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中: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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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로버트 피어시그의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이다. 1974년 출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책으로 알려진 이책은 한국에는 몇년전에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11살 아들과 17일간 모터사이클 횡단 여행을 한 이야기인 이책은 기본적으로 여행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문학/종교를 아우르는 방대한 철학적 탐험기이다. 이 책을 잡고서 읽다가 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을 포스팅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Chapter 2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주인공은 모터사이클에 문제가 생겨 정비를 받는다. 정비공은 무심한 태도로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해머와 정(cold chisel)으로 냉각기를 두둘겨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주인공은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받고서 정비를 중단하고 모터사이클을 가지고 정비소를 나온다. 나중에 본인이 천천히 정비를 하면서 결국 문제를 찾아 낸다.

여기서부터는 몇자를 그대로 옮기고 싶은데, 내게 한글 번역본이 없는 관계로 직접 번역하여 옮긴다. 심각한 정도로 의역을 했고 내가 이해한대로의 재구성이다. ㅎㅎ

우리는 모두 구경꾼들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20세기가 왜 이렇게 잘못가고 있는가?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품고서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단절(separation)’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려고 한다. 서두르지 않겠다. 서두르는 것은 20세기의 독이다. 우리는 서두르는 동시에 사려깊을 수 없다. 나는 느리지만 사려깊게 그리고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내가 시어핀(sheared pin: 위에서 말한 모터사이클 고장의 원인)을 찾았던 그 태도(attitude)로 말이다. 내가 시어핀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태도 때문이었다.

We were all spectators. Caring about what you are doing is considered either unimportant or taken for granted. On this trip I think we should notice it, explore it a little, to see if in that strange separation of what man is from what man does we may have some clues as to what the hell has gone wrong in this twentieth century. I don’t want to hurry it. That itself is a poisonous twentieth-century attitude. When you want to hurry something, that means you no longer care about it and want to get on to other things. I just want to get at it slowly, but carefully and thoroughly, with the same attitude I remember was present just before I found that sheared pin. It was that attitude that found it, nothing else.

모터사이클은 현대의 물질 문명과 기술을 상징한다. 사실 내가 슬쩍 건너 띤 chapter 1에서 저자는 기술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 말을 했다. 이제 chapter 2에 와서는 생각하지 않고 기술(현대 문명)을 받아 들일 때 그것은 우리를 망친다고 말을 하고 있다. 주체와 객체를 띄어내고 구경꾼이 된다면 우리는 폭력적이 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너무 철학적이고 사변적이 되어간다. 원래 책의 화두가 그렇긴 하다. 이왕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간 김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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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mannTrial

(image source:http://www.real-debt-elimination.com/real_freedom/Propaganda/holocaust/eichmann_trial.htm)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 계획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도피 생활 끝에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된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었던 것은 생각과 달리 아이히만은 악마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학살을 할 수 있었을까? 재판 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이히만에 대해 이렇게 평을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하지 않은 것(thoughtlessness)’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때, 그저 메뉴얼 대로 따르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문명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되고 만다.
최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만 덧붙이려고 한다. 내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이다. (주: 다만 지금 뉴스에 나오고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이것은 사건 이후의 장례식에 대한 논의이다. 이 사건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장례식을 반년 정도 끌고 가고 있다. 장례식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일 터인데 누구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아무도 이 장례식을 끝내려고 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간접적 가해자 모두는 이러한 평범한 일반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보통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메뉴얼 대로 따랐을 뿐이다. 심지어 몇몇은 그 메뉴얼마저도 무시하고 생각을 하기를 멈추고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얼굴을 선장에게서, 소유주에게서, 관료들에게서 보았다. 어쩌면 이미 세계가 너무나 커질 대로 커져서 그 속에 부품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잊고서… 그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고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얼굴과 무심함을 바로 내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그때가 가장 섬뜩하고 무섭다. 그 핑계는 다양하다. 효율적이 되려고, 바쁘니까, 모두들 그렇게 하니까… 등등. 표정없이 살지 말자, 생각하며 살자, 괴물이 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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