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그리고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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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www.bugsvill.co.kr)

예전에는 딸아이가 벌레를 재미있어 했다. 한번은 뉴욕의 장남감 가게에 갔는데 박제된 곤충을 좋아해서 거기서 한참을 보고 있는 거다. 문제는 우리 마눌님은 벌레를 보면 기겁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마눌님 몰래 곤충 박제를 몇개 사줄 계획까지 짠 적이 있다. 그러다가 계획이 발각되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러던 녀석이 요새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엄마가 기겁해서 놀라는 걸 보고서 그대로 배운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대부분 어떤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부모를 통해서 배울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아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는데, 대부분 우리가 아는 영역 밖의 것들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에게 모르는 것을 관찰하고 배우는 방법(과학의 방법)을 가르키거나, 아니면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종교의 방법)을 가르켰으면 하는데… 내가 가르킨다고 될 일은 아닌 듯하다. 스스로 터득하고 깨우치기를 기다려 주는 수 밖에. 그래도 가장 안배웠으면 하는 것은 무지의 영역을 부정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방법이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벌레 같은 것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매해 여름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었던 게 컸던 것 같다. 서울에서 크고 자랐지만 산골에서 매미를 잡고, 모기에 뜯기면서, 잠자리채 들고 산골짝과 담배밭/고추밭을 뛰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내게 벌레는 미지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그냥 같이 살아가는 생물중에 하나 일 뿐이었다.

반면 나는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겁이 많은 아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유령 이야기는 정말 소름끼치게 싫어 했는데, 혼자 자는건 꽤 커서도 무서웠던 것 같다. 다행인지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아주 어렸을 때는 단칸방에서 네식구가 같이 잤고, 꽤 커서까지 동생이랑 한 방을 썼었다.

커서는 딱히 초자연적인 것에 흥미가 있는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라 이제는 그리 무서움을 타는 편은 아니다. 다큰 남자 어른이 무서운 이야기에 겁먹어서 쓰겠나…ㅎㅎ  내가 크면서 터득했던 두려움에 대처했던 방식은 두려움의 영역에 대해서 가능한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무의미한 호들갑을 최소화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요새들어서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영역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게 대표적인 무지의 영역은 여자의 마음이다. 학창시절이나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에는 항상 젠병이었다. 결혼을 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고 어찌보면 유령보다 더 무서운 아내의 호통이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대상일 듯하다.

아이가 무지를 또는 두려움을 어찌 대처하는가를 잘 배웠으면 좋겠다. 물론 요즈음은 벌레가 나오면 기겁하고 있는 엄마와 아이를 위해 잡아 죽이고 흔적처리까지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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