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 간다는 것

최근 뉴스에 유민 아버지의 단식 소식이 자꾸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 관련해서는 워낙 많은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려 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있고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 사건이기에 말한마디 꺼내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단식이라는 행위는 누군가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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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소식을 접했을 때, 내게 떠오른 인물은 간디였다. 유민 아버지가 간디 같은 성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간디는 진심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단식이라는 행위를 했고 누가 어떻게 말하던 지금 그분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다.

간디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책중에 하나가 ‘간디 자서전’이다. 함석헌 선생이 번역했는데, 642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고 어려운 인도 지명과 추상명사들이 나와서 손대기가 쉽지는 않은 책이다. 나도 실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잘 요약한 글을 올려주어서 조금 맛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참고한 블로그 글은 다음의 두 링크이다. (해를그리며 님의 블로그: 간디자서전을 읽고, 격암님의 블로그: 간디로본 우리의 모습) 두 글 다 찬찬히 읽어볼 만큼 좋은 글이다.

이분들의 글에 따르면, 간디 자서전은 간디가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본인이 깨달은 진리를 설파하지도 않는다.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본인이 살면서 구도해왔던 실험 과정을 차근차근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은 그가 믿었던 힌두교를 바탕으로 해서 금욕적인 삶과 채식으로 몸을 단련해 왔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본인의 도를 추구하면서 분쟁과 다툼이 있는 곳을 쫓아다닌다. 섬유노동자 파업, 세금 파업 등등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는 일방적인 폭력을 배제하였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고 대화를 통해서 하나되고 화해하는 것을 추구했다.

간디의 이러한 방식은 현대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방법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마음으로 깊이 동의한다. 의견의 차이가 생겼을 때 명확하게 승패를 가르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통하더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양당정치에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그러하다. 누군가는 선거공학적으로 승리를 거둘 테지만 이것은 패자에게 위기의식을 가져오고 오히려 패자는 다음번 승리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내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발견할 때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이다. ‘이 모든 것은 놈현 때문이다.’, ‘MB가 나라를 망쳐놨다.’, ‘공주님 때문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 이 말들은 사실 그저 푸념이다. 푸념을 내가 너무 진지하게 여기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네편과 내편을 갈라 놓고서 이제 내편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너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에게 나라의 모든 것을 맡겨두고 이제 책임은 모두 그쪽이다.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긴하지만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자녀를 키우는 모든 일이 크게 보면 정치의 연장선이고 우리의 목소리이다.

정치 이야기를 이왕 꺼낸 김에 몇가지만 더 써보려 한다. 정치 이야기는 워낙 첨예하게 갈리고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는 불필요한 오해로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의 프레임으로 씌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정치와 떨어져 살 수도 없는 일이고 나도 이시점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해두고자 몇자 적어본다.

진보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나는 진보의 정체성이 대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거에서 우리가 야당에게서 듣는 목소리는 정권심판과 반새누리당이었다. 그들에게 대안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듣는 것이 그렇고 최소한 내가 듣는 것이 그렇다. 대안 없이 진보세력이 여당의 도덕성을 문제 삼거나 정권심판만을 이야기 한다면 설사 단기적인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길게 봐서는 패배이다. 싸움을 통한 승리는 상대를 완전히 짓밟는 것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선거를 통해 60:40으로 이기면 무엇하나? 그렇다면 이제 남은 40은 적인가? 이제 그들을 억지로라도 교육시키던가 아니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더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어떤 생산적인 논의의 가능성 조차 닫은 분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가능하단 말인가.)

보수층은 진보세력을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악으로 인식하고 진보는 현정권을 적으로 인식하여 그들과 싸워 이기려 한다. 적당히 중간을 지키자는 애매한 자세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현정권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정권심판은 대안이 아니고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정치에 관심 없으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가치를 주지 못하면서 기존의 정권에 반대하는 모습은 그저 싸우는 것으로 비추고 정치에 대한 염증만을 불러 일으킨다.

너무 곁길로 샜다. 다시 간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자.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인도제국은 힌두와 무슬림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게다가 종교분쟁으로 인도인들은 서로를 죽인다. 이에 간디는 죽을때까지 단식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기적같이 전쟁이 멈춘다. 그러나 얼마후 간디는 암살당한다. 결국 인도제국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 독립을 하게된다. 지금도 인도는 파키스탄과 크고 작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로 28일째라고 들었다. 광화문에 계시는 그분도 큰일 생기지 않고 누구의 가슴도 찢어지지 않은 채로 진정한 의미의 화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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