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강신주는 어떻게 ‘문화권력’이 되었나 – 미디어스

Originally posted 02/11/2014 @ facebook

인문학자 강신주는 어떻게 ‘문화권력’이 되었나 – 미디어스

최근 강신주라는 분이 한국에서는 뜨거운 감자인듯 하다. 하지만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는 여전히 기술의 진보와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포스트 모던시대에 이런 믿음은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사고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논의가 너무 배부른 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인문주의자들은 자동차가 환경에 가져온 해악을 말하며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활성화를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 하는 일이 전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환경론자/인문주의자라면 세탁기나 전기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탁기가 인류에 가져온 유익을 생각해보자. 불과 우리의 할머니 또는 증조 할머니 세대만 해도 머리에 빨래감을 지고 개울가에서 양재물에 빨래방망이로 힘겹게 세탁이라는 이름의 중노동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평생을 세탁과 아궁이밥 짓기, 다듬이질 등의 고된 노동을 해왔던 것이 바로 우리네 할머니 세대의 일상적인 삶이다. 그뿐인가?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대다수의 아낙들은 자기 몸의 1/5의 무게를 지닌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서 하루에도 수키로를 오가며 물을 기르고 빨래를 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오는 해악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도 우리의 삶에 풍요와 윤택함을 가져다주는 이름모를 엔지니어와 기업가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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