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권학’에서

Xun_zi

묻는 태도가 나쁜 자에게는 대답하지 말고, 대답하는 태도가 나쁜 자에게는 묻지도 말고, 말하는 태도가 나쁜 자에게는 듣지 말며, 시비조의 사람과는 논변하지 말라.

반드시 도에 따르는 사람과 접촉하고 도를 따르지 않은 사람은 피할 것이다. 몸가짐에 조심성이 있는 사람이라야 도의 이치를 말할 수도 있고, 안색이 부드러운 사람이라야 도의 극치를 말할 수 있다.

아직 서로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하는 것을 일러 소란스럽다고 하며, 서로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하지 않는 것을 일러 감춘다고 하며, 표정을 관찰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일러 장님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자는 소란을 떨지 않고 감추지 않으며 눈먼 장님 노릇을 하지 않도록 그 자신을 삼가 조심해야 한다. <시(詩)>에 이르길, ‘저 사람은 교제가 조금도 소홀하지 않아 천자가 상을 내리는 구나’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순자>, <권학(勸學)>)

(출처: 블로그 내마음의 풍경 (재인용))

온라인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고 논쟁한다. 근데 어느 순간엔가 논쟁함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나 상대방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을 때에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행위 자체가 무척이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이다.

유교는 논쟁 자체나 논리적인 완결성보다는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가 많은데, 2000년이 지난 순자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한 지혜로 다가 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잊기 전에 남겨두려고 포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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