가 거기에 한마디를 보탤 이유는 없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이 비행기 1등석 이야기에서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며칠전 한 기사를 읽다가 내 나름데로 실마리를 찾았다. 기사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뉴스 페퍼민트: 왜 항공사는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어하는가

Newyorker 원문: Why Airlines Want to Make You Suffer
BY TIM WU

이야기인 즉슨, 항공사들이 수익을 위해서 점점 더 이코노미석 승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consumer report에 따르면 지금 미국 4대 항공사의 가장 넓은 이코노미석 좌석은 1990년대 가장 좁은 좌석보다 작다고 한다. (source: Think airline seats have gotten smaller? USA Today)

1등석/비즈니스석/이코노미석의 차별은 미시경제학으로 보면 개인별로 다른 consumer surplus를 최소화하는 가격을 책정해서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가격정책의 일환이다. 싸게 티켓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좁은 자리에 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돈을 주고라도 서비스를 사고 싶은 사람은 더 비싼 요금을 감수한다는 논리이다.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이야기이고, 1990년대에는 그렇게 비행기 티켓 가격을 책정했던것 같다. 그런데 요즘 기업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항공사들은 기본적인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 불편을 피하고 싶으면 좀더 돈을 주고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pricing에서 다양한 통계 기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새로운 가격정책을 내 놓을 때는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운송업계에서도 마케팅부서의 상당수가 pricing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몇년전 구직활동을 할 때, 이쪽 업계 분위기에 맞추어서 델타항공/FedEx에 면접을 준비하면서 프라이싱 관련된 토픽들을 몇개 준비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나 항공업계는 pricing 분야를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능력은 신분의 차이를 의미한다. 신분제가 분명했던 예전과 같이 노골적인 차별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돈을 지불해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특권이고 능력이다. 차별화된 호텔/운송수단(열차,비행기)/근사한 외식은 중산층의 사치이거나 특권층의 당연한 권리이다. 비싼 식당이나 호텔에 갔을 때 불만족을 느끼면 내가 이돈을 내고 이런 서비스를 받다니라면서 불쾌해진다. 서비스업의 본질이란게 어쩌면 사람들에게 이러한 환상을 파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좌석의 class는 이러한 계급 차이를 노골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모욕감을 느꼈던게 아닐까.

영화하는 사람들은 운송 수단에서 계급구조를 잘 간파하고 있는 듯 하다. 재작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이러한 계급의 차이를 주된 영화의 소재로 삼고 있고, ‘타이타닉’에서도 귀족과 평민들의 차이를 1등석과 3등석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이를 피부에 와닿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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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비즈니스석을 탄 적이 있다. 뉴욕에서 서울로 갈 때 였는데, 오버부킹되는 바람에 업그레이드 되었다. 나는 대접받는게 익숙치 않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섯살난 딸내미는 금새 적응해서 즐기더라. 비행중에 이코노미석에 타신 어르신과 마주쳤는데, 딸아이보고 귀엽다고 하시다가 비즈니스석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서 부러운 눈길을 주며 말하셨다. 나는 이나이 먹도록 이코노미만 타고 살아왔는데, 저 어린게 어찌 비즈니스석을 탔을까 라면서…

뭐 어찌 되었든 비즈니스석도 아닌 일등석에 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하고 별로 상관있게 느껴지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비즈니스석도 돈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별로 부러워 한적은 없지만, 좁아터진 미국 국내선에서 처자식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돈 좀 더내고 편하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든다.

광명시에 들어온 이케아

한국에는 이케아가 이슈인가부다.

조립하는 수고로움과 가구의 짧은 수명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지만, 얇은 지갑 사정을 따지다 보면 결국 가게 되는 곳이 이케아다. 그렇지만 조립하는데서 재미를 느끼고 (하다보면 레고 조립하는 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ㅎ) 합리적인 가격으로 집안 꾸미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케아 만한 놀이터가 없다.

세상은 한참 글로벌화 되었는데, 규제하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이고, 만만한 놈 때리는 언론의 모습도 그대로이며, 심지어는 속이 빤히 보이기 까지 한다.

관련 웹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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