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천황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에는 일본인이 몇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았던 후세 다쓰지라는 인권변호사이다. 이 사람은 일본인 쉰들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조선 독립운동에 열정적이었고 삼일운동 당시 지지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검사로 일본 법조계에 입문했으나 법률의 사회적 적용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변호사가 된다. 후에 일본 내의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고,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는다. 그가 변호했던 사건 중에 하나가 당시 일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일본 천황 암살 미수 사건이다.

박열은 본디 아나키스트 였다. 그는 천황 암살미수 사건으로 22년 복역하게 된다. 해방후 그는 이승만 지지로 우익 노선으로 전향하고, 또 몇년 후에 6.25 때 납북된 인물로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다. 그의 고향 문경에 가면 박열 열사 추모관이 있다. 박열에 대한 이야기도 많겠지만 오늘은 그의 연인이었던 가네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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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에 대한 글 중에서 쉽게 읽어볼 만한 글은 산하님의 1926.7.23 조선을 사랑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이다. 산하님은 맛깔나게 글을 쓰시기 때문에 심각한 스타일에 길기까지 한 내 글보다는 읽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ㅎㅎ

가네코는 일본인이지만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어린시절을 조선에 사는 할머니 밑에서 큰다. 어린 시절 목격한 3.1운동은 그녀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몇번 역사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일제시대 일본인/한국인 간의 신분을 넘는 사랑 이야기로 단순화되곤 한다. 이는 가네코가 아나키스트 였다라는 것과 박열이 납북되었다는 것이 여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데올로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고 또 한국적인 상황에서 아나키즘을 언급하는 것 조차 불온한 느낌을 주는 것과 관련이 적지 않아 보인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인 예로, 정확히는 탈권위주의 정도로 번역되는게 맞을 듯 하다. 아나키스트는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의 자유가 사회/국가라고 이름지워진 권위로 부터 억압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과 그 이상향을 실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국가를 해체하고 작은 단위의 신뢰사회인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완전한 비폭력을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 폭력과 테러를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또 그들 사상의 스펙트럼은 극우로 부터 극좌까지 걸쳐있기 때문에 딱히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아나키즘은 극단으로 흐르면 허무주의로 흐르기 쉽다. 다원주의/허무주의/아나키즘은 어찌보면 형제 같은 존재이다. 그렇지만 허무주의에 다다른 아나키즘은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폭력과 테러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나키스트 아니면 무정부주의자의 이미지 일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아나키즘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에서 잘 묘사되어진다.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제도화된 조직에 대한 반대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조직화가 쉽지 않다. 굳이 살펴보자면 우크라이나의 네스트로 마흐노, 스페인 내전 초기의 전국노동연맹 정도이고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한 세력은 스키마스크로 유명한 마르코스의 멕시코의 사파피스타 민족해방 전선 정도 이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어나니머스도 아나키즘의 한 모습으로 들어갈 듯 싶다.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생태주의, 반전운동, 대안학교, 공동체 운동 등으로 조금 변형된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공산주의도 어떤 면에서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즘을 지향한다. 막스도 공산주의가 완성되면 정부는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공산 독재가 결국 영구화할 것이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뿐이라 말한다. 결국 역사는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풍미했던 아나키즘의 조류는 이러한 흐름에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독립 운동가였던 김원봉, 이회영과 이들이 세운 의열단은 아나키스트 집단이었고 말년의 신채호도 아나키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생긴 집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자와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조금 헤깔리기도 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큰 주제이므로 조지오웰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자.

아나키스트들은 원칙이 다소 모호하기는 했지만 특권과 불의에 대한 증오는 정말로 순수했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이른바 혁명가들과 대립되었다.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은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로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중에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가네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가네코는 당시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 들과 교류를 하다가 조선인 출신 아나키스트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 그녀와 박열의 동거 계약서가 재미있다.

1. 동지로서 동거할것.

2.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그녀는 뼈속까지 사상에 충실한 여자였고,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치되는 완벽한 연애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박열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박열의 아나키즘에 근거한 시를 보고서 이다. 그녀는 그의 시를 보고 그를 찾아갔고 연애를 시작한다.

평등 사상에 기반한 동거를 했던 둘은 1923년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반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일본에서는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다.그들은 체포되었고, 취조 도중 폭탄 구입 계획이 알려지게 된다. 민심이 흉흉했던 당시 일본 정부는 천황암살 기도를 큰 이슈로 만들었고 ‘대역사건’이라고 한다. 이 혐의로 1926년 이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사형언도시 가네코는 만세를 불렀고, 박열은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긴다. 며칠후 이들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앞에 언급한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을 한다. 그리고 몇달 뒤 가네코는 의문의 자살(?)을 하면서 스물셋의 짧고 힘겨운 삶을 마친다.

이 사건은 일본 안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 중 하나가 옥중에서 찍혔다는 아래의 묘한 포즈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연히(?) 유출되었고 일본의 신문들은 대서 특필한다. 이후에도 이 사진은 음란한 조선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이 관동대지진 직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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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녀의 재판 기록을 통해 그녀의 육성을 몇자만 옮겨 보자.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먼저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달라고.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다음으로 재판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부디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달라고.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재심준비회 편, 《박열ㆍ가네코 후미코 재판기록》, 748쪽, 이하 《재판기록》)

나는 박열에게 부화뇌동하여 천황이나 황태자를 타도하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천황은 필요 없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박열과 같았기 때문에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조건 가운데는 그런 생각을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동지적 결합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가네코의 진술서 중)

나는 아나키즘에 동의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평화주의를 선호하고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은 대부분 이상주의에 머무를 때가 많아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을 뿐더러 우스운 망상에 지날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 삶(주: 그녀의 삶은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잘 묘사되어 있다.)을 살았던 스물 세살의 젊은 여인의 처절하고 독한 이상주의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내가 믿는 신념대로 사는가?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으로 고민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가? 다수의 생각에 잡아 먹혀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살지 않는가?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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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아나키스트: 천황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1. 산하님의 포스팅을 링크를 걸었더니 의도치 않게 핑백이 되었습니다. 트랙백과 달리 핑백은 그냥 링크만 달아도 걸리는 군요. 본의 아니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핑백을 한 샘인데, 댓글로 양해를 구하려 했으나 본인 확인이 안되어 (외국에 살아 본인확인 수단이 없습니다…ㅠㅠ) 댓글을 남길 수가 없네요.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너그러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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